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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아침묵상말씀 2022.06.14

이상봉 2022.06.15 23:45 조회 수 : 73

2022. 6. 14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후서 3:1-3)

 

    고린도교회의 어떤 사람들이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했을 때 바울은 위와 같이 대답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인 증거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바울 앞에 서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어떤 사람이 여자이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증명서)는 옆에 서 있는 그의 자녀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자이다. 바울은 그 일을 했다. 그에게는 수많은 영적 자녀(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고린도교회 신자들도 그 가운데 일부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이고 증명서이다. 둘의 생명이 같기 때문에 생김새도 비슷하고 성질도 비슷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편지였고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였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의 편지였다. 그들은 본래 그리스도를 몰랐고 하나님도 몰랐다. 그런데 바울을 만난 후 그들은 그리스도도 알고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바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바울의 사도 증명서였다. 사람을 만났는데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이고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증명서(편지, 추천서)이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따라간다. 말이 나가는 것 같지만 영이 나가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지식으로만 알지 않고 생명에 새기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8:10, 31:33)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이 약속(신약)은 성취되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영이므로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속에서 깊이 알 수 있는 복된(신약)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누리려면 반드시 성령에 사로잡혀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만날 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편지이신 그리스도를 충분히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영에 사로잡혀야 한다.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4: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인 사람들이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면 안 된다. 포로(노예)가 아니면 이마에 내 것이라는 도장을 찍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정신(말씀), 그의 사랑에 항상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본래 생각과 계획, 감정, 의지가 사라지고 주님의 생각과 소원, 감정이 우리를 채우고 있어야 한다.

    악령(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그 속에 악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욕심, 미움과 분노가 새겨지고, 성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그 속에 사랑과 의와 진리, 기쁨과 감사가 새겨진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거나 마귀의 편지가 되는 것은 생각이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를 지배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생명과 진리를 나타내야지 라고 한다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 포로로 잡혀서 결박되고 지배를 받아야 그렇게 된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리에 사로잡힌 자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도 착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는 것은 생각(원함)과 생명(능력)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먼저 주님의 (사랑과 정신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향기나 주님의 편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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