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끝나고 우리의 새 역사는 부활로 시작되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첫 창조를 종결시킨다. 그리고 죽음으로부더 새로운 창조가 둘째 사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아담 안에] 있으면 아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것이 된다. 그것은 노력과 상관 없이 본능적으로 되는 것이다. 분노나 기타의 죄를 짓기 위해서 우리는 결심할 필요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며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다. 단지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와서 우리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이 순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다고 말할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비실제적인 말로 생각한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실생활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것이 우리의 경험 가운데 실현이 되는가? 로마서 6-8장을 상고해 보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삶의 조건들이 四重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것은 첫째, 진리를 아는 지식을 가지는 것, 둘째, 아는 바대로 믿는 것, 셋째, 믿는 바대로 실제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헌신하는 것, 넷째,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이 조건들은 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누리려면 반드시 이 네 단계의 과정을 취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성
로마서 6:1-11은 주 예수의 죽음이 대행적이고 포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 가운데서 우리는 모두 죽은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는 아무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범죄를 십자가 위에서 담당(처리)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의를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서 담당(처리)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우리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범죄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도 담당한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죄사함을 받았는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대속자로 죽으사 우리 죄를 자기 몸에 담당하셨으며 우리의 모든 허물을 씻어 버리기 위하여 피를 흘렸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당신의 죄가 모두 십자가 위에서 도말된 것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하였는가? 당신은 "주 예수님, 나에게 오사 나의 범죄를 위하여 죽어 주시옵소서"라고 말하였는가? 아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다. 오직 주님께 감사했을 뿐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미 그렇게 하신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죄사함에서 뿐 아니라 죽고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만 찬송할 일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이 일로 기도할 것이 없다. "저는 대단히 약한 사람이오니 주여, 저를 못박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는 잘못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위해 나를 죽여 피를 흘려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참으로 보고 아는 빛이다.
시106:12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음의 말씀을 못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롬6: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예수님께서는 내 대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자기와 함께 십자가에 지고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나는 죽은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주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다고 하면 나는 그의 죽음을 믿는 것만큼 확실하게 나 자신의 죽음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믿는가? 주님의 죽음을 우리가 몸의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인가? 예컨대 눈으로 보았거나 그의 고통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그것을 느겼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이다. 주님이 못박혔을 때 그 옆에 두 강도가 함께 못박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의심 없이 당연히 그들의 죽음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믿고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단 한 가지 이유 곧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강도가 죽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때 죽었다는 것도 꼭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우리는 확실히 죽었다. 그러므로 롬6:7의 말씀은 바로 우리 것이다.
롬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우리가 십자가의 죽음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를 죽이고 통제하려고 意志를 발휘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감각으로 느끼려고 노력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것 곧 우리를 함께 십자가에서 장사지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데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갈보리의 완성된 역사를 경험하려면 반드시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
어떤 선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기 전에도 자신의 삶에 허무와 불만을 느껴서 자기를 스스로 구원해 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한다. 금욕과 명상과 자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자기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그런가? 모든 인생의 문제가 자기 자신의 행위나 의도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기도 전부터 또 자기가 손 쓸 수 없는 영역에서 이미 전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잘해보려고 의도하거나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내 손 밖에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스스로 문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런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스스로 떠맡아 해결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가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제공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일이다.
이 구원은 죄 사함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로부터 해방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죄 용서를 받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죄로부터의 자유도 얻게 되는 것이다. 죄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행해 온 방법은 죄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방법은 죄인을 십자가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연약함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좀 더 강하다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법을 찾을 때도 그런 방향에서 찾는다.
그러나 신자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거나 환경이 좋지 못하거나 타고난 성질이 좋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의 실패는 무엇이 부족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승리를 위해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부족한 무엇을 더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죄를 이기는 능력과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좀더 참고 좀더 자제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생각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는 방법은 우리에게 더욱 더 힘을 주심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욱 더 연약하게 하고 완전히 죽이심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이상한 방법 같지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 옛 사람에게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아 완전히 죽이신다. 그렇게 하심으로써만 우리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신을 제어하려고 무익한 노력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빛을 본다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할 수 없으며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아예 우리를 제쳐놓고 자기 방법으로 이루신 그 모든 역사에 의해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계시가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인간적인 자기 노력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第一 단계 : "우리가 알거니와 "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한 영적 지식을 가지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 우리는 생명에 이르는 영적 지식 곧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 이 지식은 단순히 진리(기독교 교리)에 대해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과는 다르다. 그것은 지적 지식이 아니라 영적 지식이다. 지적 지식은 머리가 좋은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분야에 관해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것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축복을 누리려면 먼저 그것을 보아야 하고 그것을 확실히 보려면 마음의 눈이 떠져야 한다.
여러분이 만일 참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여러분의 많은 죄가 다 사함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하고 있으며 어떻게 알았는가? 목사가 그렇게 말했거나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안 것인가? 많은 사람이 그런 말을 듣고 보았지만 다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것을 알게 되었던 근본적으로 그 지식은 하나님의 빛(계시)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의 생명이 우리를 가르쳐서 알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영적 지식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그러나 기록된 문자인 성경이 우리에게 현재적으로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 곧 말씀의 빛을 던져주시는 역사가 필요하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성경 지식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영적 진보는 언제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에 관한 새로운 빛이 던져질 때 이루어진다. 계속 새로운 영적 빛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실제적인 진보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안에 강력하게 비췰 때 우리는 자신을 알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우리는 빛 가운데서만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가 다룬 모든 지식은 단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거나 로마서 6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이 지식의 빛을 비추셔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빛이 우리에게 비춰서 영적 지식을 가지게 될 때 어떻게 그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는지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그것을 확실히 가지고(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빛을 보았다는 증거이다.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확실한 구원을 보았다면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우리의 이 복된 지식과 확신을 흔들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그러한 생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자기가 들어오게 된 나름대로의 특별한 경로를 강조하며 그의 경험을 옹호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특별한 경험과 길을 강조하고 객관화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싸움을 하며 억지로 그들의 길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아무 것도 아니며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귀한 역사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깨닫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들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형제들의 다양한 경험을 각기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것이 옳다. 누구든지 분명히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하고 있기만 하다면 그들이 강조하고 있는 경험이나 교리를 상호 배타적으로 거절하지 말고 오히려 그 안에서 생명의 풍성함을 나누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발견한 모든 진리는 연구나 전수(傳受)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지식 곧 하나님의 빛에서 나온 것이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영적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는다
첫 단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사역에 관한 계시를 가지는 것이다. 중국 내지 선교회 창시자 허드슨 테일러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참 포도나무로부터 자기 안으로 진액을 흐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를 통하여 홀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와 같은 생명이 자기에게는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 다는 필요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는 1869년 중국 진강시에서 그의 누님께 보낸 편지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텐데.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군요"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노력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이 점점 더 깊이 절망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빛이 비취며 계시가 와서 그는 진리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의 누님에게 다시 적어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비결이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포도나무로부터 진액올 이끌어 내어 내게로 들여올까를 구했지만 주님은 나에게 내가 이미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가지로 붙으려고 무단히 애를 썼지만 주님이 이미 내가 예수님의 부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이제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이미 주님 안에 붙여 놓았다는 사실을 믿고 그것에 준해서 행동하면 되겠어요. 나는 성경 가운데서 그 사실을 오랫동안 보아 왔지만 이제야 그 사실을 살아있는 실제로 믿고 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전부터 알고 있던 엄연한 사실이 그제야 새롭게 자신에게 실제 사실로 다가오게 된 것을 말한 것이다. 그는 계속했다. "나는 얼마만큼 그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실도 신기한 일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전에 소경이었지만 이제는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 승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렇게 간주하고 계시며 또 나에게 자신을 그렇게 간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누님이 빛으로 비췸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부요(富饒)를 알아 향유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다. 이미 방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것은 얼마나 불가능하며 불합리한 일이겠는가! 그런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이미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빛 가운데서 깨닫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보다 많은 빛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전보다 이런 문제로 인해 기도 드리는 일이 적어지고 오히려 찬송을 보다 많이 부르게 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도하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발버둥치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사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를 주님처럼 만들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금 내 안에서 내 생명으로 역사하시며 나를 그리스도의 길로 이끌고 계심을 확실히 보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일을 바로 보고 찬양하며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으려고 애 쓸 필요도 없고 의롭고 거룩한 생명으로 부활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다. 승리하려고 애 쓸 필요도 없다.
문제의 근본을 다루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은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사역이었다. 만일 정부가 알콜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주령을 내리기로 했다고 하자. 전국의 술집을 문닫게 하고 모든 술병을 찾아내어 없앤다고 하면 음주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술병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술을 생산해 내는 공장이 있는 한 그것으론 부족한 것이다. 실제로 1930년대에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표면적으로는 술이 생산되지 않았고 거래될 수 없었지만 음성적으로는 여전히 생산되고 거래되었다. 이 때문에 암흑가의 악당들만 밀주 제조 및 거래로 부자가 되었다. 만일 우리가 술병은 처리하되 술 공장은 막지 못한다면 술 생산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음주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죄가 생산된 술이라면 우리 자신은 술 공장이다. 주 예수님의 보혈은 생산품이 되는 우리 범죄의 문제를 처리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기서 일을 중단하실 수는 없었다. 반드시 죄를 생산해 내는 우리 자신을 처리해야만 했던 것이다. 주님께서 생산된 상품은 당신이 친히 처리하셨지만 생산의 원천을 처리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상품을 처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깨끗이 처리하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롬6:6)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 인줄 알지 못하느냐?](롬6:3)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사 모든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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