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숭배 / 고전10:14-22
41.우상 숭배를 피함
1.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즉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상화하거나 하나님을 우상 숭배하는 식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을 포함한다.
왜 우상 숭배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상 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하시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상 숭배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하나님이 질투할만한 어리석고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4,5)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질투라는 것은 질서와 관련되어 있는 개념으로서 정상적이고 바른 것 외의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 질투는 우주 질서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몸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며 먹지 못한 것이 들어오면 저절로 토해내 버린다. 이것은 몸이 생명 유지를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게 되는 태도이다.
여기서 토해내는 것이 바로 질투하는 것이다. 음식이 아닌 무엇이 들어올 때 몸이 반사적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몸은 곧 병들고 말 것이다. 정상적인 것이 아닌 것이 나타날 때 모든 만물은 그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생명 유지를 위해 그 생명 안에 그러한 성질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자신도 합당치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시며 결코 용납지 않으신다.
왜 우상 숭배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며 잘못된 일인가? 그것은 우주의 창조자, 우주의 유지관리자,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 우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은 문자 그대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만들어 놓은 허상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바로 우주 만물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진리요 생명의 원리이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 외에 우주를 지탱하는 다른 원리나 힘은 것도 없다.
우상은 헛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순리가 아니고 역리로 행하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것이므로 결국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망하고 말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진리(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인생이 하나님을 제쳐놓고 우상을 좇는 것은 몸이 밥 대신 쓰레기를 먹는 것과 같아서 결과는 멸망일 수밖에 없다.
2.무엇이 우상인가
오늘날 신자로서 자기 집이나 혹은 우상의 제단에 가서 조각된 형상을 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함하여 우리 시대 직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실제로 섬겼다. 그것은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 시대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들을 많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없었으므로 생활이 크게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자신들만의 능력으로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 기술과 기계 문명의 도움(자동차, 세탁기, 댐, 전기, 가스...)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하루라도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시대 사람들은 신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바다에는 풍랑이 일므로 오늘 우리에게 기상 예보와 큰 배가 필요하지만 과거에는 바다 신이 필요했고, 땅에는 농사짓는 일에 비가 절실하므로 오늘 우리가 댐과 지하수 개발을 필요로 하듯이 과거에는 비를 내리는 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우상을 실제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섬기는 사람이 많았고 오늘날에는 그 자리에 과학 기술 문명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에는 문자 그대로 종교적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우상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필요가 있는 이상 우상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외에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마음을 쏟으며 섬기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상은 무엇인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 현대인들의 우상은 바로 자기 자신과 자기 자녀, 그리고 각종 쾌락(향락)과 아름다운 옷과 아름다운 외모를 비롯한 각종 아름다운 육체적 외모, 그리고 돈(황금)과 무신론과 허망한 세상 철학들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발달한 의학과 풍부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현대적 질병들로 인해 건강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현대인들에게 오늘날 건강이 우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통 이 문제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그 다음, 이 문제가 없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미(美)가 우상이다.
오늘날 다이어트, 성형수술, 교정, 아름다운 옷과 치장, 머리 물들이기 등을 통해 멋을 부리려는 관심과 열정은 우상 숭배 수준에 가깝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거의 없는 젊고 아름다운 청소년들은 이런 문제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스스로 자기의 온 마음을 쏟을 우상을 만들어 낸다. 곧 연예인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고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이다.
3.하나님을 알아야 함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으려면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계시가 없으면 우상 숭배를 할 수 밖에 없다. 신은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끊임없이 숭배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4.우상 숭배 환경에 접촉하지 말라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우상 숭배하는 환경을 멀리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우상 숭배 모임에 초대되어 음행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것을 상기시키면서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말 것을 권면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민25:1-3)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 도시에 우상 숭배 문화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신자들도 시민이었으므로 그 도시에 사는 한 우상 제물을 먹고 마시는 자들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 원주민들을 남김없이 다 죽이거나 쫓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그 땅 거민들이 우상 숭배 문화에 철저히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그대로 둔 채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유월절 상이 유대교를 상징하고 성찬 상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우상 제물의 상은 우상 숭배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신자는 그것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앞에서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관대한 입장을 취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결코 우상 숭배 자체를 허용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왜 신자들이 우상 숭배하는 장소에 드나들며 그 식탁에 참여하여 우상 숭배자들과 제물을 함께 먹는 일을 경계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일이 신자의 삶에 신앙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자라도 육신을 가진 존재요 그 육신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거룩한 몸이 아니요 마귀의 지배를 받아 범죄하기 쉬운 ‘죽을 몸’, ‘사망의 몸’, ‘죄의 몸’이다. 그러므로 죄 짓게 만드는 환경과 접하면 범죄하기 십상이다. 신자는 때로 보디발의 청을 받은 요셉처럼 죄로부터 즉 죄 짓게 만드는 환경으로부터 도망하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5.산당을 남겨둠
불완전한 환경이 얼마나 신앙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여호와의 성전 뿐 아니라 소위『산당』이라고 하는 잘못된 처소를 둠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왕상3:2)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오직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왕상15:11-14)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상22:43)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대하20:32,33)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왕하12:2,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14:3,4)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왕하15:3,4)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왕하15:34,35)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18:3,4,22)
이 말씀들을 보면 우리는 산당을 둔 채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을 전혀 안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되 우상도 함께 섬기는 것이다. 즉 ‘하나님만’ 섬기는 그것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하나님도’ 섬기는 식이었다. 산당(山堂)이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가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산당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얼른 보면 우상 숭배와 반대되는 좋은 일 같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그렇지 않고 여호와를 우상처럼 섬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정하신 합당한 장소(성전)에서만 당신을 만나며 섬기도록 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주님과 조용히 교통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거기서만 하나님을 참으로 생각하고 참으로 배우고 참으로 섬길 수 있다.
6.솔로몬의 우상 숭배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 가운데 매우 지혜롭고 훌륭한 왕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경외했을 법한 왕이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미혹되어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 우상을 섬겼다. 그가 어떻게 우상 숭배를 했는지 또한 그가 어떻게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본의아니게 우상 숭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1. 값비싼 보물 (세상적 부귀영화)을 곁에 많이 둠
솔로몬은 재물과 권세와 세상 부귀 영화가 많아지자 차츰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영광과 기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세상 보물도 영광과 기쁨으로 삼으며 하나님의 약속만을 소망으로 삼지 않고 세상 보물과 세상 영광도 소망으로 삼았다.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왕상10:16,17)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층계 좌우편에 섰으니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왕상10:18-20)
2. 지혜가 많음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물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혜와 물질도 하나님 자신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대체하는 것으로 쓰여져서는 안된다. 지혜와 모든 보화의 원천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인간이 비록 그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대신하는 것이 되도록 그것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그는 궁극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솔로몬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지혜와 총명을 더 의지하여 국정을 자기 생각대로 펼쳤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왕상10:23) 그의 지혜는 천하 열왕보다는 크지만 하나님보다는 작은 것이다. 솔로몬은 이것에 주의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지혜대로 행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망하고 말았다.
3.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려고 노력함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왔으니 왕의 상고들이 떼로 정가하여 산 것이며 애굽에서 내어 올린 병거는 하나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일백 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을 위하여도 그 손으로 내어왔더라” (왕상10:26-29)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을 건축하고 또 윗 벧호론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되 성과 문과 문빗장이 있게 하여 견고한 성읍을 삼고 또 바알랏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모든 병거성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 (대하8:4-6)
솔로몬은 말과 병거와 강력한 성을 쌓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다윗은 적으로부터 노획한 말도 그 발의 힘줄을 끊음으로써 국방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을 그의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 이에 비해 솔로몬은 인간적 방편을 너무나 의지했다. 이것은 다 그가 말년에 우상 숭배에 이르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일들이다.
4. 여인들을 곁에 많이 둠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왕상11:1-8)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위력을 떨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들」과 「물질」, 「지혜와 총명」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로 인해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헛갈리게 하는 잘못된 장소와 잘못된 사람들과 잘못된 환경을 우리 곁에 두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
7.분명한 분리
1. 반드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야함
광야로 나오기 전에 모세는 애굽의 바로에게 하나님을 섬기러 가야겠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 보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때 바로는 그냥 애굽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그러나 애굽에서는 우상을 섬길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것을 거부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
2. 가나안 원주민들을 반드시 진멸해야 함
그리고 광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면 인정사정 보지말고 가나안의 모든 원주민들을 완전히 축출하라고 명하셨다. 쫓아내서 나가면 그냥 쫓아내기만 하면 되겠지만 안 나가려 하면 죽여서라도 그 땅에 우상 숭배자들이 절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꼭 그들을 진멸하셔야만 했을까? 그것은 우상숭배자와 우상 숭배 행위, 우상 숭배 문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우상 숭배하지 결코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만일 가나안의 그 우상 숭배자들과 그들의 우상 숭배 문화를 분리할 수 있고 그 사람들과 그들의 죄 곧 우상 숭배와 음행과 각종 죄악을 분리할 수 있다면 굳이 그들을 진멸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생각, 사람의 문화, 사람의 죄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에도 매우 약하고 죄를 이기기에도 매우 약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좋지 않은 이웃 사람들과 우리 주위의 물질적 사회적 환경들에 접촉할 때 틀림없이 좋지 못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아무도 산당에서 우상 숭배의 영향을 안 받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산당에는 마귀가 사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손쉽게 산당이 있으니 산당에서 예배드리자고 했는데 한참 그것을 하다보면 결국 하나님을 우상 숭배하는 식으로 섬기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말씀을 통해 계시된 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신(邪神) 우상을 섬기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3. 놋뱀을 부숨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놋조각)이라 일컬었더라” (왕하18:3,4)
놋뱀이 숭상된 것은 그것이 과거에 자기들을 위경에서 구해낸 도구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통해 어려움에서 도움을 입었을 때 그 사람을 마치 구원자처럼 항상 바라보며 의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도구로 삼아 자기를 도우신 것이지 그 사람이 구원자의 능력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자기를 도운 사람들을 너무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본의 아니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되고 만다.
훌륭한 목사나 지도자도 다 그리스도보다 더 높여져서는 안되며 본인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우상시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그를 곤경과 시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로부터 지속적인 유익을 얻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시44:6-8)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置心)치 말지어다”(시62:10)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146:3)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