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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차매 (갈4:1-5) / 2002. 8. 4

2010.05.03 09:49

이상봉 조회 수:514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시고 아들의 지위를 얻게 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사람이 우연히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고 우연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 되어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되도록 미리 계획(약속)을 철저하게 해놓으셨고 또한 때를 정해 놓으셨는데 바로 그 때가 차서 이것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역사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된 어떤 '때'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따라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된 그리고 우리와 관련된 '하나님의 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때란 하나님이 정하신 시점이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지만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때는 그런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영원한 계획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정하신 때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다. 그리고 우리로 어떤 일을 겪게 하신다. 이것은 어떤 과정을 겪음으로써 우리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일들은 대충 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이 친히 신경 써서 결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유인이나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몇 시에 일어나서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 무슨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며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일일이 하나님이 다 결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포괄적 의미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최소한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벌어지고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람에게 개입하시며 주장하시고 역사하시는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9-12)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의 왕이 되어 만물을 다스리게 되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아들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계시에 의하면 이 계획은 최종적으로 실현될 때가 임박했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 찬송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등장'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얻지 못하면 결코 그의 영원하신 뜻을 이루시지 못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하신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여 하나님을 위해 일할 사람을 택하시고 세우는 것이다.
둘째,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 그 일과 관련하여 '때'를 정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하신 목적과 관련하여 그 택한 사람에게 어떤 일과 때를 계획하시면(정하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정하신 일을 체험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합력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순위로 따지면 때보다는 일이 우선적이다. 일 때문에 때가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반드시 정해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때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급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계획하신 순간에 즉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 받아들일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이 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때도 중요하다. 일은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따라 하나씩 순서대로 체험되지 한꺼번에 몽땅 경험될 수는 없다.

일을 겪는 때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은 이 '때'가 받아들이는 사람의 형편에 맞게 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고 빨리 순종하면 때는 그만큼 짧아지고 그의 체험(일)은 풍성하고 신속하게 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고 그의 은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된 일도 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주 예수님은 참으로 때가 차서 오신 것이다. 그 이전에 오셨다면 너무 이른 것이고 그 이후에 오셨다면 너무 늦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알맞은 때에 오셨다. 무엇이 가장 알맞은 것이며 때가 찼다는 것인가? 주님이 오신 것은 인간의 객관적 상황과 심령의 상태가 은혜의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였다. 그는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1400년 간의 역사 실험을 거친 후에 오셨다. 즉 이스라엘의 경험을 통해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는 한 인류(사람)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후에 오셨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 늦었다. 아담이 자기 세대가 가기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주님은 가인과 아벨 세대에 오셨어도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세대에 인류가 이 사실을 충분히 깨달았다면 주님은 야곱의 때나 혹은 모세 이전에 오셨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결국 그 무지와 늦장으로 인해 아브라함 이후 400년이 지나 모세가 율법을 들고 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00년이나 지나도록 선지자들의 음성에 무디게 있다가 망할 대로 망한 후에 소수의 사람들의 주의 약속을 기다리며 주야로 금식하는 상황을 만든 후에 비로소 주님이 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너무 늦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준비되기 전에는 오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늦었지만 주님은 때가 찬 후에 합당한 때에 오셨다.


영적인 여건 외에 외부적이고 사회적인 여건도 때가 찼다. 이 '때가 찼다'는 것의 핵심은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통일함으로써 온 아시아와 유럽을 통합한 대제국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가 단시일 내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좀더 자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판도 확대

(1) 지중해를 중심한 전 유럽과 소아시아 전 지역이 로마 영토가 됨. 이와 같이 넓은 영토가 한 정체 체제 안에 들어 있었으므로 복음이 비교적 쉽게 넓은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2) 나중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 전 유럽을 손쉽게 복음화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 로마를 기지로 해서 세계 전역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3) 로마 제국의 다양한 영토 안에는 다양한 문화들이 있었으나 로마 문화는 그 모든 문화를 포용하여 하나의 통일된 문화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헬라의 철학, 사상과 문화적 면에다 자신들의 법률과 질서, 조직과 같은 문화적 장점을 접목 융화시켜서 훌륭한 새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로마의 특성 중 하나는 이처럼 여러 문화를 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이로 인해 복음이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여러 민족들에게 큰 거리낌 없이 전파될 수 있었다.  

2.교통의 편리

로마를 중심으로 각지로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망이 있었기 때문에 도시간의 왕래가 편리하였다. 그리고 여행자의 안전도 전보다 훨씬 잘 보장되었다. 또 수로도 개발되어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무역과 여행이 자유롭게 되었고 우편제도와 화폐제도도 확립되었다. 이로 인해 전도 여행, 문서 전달, 성도 개인간의 교류가 잘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이동하는 많은 군대들과 여행하는 상인들, 팔려 다니는 수많은 노예들의 왕래는 도처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수단이 되었다.  

3.언어 통일

제국 내의 언어가 헬라어와 라틴어로 통용되어 전도에 크게 도움이 됨. 라틴어는 표준 공용어였지만 로마가 헬라문명을 계승했기 때문에 헬라어는 상인들과 일반 시민층에서 여전히 많이 사용되었다.

4.군제 통일

로마 군대는 군률이 엄하고 잘 훈련된 군대였다. 이 훈련된 군대는 제국 내의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이나 소요에도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로마의 잘 발달된 법률과 조직, 군대를 통한 훌륭한 치안 유지의 능력으로 인해 로마 제국의 모든 영토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은 복음 증거에 큰 도움이 되는 환경이었다.

5.유대인의 분산

로마 제국 시절이나 그 이전의 헬라 혹은 바벨론, 페르시아제국 시절에 많은 유대인들이 핍박이나 상업적 목적, 기타의 이유로 이스라엘 밖의 다른 여러 도시들로 이주하고 분산되었는데 예수님 당시에 이방에 퍼진 이러한 유대인(디아스포라)의 숫자는 본국 내 유대인의 5, 6배나 되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제일 많았고 시리아. 소아시아, 로마에까지 골고루 퍼져 있었다. 그들은 민족성이 강한 데다가 배타적이라 이방인들이 싫어했으나 상업술이 능하고 도덕심, 선교열이 강해 이방 관리들이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 회당(시나고그)를 세워 구약을 연구하였으므로 복음 전도의 좋은 접촉점을 제공하였다.  

6.도덕적 타락

로마가 전대미문의 대제국을 이루어 오랫동안 평화롭고 부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황제 이하 대다수의 국민들이 갈수록 교만하고 사악하고 부도덕한 생활에 빠져들고 있었다. 또한 로마인들이 의지하고 있는 신과 종교 또한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로마인들의 신에 대한 일반적 관념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대체로 음탕하고 저급한 것이었다.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복음이 전파될 당시 로마에는 노예 매매가 성행하고 있었고 검투사를 양성하여 서로 싸우게 하거나 맹수와 싸우게 함으로써 피를 보기를 즐겨하는 잔인하고 포악한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죽일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는 등 사회의 내적 안정을 해칠 정도로 도덕적 문제가 심각했다.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신이나 종교가 그들 영혼의 요구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택하여 하나의 통합된 수준 높은 종교를 가지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도덕적 타락은 로마인들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죄의식을 갖게 하였고 거기서 벗어날 구원의 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것은 로마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7.저질 종교의 횡행

로마의 종교 상태는 한 마디로 불확실하고 복잡했다. 로마 제국의 지식층들은 범신적 일신교로 기울어져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선한 신이 세상을 다스리며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것을 믿고 있었으나 일반 민중들은 미신적 잡신에 빠져 온갖 우상들을 다 섬기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로마 지도층은 그것을 타파하지 않고 대신 황제와 국가 숭배를 요구함으로써 신을 섬기더라도 민중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밖에 헬라 철학도 사람들에게 종교적 영향을 미쳤는데 헬라 철학은 주로 사람들에게 신비적 종교 체험, 동물 희생, 미래에 대한 소망, 미에 대한 경배 등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잡신 숭배나 황제 숭배, 헬라 철학적 종교 행위가 민중들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정한 생명의 종교를 갈망하게 되었는데, 마침 당시에 나타난 기독교가 자기들이 찾던 생명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임을 차츰 알게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신 것은 인류의 영적 상태가 주님이 오셔서 은혜의 구원을 베풀지 않으면 안되는 절망적 상황에 처했기 때문일뿐 아니라 외적 사회적 여건 또한 복음이 전파되기 적당한 상황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모로 보든지 주님은 그야말로 '때가 차매' 오신 것이다.


우리는 야곱의 인생을 다시 한 번 회고하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때가 차기까지 그는 얼마나 방황을 많이 하고 인생을 낭비했던가? 그러나 그 낭비는 필요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택하시고 당신의 목적을 위해 세우신 사실을 그가 깨닫기까지는 어떤 낭비와 허비와 고생을 하더라도 때가 필요했다. 야곱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차적인 목적(원하심)은 그가 벧엘(벧엘의 신앙)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편하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그는 결코 그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그가 살아 있고 그에게 희망이 남아 있는 한 그는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축복 곧 장자의 축복이 임하지 않았다. 이것은 때가 차야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과정을 겪고 얼마나 더 고생과 실패를 하면서 배운 후에야 하나님께 굴복하고 예비 된 은혜를 받을 것인가?

믿음의 때, 은혜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때, 예수밖에 없고 하나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손에 순순히 잡혀 있는 때는 그 사람 안에서 모든 율법이 끝나는 때 곧 모든 자기 수고와 노력이 끝나는 때요 자기 신뢰와 의지가 끝나는 때요 모든 자기 희망이 끝나는 때요 온갖 인간적 노력과 방법을 다 해 본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끝난 때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사람이 하나님이 빠진 자신의 허무한 삶으로 말미암아 피폐할 대로 피폐하고 고달플 대로 고달픈 상태에 이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 전에 빛을 보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님께로 간다면 그는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와 권세, 이것은 말할 수 없이 크고 영광스러운 특권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어진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놀라운 축복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사람들을 속여서 이것을 실제로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자존심과 독립심과 교만을 부추겨서 은혜로 사는 삶,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삶을 계속 유지하도록 만든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 다음에는 이런 말씀이 이어진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4:6-11)

하나님은 우리를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 아들의 자리로 옮기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아들의 자유와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과 육체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일반적으로는 때가 찼는데 개인적으로는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환경, 역사적 상황으로 보면 때가 찼는데 주관적인 마음 상태는 아직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형제들은 다 때가 차서 그 마음의 교만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붙잡고 있는데 나는 아직 여전히 자기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 다 앞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혼자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뒤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며 교회 안의 다른 형제들은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 제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뒷걸음질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 이렇게 외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무슨 때가 찼다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그 구원의 때가 찼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망한 것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계획,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했고, 둘째, 그들이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력과 수고와 희생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기들의 불신앙과 교만과 헛된 수고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1-24)
유대인들은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에서 이런 무디고 어리석고 교만한 자들이 교회의 진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을 개탄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심판하심으로써 정(淨)하게 하신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4:17)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튼튼하고 훌륭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돌을 다듬고 나무를 다듬는 것처럼 각종 재료를 준비하고 단련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런 심판을 받지 않도록 또는 견디도록 미리 하나님의 때를 잘 분별하여 은혜를 온전히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때가 늦어져서 불필요한 인생 낭비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떠서 은혜의 부르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16:2,3)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교회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것을 분별하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놓치면 우리는 때가 찼는데도 찬 줄 모르다가 복과 신령한 유익을 놓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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