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우리는 지난 주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하고 설계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일생을 그렇게 사신 분이요 우리의 원형이요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마쳤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신통 영통하는 어떤 종교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이다.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은 사람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직 지으신 분이 사람을 어떻게 지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9-13)

요한은 여기서 모든 사람이 다 본래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을 두고 요한은 하나님이 '자기 땅에' 그리고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셨다고 증거했다. 요한이 말하기를 빛(주님)이 '세상'에 비췄다고 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자기 땅,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과 세상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요한의 증거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보신다. 그들이 마침내 다 하나님의 나라에 실제로 참여하거나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들로 서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고 멸망하느냐 하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처음에 사람을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자기 백성, 자기 아들로 지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시각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땅을 자기 땅으로 지으셨으며 남에게 주신 일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지으셨지 자기 백성 아닌 사람을 지으신 일이 없다. 지금 마귀가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 종처럼 부리고 있고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일시적으로 그가 강도짓을 하는 것일뿐 길게 그것이 유지되도록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3:9) 야고보의 이 말처럼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이다. 지금은 사람이 사탄에게 속아서 죄 가운데서 헤매고 있고 바보짓을 하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회복되는 그 날 가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다는 것은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말이고 따라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곧 죽을 운명, 동물의 운명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만 입은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태어났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사람의 회복(구원,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어느 날 자신이 실제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늘에 속한 자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것은 본래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음 받은 것이 없었다면 회복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아담의 생명과 모양을 이어받은 아담의 자손이므로 우리는 죽을 운명을 가졌고 동물의 형상과 동물 수준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을 만드셨지 흙이 남아돌아서 사람을 만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덮어놓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것이 아니다. 먼저 당신의 영광을 표현할 아들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흙보다 하나님의 생명이 먼저요, 동물의 비천함, 육신의 연약함보다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품격이 먼저다. 사람 안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금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서는 안된다. 흙으로 지음 받은 자는 흙의 영광밖에 없고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은 흙으로 지음을 받아도 그 안에 하나님(하늘)의 영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사람이 자기의 근본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영원히 변함 없다. 영원하신 아들 안에 있으면 즉 사람이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가면 사람은 아무리 타락했고 실패했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동물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공존할 수 없고 흙과 하나님의 생명(호흡)은 조화될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셨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른 것을 보지 못했다. 모든 사람은 다 흙일뿐이고 동물일 뿐이고 육체일뿐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과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

흙은 물질이고 물질은 에너지 법칙 곧 힘의 법칙에 좌우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돈이 없고 건강이 없으면 힘이 없는 것이고 생명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면 또한 영광도 없고 품위와 존엄성도 없는 것이 세상 상식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흙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지 그것을 제한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흙은 부서지고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병들고 약해질 수 있으며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동안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을 담을 수 있다. 흙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없거나 흙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무슨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생각이다. 허무한 인생은 인생이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허무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 속에서 그 어떤 사실보다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과 모양을 따라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괴롭게 되는 것은 그 근원을 생각하지 않고, 그 존재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보시며 어떻게 이끄시고 계시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흙의 상태 곧 육신의 형편만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신의 형편에 대한) 그 좋고 나쁨의 판단 또한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함 없는 자기 생각 더 나아가서 마귀의 거짓말을 들어서 속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지 아니하면 .... 이로서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3-8)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허무해진다. 끊임없이 사람을 속이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로 잡히면 환경은 아무 것도 아니다. 무능하거나 실수해서 가난할 수도 있고 부끄러울 수도 있다. 그것이 흙이고 그것이 질그릇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영광 없음이 큰 부끄러움과 큰 영광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음 받은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으며 불평과 원망과 악한 일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진짜 부끄럽고 영광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는 것을 누림으로 인해 육신의 약함과 부끄러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자녀요 실패와 무능과 죽을 운명의 흙덩어리이기 전에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생명과 영광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근본 중의 근본이다. 그것을 이기고 여러분을 절대적으로 짓누르는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자의 형편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누구보다 잘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흙으로 지음 받기 전에 먼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고 태어났다. 이것을 보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22-32)

이번에 보니 태풍으로 인해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어지고 큰 물건들이 부서졌지만 우리 집 앞에 있는 풀들은 하나고 상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작은 미물이지만 하나님이 그 안에 태풍을 이기는 생명을 주심으로써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시면 태풍도 이기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실패와 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는 것이며 자기의 원형이요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가장 노리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이 오직 자기를 바라보며 흙(육신)의 형편만 보게 만들며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마귀는 사람이 오직 마귀의 거짓말을 듣고 자기를 지으신 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자유와 평강과 안식이 있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이 일을 하신다. 성령의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 안에 새 영을 넣으시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새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새 사람이란 사실상 본래 위치대로 회복된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 본래 위치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지으신 분의 형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지난 주에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셨고 그의 인생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전히 드리셨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주님에게는 자기 뜻이라는 것이 없었고 오직 아버지의 뜻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이제 다음 사실도 또한 보아야 한다. 즉 주님의 인격과 삶의 두 번째 특징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4-26)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다 서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하심으로써 아버지와 하나로 연합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씀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 셋이 하나였다. 그래서 삼위일체라고 한다. 이것은 오직 사랑 안에서 되어진 일이다. 존재가 하나라서 하나인 것이 아니라 생명이 하나이고 생각이 하나이고 뜻이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인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과 한 마음, 한 생각, 한 뜻을 가지고 그것을 나타내며 그것을 이루기를 힘쓰고, 또한 하나님을 자기의 유일한 기쁨과 영광과 기업으로 삼고 살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은 '함께 지음 받은 모든 형제들(사람들)'과도 같은 성질의 관계(연합)을 가지는 자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15:5-7)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5:1,2)

사실 이것이 안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사람에게 '자기 뜻'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한 원인도 이것이지만 형제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원인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다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아들의 이름은 아들의 실제, 아들의 생명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아들의 행위가 있어서 아들로 삼은 것도 아니고 아들의 행위와 아들의 생명과 아들의 능력이 있어서 아들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먼저 아들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들의 영 곧 아들에게 걸맞은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진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약속의 자녀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약속의 자녀들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아들을 보내사 그들을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얻어 참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는가? 오직 그 기뻐하신 자들 곧 그 미리 아신 자들, 그 택하신 자들이다. 사실 하나님의 더 큰 의도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되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타락한 인간의 본질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결국 일부의 사람들만 택하사 당신의 이름을 위할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어쨌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이 택하사 그 아들로 삼으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따라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그리고 아들이면 (하나님의 택하심만으로) 다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사람이며 내 인생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다른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하나님)께 아들로 드려서 사는 이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 우리 인생은 다른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아도 틀림없이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버지 앞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지음 받고 또한 여기 서 있는 아들이라는 사실만 분명하다면, 따라서 죽든지 살든지, 육신이 편하든지 괴롭든지 오직 그의 뜻을 이루며 그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 내 유일한 삶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한다면, 우리 생애는 결코 흔들림 없는 확고한 생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그 크고 확실한 승리가 어디서 왔는지 분명하게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니 아들의 삶을 잘 살 수 있었고 많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면 우리도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많은 능력을 가지고 큰 일을 할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과 실제를 나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광야에서 40일간 굶은 후에도 기적을 일으켜 떡을 만들어 먹지 않고 그대로 굶은 상태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을 보라. 주님이 아들로서 승리한 것은 그의 강함이나 약함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과 우리의 실질적인 차이는 아무 것도 없다. 그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다.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곧 하나님)이라면 우리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로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0:35,36)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그의 아들로 삼으셨으며 그의 생명을 나에게 주셨고 그로 인해 나를 영화롭게 해 나가고 계신다는 사실만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길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광스럽지 못하게 만들 자도 아무도 없다. 떡과 돈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못한다. 오직 아들이 아버지를 모르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듣고 허무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사람을 부끄럽게 할 뿐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고 육신만 돌아보는 것이 사람을 부끄럽게 할 뿐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 성령을 좇아 행함 (1) (갈5:16-18) / 2002. 11. 10 이상봉 2010.05.03 3068
30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음 (갈5:13-15) / 2002. 11. 3 이상봉 2010.05.03 3322
29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음 (갈5:7-12) / 2002. 10. 27 이상봉 2010.05.03 2910
28 누룩을 조심하며 제거함 (갈5:7-12) / 2002. 10. 20 이상봉 2010.05.03 2920
27 그리스도인의 자유 (3) (갈5:1-6) / 2002. 10. 13 이상봉 2010.05.03 2650
26 그리스도인의 자유 (2) (갈5:1-6) / 2002. 10. 6 이상봉 2010.05.03 2703
25 그리스도인의 자유 (1) (갈5:1-6) / 9. 22 이상봉 2010.05.03 3125
24 주인의 아들과 종의 아들 (갈4:22-31) / 2002. 9. 15 이상봉 2010.05.03 2828
»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룸 (2) (갈4:19) / 2002. 9. 8 이상봉 2010.05.03 2713
22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룸 (1) (갈4:19) / 2002. 9. 1 이상봉 2010.05.03 2984
21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갈4:10-20) / 2002. 8. 25 이상봉 2010.05.03 2670
20 하나님의 아신 바 됨 (갈4:7-9) / 2002. 8. 18 이상봉 2010.05.03 3174
19 아들의 영을 받음 (갈4:1-11) / 2002. 8. 11 이상봉 2010.05.03 3541
18 때가 차매 (갈4:1-5) / 2002. 8. 4 이상봉 2010.05.03 5145
1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됨 (갈3:23-29) / 2002. 7. 28 이상봉 2010.05.03 5266
16 아브라함의 복 (갈3:13-22) / 2002. 7. 21 이상봉 2010.05.03 4172
15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됨 (2) (갈3:10-14) / 2002. 7. 14 이상봉 2010.05.03 4667
14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됨 (1) (갈3:10-14) / 2002. 7 .7 이상봉 2010.05.03 3073
13 아브라함에게 전해진 복음 (갈3:5-9) / 2002. 6. 30 이상봉 2010.05.03 3648
12 성령의 길과 육체의 길 (갈3:1-5) / 2002. 6. 23 이상봉 2010.05.03 3363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