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사역과 능력 (출4:9-13) / 2007. 4. 29

2010.05.03 15:14

이상봉 조회 수:3241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4:9)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보내달라고 요구할 때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 표적과 손을 품에 넣고 꺼내는 과정에서 문둥병이 들었다가 나았다가 하는 표적을 행해 보이라고 하셨다. 만일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나일강 물을 떠서 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을 행해 보이라고 하셨다. 이 세 번째 표적은 애굽 사람들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일강이 생명의 젖줄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생명의 물이 죽음의 물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시고자 했다. 같은 물이 어떻게 어느 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물이 되고 어느 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물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람의 생명이 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물은 단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데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생은 물 자체가 생명의 근원인줄로 생각하고 그것만 붙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되면 사람이 의지하는 모든 것을 다 끊으실 것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분명하게 보이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은혜로 알고 받으면 그것은 다 생명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로 알지 못하고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그것들을 하나님 대신 섬길 때 그것은 우상이 되며 결국은 죽음이 될 것이다. 애굽인들은 나일강을 그들의 풍요의 근원으로, 생명과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치시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세상이 자기의 영광이라고 붙잡고 있는 모든 것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명처럼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피로(죽음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과 재물과 자녀와 좋은 친구들과 기타의 환경들을 주신 것은 다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것도 하나님과 충돌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하나님을 대신하도록 있는 것도 없고 사람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도 없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정채봉 류시화 저)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말처럼 어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귀하고 좋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선물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선물을 그것을 주신 하나님과 충돌시킴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선물을 가치대로 누리지 못하고 만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의 선물인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대신 의지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계기로 삼는다면 하나님은 부득이 우리에게 주신 그 선물들을 우리에게서 제거하실 것이며 변하여 우리를 찌르는 것이 되게 만드실 수밖에 없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4:10-13)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려 하셨을 때 모세는 자기의 무능을 이유로 그것을 완강히 거절했다. 모세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할 만큼 강하게 자기의 무력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안 가려고 한 것은 단지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빈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른 막대기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7:22) 이렇던 그가 혹 정말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거치는 동안 많은 고생을 하고 육체적 능력이 쇠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8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그가 쓴 시편 90편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3-10)

그러므로 그의 형편은 자기가 만난 하나님의 현재 모습처럼 가시 떨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의 중반 40년은 초반 40년의 영광을 다 까먹은 생애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에 보낸 후반기 40년(80-120세)은 가시 떨기로 산 삶이 아니라 그 이상의 탁월한 삶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가시 떨기이기는 하되 단순한 가시 떨기가 아니라 '불이 붙은' 가시 떨기였다. 그것도 꺼지지 않는 불로 타오르는 가시 떨기인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손에 잡힌 후의 모세는 '가시 떨기'로서가 아니라 '타는 불'로 살았다.  

 

이러한 모세를 위해 하나님은 장차 항상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으며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할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은 훌륭한 보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모세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며 겸손을 나타내는 것 이상의 것이다. 즉 계속되는 모세의 후퇴를 한 꺼풀 벗겨 보면 우리는 그 안에는 자존심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육체의 자존심'이 들어 있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만든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모세는 늙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무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넘게 나섰다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육체)을 크게 생각한다.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나친 것이다. 젊고 경제적 능력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을 때는 즉 육신의 힘과 능력이 있을 때는 사람은 너무나 자기를 신뢰하며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힘이 없을 때는 너무나 의기소침하다. 이것은 모두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를 옹호하며 보존하려는 태도이다.

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려 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지금 늙고 힘이 없기 때문에 젊고 유능했던 과거처럼 무언가 한 번 크게 떨쳐 일어서서 자기(능력)를 나타낼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할 때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기(육체)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수치가 드러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육체)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일의 성공과 실패는 자아(육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모세의 입이 둔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가 입을 지으신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기만 하다면 설사 그가 벙어리라 하더라도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설사 입이 둔해서 망신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고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것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우리의 자아(육체)가 영광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작은 일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무력함과 약함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영광은 육체의 능력이 드러나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목적에 쓰임으로써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드러나게 되는 데서 얻어진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의 능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출1:1-22) / 2007. 2. 11 이상봉 2010.05.03 5284
38 건짐 받기 위해 버림 받음 (출1:1-22) / 2007. 2. 25 이상봉 2010.05.03 3821
37 이스라엘의 생명력 (출1:12-22) / 2007. 3. 4 이상봉 2010.05.03 3840
36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거슬러 행함 (출1:17-2:10) / 2007. 3. 11 이상봉 2010.05.03 3598
35 모세를 예비하심 (1) (출2:11-22) / 2007. 3. 18 이상봉 2010.05.03 3809
34 모세를 예비하심 (2) (출2:11-25) / 2007. 3. 25 이상봉 2010.05.03 3754
33 하나님을 만난 모세 (1) (출2:23-3:10) / 2007. 4. 1 이상봉 2010.05.03 3587
32 하나님을 만난 모세 (2) (출3:1-10) / 2007. 4. 8 이상봉 2010.05.03 3905
31 하나님의 자기 소개 (출3:10-20) / 2007. 4. 15 이상봉 2010.05.03 3600
30 표적과 사역 (출4:1-8) / 2007. 4. 22 이상봉 2010.05.03 3625
» 사역과 능력 (출4:9-13) / 2007. 4. 29 이상봉 2010.05.03 3241
28 아론을 붙여주심 (출4:14-23) / 2007. 5. 6 이상봉 2010.05.03 3637
27 처리되어야 할 문제들 (출4:24-5:9) / 2007. 5. 13 이상봉 2010.05.03 3883
26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출5:4-7:6) / 2007. 5. 20 이상봉 2010.05.03 3532
25 철저한 심판 (출7:20-9:34) / 2007. 5. 27 이상봉 2010.05.03 3220
24 마귀의 간교한 술책 (출9:13-21) / 2007. 6. 3 이상봉 2010.05.03 3521
23 재앙 없는 땅 (출 8:22-9:26) / 2007. 6. 10 이상봉 2010.05.03 4428
22 길어지는 시간들의 의미 (출9:1-21) / 2007. 6. 17 이상봉 2010.05.03 3222
21 소유와 생명 (출10:24-26) / 2007. 6. 24 이상봉 2010.05.03 3248
20 새로운 인생의 출발 (출12:1-14) / 2007. 7. 1 이상봉 2010.05.03 5242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