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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요한복음 서론

이상봉 2009.05.29 16:24 조회 수 : 4118

요한복음 연구


제1과 요한복음 서론


1.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요한복음 20:31에서 요한은 본서의 기록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본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나사렛 사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보내신 자)로 소개하고 증거하여 사람들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 영지주의 교사들의 거짓된 가르침이 횡행하며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요한은 본서를 통해 그들의 거짓말을 반박하고 복음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나사렛 예수가 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었다.


2.요한복음의 특징 및 다른 세 복음서와의 차이점

요한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마태, 마가, 누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증거하였다.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공관복음서)들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들은 예수님의 생애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과 말씀들을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하여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요한복음은 그러한 사건들과 말씀들을 '해석하여' 그 영적 의미를 알게 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공관복음이나 요한복음이 다 같이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및 부활을 증거하며 그 속에 나타난 '사람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창조자이시며 빛과 생명이며 구원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그러한 이유로 인해 요한은 본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다른 복음서들과 같이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거나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고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소개함으로써 '그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또한 요한은 그의 복음서 여러 곳에서 "나는 ... 이다" (예를 들어 나는 빛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마태는 그의 복음서 첫 부분에 주님의 족보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세례 요한과 주님의 사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누가는 주님의 탄생 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이겠는가?

마태복음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집으로 가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마태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소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증거하기 위한 책이다. 마태는 주 예수님이 그동안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메시야, 그 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비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을 생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종으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섬기는 사역부터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에 비해 누가복음은 복음서 첫 부분에 예수님의 탄생 과정 및 주님이 목자들의 방문을 받으신 일과 같은 주님 탄생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누가가 주 예수님을 인자(人子, 사람)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요한복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의 (사람으로서의) 탄생에 대한 언급 대신 '말씀이신 하나님'의 육신 되심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셋째, 이러한 이유로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이 역사적인 데 비해) 매우 신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 그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님의 어떤 말씀들을 특히 강조하여 자세하게 증거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서 가장 단순하지만 영적으로 가장 깊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을 생략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주님의 탄생, 세례 받으심, 시험받으심, 변화산 사건, 최후의 만찬 등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이 네 복음서 중 가장 늦게 (1세기 말엽에) 쓰여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미 전에 나온 복음서들을 통해 이런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고 가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등이 주님의 비유나 함축성 있는 간결한 말씀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요한은 주님의 비유나 간결한 말씀들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 반면에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이 생략하거나 간략히 기록한 부분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의 비유나 간략한 말씀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 대신 '강화'(講話)라고 불릴 수 있는 긴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요한복음의 대부분 내용은 예수님의 이런 일련의 강화들을 길게 소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청중들의 질문이나 반박으로 인해 중단되는 일이 종종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공관복음서에는 찾아볼 수 없다. 또 공관복음서에는 빠져 있는데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기록 중에는 예수님의 유대에서의 초기 사역과 같은 것도 있다.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이 책이 역사서(歷史書)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고 신학서(神學書)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 내용들이 연대기(年代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만 예수님의 초기 유대 전도 활동을 전하고 있다. 또 처음 몇 장의 기록을 통해 요한은 공관복음서들에서 언급되지 않은 기간 곧 예수께서 유대와 갈릴리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할 시기의 사건들을 전하고 있다.

요한은 주님의 생애 중에 적어도 세 번의 유월절이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네 번 여행했으며 그에 앞서 유대 지방에서 전도 활동을 하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공관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주로 갈릴리에 국한시키고 있으며 유월절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 지낸 한 번만 언급한다. 그래서 공관복음서들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 기간이 일년이 아닌가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통해서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보충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요한은 다른 복음서들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건 곧 주님이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나 주님과 니고데모,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나사로의 부활 사건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넷째,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다른 복음서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몇몇 용어들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들인데 '영생'(永生), '생명', '영(靈)', '빛', '문', '목자', '떡' 같은 것이다. 그리고 대조 개념 곧 '빛과 어두움', '사랑과 미움'과 같은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또 사랑, 眞理, 증거, 죄, 심판 같은 용어들도 자주 사용한다. 그는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와 생명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증거한다.

또 요한은 종종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초인적(超人的), 초자연적(超自然的), 초능력적(超能力的) 행위를 이적(異蹟, 奇蹟, wonder, miracle)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표적(表蹟, sign)이라는 단어로 묘사한다. 그것은 요한이 주님이 일으키신 놀라운 사건들을 단지 주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나타낸 사건으로 보지 않고 주님의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의 증거 및 그의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聖人君子 중의 한 사람)으로 보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기한 능력을 가진 기인이나 도사류의 종교 지도자로 보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는 주님이 오직 말씀(하나님)이 육신(사람) 되신 분 즉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이 충만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원했다.



요한복음 1장

1.태초부터 계신 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3)

여기서 요한은 나사렛 예수가 태초부터 계시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천지창조에 참여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다. 요한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는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이시다. 그렇다면 본래(태초에는)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분명히 많은 아들들을 거느리고 계신다.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즉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원본으로 삼아 많은 아들들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의 아버지(만드신 이)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을 제외한 다른 만물들도 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왜 그들을 아들이라고 일컫지 않는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독생자로 말미암아 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 아들을 그대로 베낀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 안에서 나온 것만 아들이다. 즉 아들을 베낀 것만 아들인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그의 형상과 모양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들(독생자)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요한이 주 예수님을 이렇게 사람의 근원(태초)으로 소개한 것은 그리스도가 바로 사람이 돌아가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구원과 회복은 처음 자리 곧 사람의 본래 자리가 어딘가를 아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원형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우리의 본 모습이 무엇이며 우리의 갈 길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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