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생명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4.생명이신 그리스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4,5,9,10)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으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여기서 빛이란 결국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요한의 증거를 요약하면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생명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생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에 의해 지음 받았고 또한 그 생명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타락 후)에 와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우주 만물이 다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만물의 생명이시며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 서 있다. 그러나 사람은 특히 그러하다. 사람은 단지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 ‘그리스도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속에 깃들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인간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생명을 주는 분’ 곧 사람을 살게 하는 분이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것은 그가 우리 생명의 근본이요 원천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지금 실제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심어놓은 생명나무가 나온다. 그 나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통로였다.
사람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나무의 실체이자 오늘의 생명나무이다. 첫 사람 아담이 생명의 통로인 이 나무를 거절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택함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그 생명나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습으로 사람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생명이시며 또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강조한다. 어떤 면에서 요한복음은 이 주제로 시작하여 이 주제로 끝난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l:4)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5:39,4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곧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20:30,31)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얻는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1.육신의 생명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셨으며 또한 그것을 계속 공급하신다. 그리스도가 사람의 생명이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산 자, 생명)이 된지라”(창2:7) 이 말씀은 사람이 사람 된 것은 하나님이 그 코에 ‘사람되는 생명’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생명이 없으면 사람은 단지 흙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귀에게 속지 않는다. 사람은 금이나 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흙으로 곧 티끌과 먼지로 만들어졌다. 땅에는 수많은 재료들이 있고 그 중에는 귀하고 빛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사람은 그 중에서도 가장 하찮고 평범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근원은 귀금속이 아니라 티끌과 먼지이다.
이러한 성분의 인생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속에 자기의 영광스러운 생명 곧 아들(그리스도)의 생명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사람의 진정한 생명이다. 육신의 생명이 사람의 참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참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티끌과 먼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빠진 아담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그가 어떤 종교, 어떤 문화, 어떤 좋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결국 티끌과 먼지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편 기자가 노래한 바와 같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무리 기묘하고 놀라울지라도 그것은 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들어감으로 인해 그런 것이다. “주께서 내 장부(내장, 內臟)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3-16)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영광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육체의 생명을 신뢰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한 바와 같이 흙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사 식물로 주실 정도로 하찮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는 인생은 단지 뱀의 밥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미가 7:17)
욥은 그가 처한 비참한 자리에서 사람의 보잘것없음을 묘사하기 위해서 스무 번이나 넘게 인생이 티끌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욥10:9) 모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4,5 모세의 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l03:l3-15 다윗의 시)
이러한 티끌과 먼지 같은 존재가 자기를 스스로 높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먼지 됨을 인식하고 주의 생명을 사모하며 붙드는 사람은 생명을 누리게 된다. 삶(목숨)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이다. 즉 삶(목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육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주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마귀는 그를 살해하거나 굶겨 죽이거나 언덕에서 밀어 죽이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는 죽지 않았으며 다치거나 상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생명을 공급하시면 사람은 산다. 이것을 구호나 원리 정도로 알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제적인 문제이다. 사람(육신)이 사는 최고의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생명을 받는 것이다.
2.영적인 생명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단지 육신적 생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생명 곧 영적 생명을 주신다. 영적 생명이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의 마음과 뜻을 제것으로 누리며 그의 일과 행위를 저도 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속에 들어왔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동물적 생명 이상의 생명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생명, 하나님을 본받는 생명이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은 이 생명을 잃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육체의 생명 곧 동물의 생명밖에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생에게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되찾게 하셨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1-6).
3.영원한 생명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땅에서 잠시 누릴 수 있는 생명 곧 잃어버리거나 사라질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므로 사라지거나 시들지 않는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1:23-25)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하므로 항상 자기를 돕고 자기를 채울 존재를 찾는다. 그래서 세상에 종교가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종교든지 그 사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사람들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받는가? 우리는 그에게서 지엽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을 받는데 바로 그것이 생명이다.
새에게는 새의 생명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생명이 있다. 새가 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그것을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보려고 했지만 오늘까지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의 운동으로 날아가는 힘(나는 힘과 나아가는 힘)을 동시에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는 어렵지 않게 날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날 수 있는 새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헤엄을 자유롭게 친다. 그러나 날지는 못한다. 그러나 새 역시 아무리 훈련을 해도 헤엄을 칠 수는 없다. 각각의 생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활 양식은 소유한 생명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문제는 가르치고 모방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생명이 다른 한, 아무리 다른 삶을 가르쳐도 그 나타나는 표현(생활 방식)을 바꿀 수 없다. 표현을 바꾸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생명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악하고 타락한 생명이라는 사실은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나타나는 생활)이 악하고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 환경이 더럽고 부도덕하며 악한 것을 비난하고 싫어하지만 사실은 사람 속에 있는 생명과 그 생명으로 말미암는 사람의 행위(삶)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좋은 사회, 좋은 결과를 나타낼 수 없는 생명이다. 결국 오늘 인간 생활의 궁극적으로는 죄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이것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개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종교와 교육, 사회의 법과 도덕 윤리가 이것을 의도하지만 항상 실패할 뿐이다. 약간은 향상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안 된다. 인간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거듭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사람의 악함과 소망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되어야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의와 평안과 기쁨을 갈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7) 아들의 생명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러한 삶은 불가능하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예수님은 육을 고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새 생명을 가진) 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오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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