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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빛이신 그리스도

이상봉 2010.05.04 14:19 조회 수 : 3609

제4과 빛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5.빛이신 그리스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4,5,9,10) 


사람은 어둠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인생이 무엇인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요한복음 8:1-11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한 여자 죄인을 주님께 데려와서 심판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그들은 자신이 죽어야 할 죄인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만 눈이 밝았다. 

 

주님은 자신의 빛으로 이러한 인생의 감추어진 어두움을 드러내셨다. 바리새인들은 그 죄인 여자뿐 아니라 주님조차 심판하려고 다가왔다. 그러나 결국 그들 자신이 심판을 받고 수치를 당했다. 주님은 그 일 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요8:12) 그렇다. 주님은 생명의 빛이시다. 우리가 항상 밝은 길로 행하려면 항상 그를 따라야 한다. 그가 무엇을 비추시며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우리는 그것을 들어야 하며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은 주님께 시비를 걸었던 그 유대교 지도자들은 빛이 그들 가운데 비취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교만하여 닫혀 있었기 때문에 빛이신 주님을 알지 못했고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끝내 어둠 가운데 머물다가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이 스스로 밝다고 자랑하던 빛은 참 빛이 아니었으니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죄 짓는 것은 보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는 못한다. 요한은 세상 어두움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이기지 못하더라) 어둠은 결코 영구히 빛을 이기거나 제압하지 못한다. 빛은 어떤 압박과 반대를 받아도 없어지지 않으며 일시적으로 감추어질 수는 있어도 결국은 어두움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밝히고 만다. 역사적으로 어두움이 빛을 이긴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 결코 영구히 그렇지는 못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세상 많은 사람들도 다 그처럼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누가와 마태는 사람들이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고 증거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2:79)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4:16).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처럼 어두움과 사망의 그늘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는 돋는 해와 같이 어두운 세계를 비추는 빛이다.  

 
마태와 누가처럼 요한도 요한복음 첫 부분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어두움이 이기지 못하더라)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빛이 되시는가? 먼저, 그의 말씀이 우리의 빛이 된다. 그 안에 있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바로 우리의 빛이 된다. 또한 그의 거룩한 인격이 우리의 빛이 된다. 그는 사람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그의 삶을 통해 보이셨다. 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주님은 참 빛 중의 빛이시다.  


모든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서 온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아버지를 나타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아는 빛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과 우주와 인생에 대해 참으로 알게 된 것이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누군가에게 임하실 때 즉시 일어나는 일은 사람이 속에서부터 밝아진다는 것이다. 그 눈이 진리에 대해 밝아지며 그로 인해 사람 자신이 밝은 사람이 되고 빛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빛은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볼 수 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주의 광명 중에서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으로 듣는 사람은 누가 그의 죄를 일일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자기 속에서 그의 모든 죄가 드러나게 되고 자기의 모든 생각과 야망이 드러나며 그것들이 다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가 비취기 전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어둠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빛이 비취었을 때 자기들이 진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흑암 가운데서 마귀에게 속아서 어리석고 거짓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옳다고 생각하며 붙잡고 있던 모든 이론과 사상들이 그 빛 가운데서 다 허망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주님의 오심은 모든 혼돈과 혼란을 바로 잡아 참된 질서와 진리를 사람들에게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가진 것이 가장 밝고 확실한 빛이라고 생각하지만 촛불이 태양 앞에서 빛을 상실하듯이 모든 세상의 빛은 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빛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빛이 비췰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나는 그 빛을 받아들여서 진리로 나아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빛을 거절하고 계속 어두움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9-21) 


사람들은 자기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어떤 사상과 사람에게 별로 적대감을 갖지 않으며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수치와 허망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참되고 강한 빛이 있을 때 그 진리의 체계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대적하려고 한다. 요한은 왜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고 증거했는가? 그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당시의 사람들이 자기의 어두움을 보존하기 위해 빛을 이기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어둠과 사망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빛을 미워하며 거절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는 결코 평안이 없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자기 뜻(소원)대로 사는가? 그렇지도 못하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든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오직 하나님과 사람을 거슬러 범죄하고 또 그로 말미암아 양심의 자유와 평안을 얻지 못한 채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자기 삶을 포기하고 주의 빛으로 나아올 때 사람은 자기를 불안하고 괴롭게 만드는 모든 원인들과 요소들로부터 근본적으로 구출될 수 있다. 누구든지 빛 가운데서 자기의 모든 죄를 깨닫고 버리면 그 삶은 하나 하나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것이라고 붙잡고 있는 생각들은 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 마귀가 심어준 것이다. 그런 모든 마귀적, 이기적 생각들과 야망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인생은 밝아지고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비추심이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이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빛이 우리에게 비췰 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빛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교회 모임이나 혹은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 빛으로 비췸 받는 것이며 형제들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다 빛 비추임을 받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우리에게 비취는 빛에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고 하심으로 세상에 빛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의 넷째 날에 빛을 내는 물체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심으로 그것들을 통해 세상에 항상 빛이 있도록 역사하셨음을 본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실 때 제일 먼저 빛이 비취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은 빛의 나라이다. 요한계시록 21:23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성은 빛의 성이다. 성의 모든 곳에 빛이 있다. 이 빛은 너무나 확실하고 밝아서 해나 달이 도무지 필요하지 않다. 성을 밝게 비추는 빛은 하나님 자신이다. 또 거기서 어린 양 그리스도는 등이 되신다.  


천국에서뿐 아니라 땅에서도 하나님은 빛을 비추신다. 다만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그리스도를 등으로 하여 빛을 비추신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무언가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형제들이 모여서 그리스도를 말할 때 우리는 거기서 우리 삶을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에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의 은사를 가지고 우리에게 형제로 다가올 때 그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의 답답함과 어두움을 해소하는 빛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분위기가 밝고 새로운 것은 교회 안에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사망과 어두움에 처한 모든 자들에게 빛을 비추신다. 오늘 우리 형제들은 그런 그리스도를 반사한다. 형제들 안에서 비취는 빛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빛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바르고 또 형제들이 교회 생활에 충실하다면 그들의 삶에는 어두움이 있을 수 없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오늘에 있어서 세상의 빛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어떤 의미에서 주 예수님은 더 이상 세상의 빛이 아니시다. 그것은 주님이 지금 이 땅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스스로가 아니라 오늘 세상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 빛을 비추신다. 주 예수님의 빛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며 빛의 반사체이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나는 세상의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 46)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을 향해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의로 빛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님의 빛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주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고 칭하셨다.(요5:35). 바로 그리스도인은 주님에 의해 ‘켜서 비취는 등불’인 것이다. 또 주님은 아직 자기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요l2:35)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자신과 일행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4:8,9) 


오늘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가? 사람들은 오늘날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할 것이며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빛, 진리의 빛을 찾지 못할 것이다. 오직 우리 안에서만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무엇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 혹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빛이라고도 이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감추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두 가지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하나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어두움을 드러내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며 죄인들로서 그들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폭로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마도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혹은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라고 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바울처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딤전1:l5)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엡4:11-13)고 했다.  


또 하나는 적극적인 면에서 진리의 빛을 비춤으로써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자유의 길로,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 길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여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또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빛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밝은 길로 행할 수 있다. 인생을 바로 사는 문제, 밝고 빛나는 인생을 사는 문제는 사람이 많이 배워서 지식이 풍부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고도 궁극적으로는 상관이 없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고도 상관이 없으며 철학을 연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고도 상관이 없다. 오직 그것은 그 안에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 있는 것이다. 밝은 인생 그것은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그리스도가 그 안에서 그의 인생 길을 인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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