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1)
요한복음 4장
24.영생의 물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4:1-18)
A.D. 27년 12월 무렵 세례요한은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요한의 인기가 클 때여서 요한의 투옥 소식은 그를 시기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곧 요한보다 더 그들을 긴장시키는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주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요한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소식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또 다시 신경이 날카롭게 되었다. 이것을 아신 주님은 아직은 (그들과 충돌하여 세상을 떠나게 될)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시고 유대를 떠나시기로 결심하였다.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때가 오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것이다.(요10:18, 13:1, 14:30,31)
남부지역인 유대에서 북부지역인 갈릴리로 가기 위해 주님 일행은 중간지대인 사마리아 땅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주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에서 한 우물에 들렀고 거기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물을 길으러 오지 않는 제 6시 무렵에 홀로 물을 길러 나왔다. 제 6시는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해가 뜬 후로부터 6시간 지난 시간이니까 대략 낮 12시쯤이고 로마인의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자정 또는 정오부터 6시간 지난 시간이니까 오전 6시나 오후 6시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6시를 유대식으로 계산하여 정오 무렵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은 해가 뜨거운 한낮에 홀로 물을 길러 나온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고 지금은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주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그녀의 과거를 단번에 통찰하셨다. 그녀의 인생은 꼬일 대로 꼬이고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인생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사람이 그립고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었지만 누구도 그녀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 자신과 그녀의 상대방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 (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없는 환경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타락한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나를 사랑해주어야 할 그는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자신이 나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목이 마르고 다른 사람은 물이 있어야 일이 되는데 두 사람 다 목이 마르고 물은 없으니 여기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서 인생에게 놓여 있는 근본적인 가난과 저주를 보셨다. 그리고 당신의 물로 그의 목마름을 해갈(解渴)시켜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길러 왔다가 그의 영혼 깊은 곳을 적시는 영생의 물을 마시게 되었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자신의 소원과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일치시켜서 행하는 한 사람 곧 어떤 사람도 육신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눈으로 대하는 한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다. 그 순간 그녀는 이전에 지니고 있던 모든 인생의 문제를 풀었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녀는 곧 동네 사람들 곧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그 사람들에게로 달려가서 구원자의 등장을 알렸고 마을 사람들은 주님과 몇 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의 말씀을 들으며 구원을 받았다.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들이 그녀를 구원하지(만족시키지) 못한 것은 그들에게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만한 능력 곧 생명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고 그것을 제것으로(자기 일처럼) 행할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이 있었다. 곧 주님께는 사람을 차별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생명의 능력(여유)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 다수가 주님이 주는 물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래서 주님이 유대 땅을 떠나 고향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구원을 받지 못한 데 비해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이 주님이 주는 생수를 받아 마시고 구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목마른 자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로부터 이스라엘 사람으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마리아인들에게서조차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부정한 여인, 그들의 이 가난한 자리가 바로 그들의 가장 큰 복이었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은 여러 모로 대조가 된다. 3장에서 주님은 한 사람의 훌륭한 남자를 만났고 4장에서 주님은 한 사람의 못난 여자를 만났다. 3장에서 주님은 정통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대교의 선생을 만났고 4장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릴 수조차 없는 사마리아인 그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지 못한 문제 여성을 만났다. 그러나 주님은 두 사람에게 다 같이 하나님의 세계를 전했으며 그 결과 두 사람 다 생명을 얻었다. 다만 그 두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과 시간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는 그들이 놓여 있는 자리 곧 그들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다.
두 사람을 대하심에 있어서 주님은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하셨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높고 고상한 인물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진리에 대한 무지를 책망하는 말씀을 하셨고 가진 것이라고는 죄와 실패밖에 없는 저급한 인물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안식을 가져다 주는 생명의 물을 주셨다. 주님이 이렇게 다른 태도를 취하고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최적의 사역은 그 사람의 영적 상태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1:51-53)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곧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은 언제나 이러하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2:1-8)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가난한 자’ 곧 그 마음이 가난하고 곤고한 자의 것이다.(마5:3, 눅6:20)
생명의 갈증을 가지고 있는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교훈과 책망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선한 삶을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선한 삶은 오직 생명의 여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이 십계명과 안식일과 기타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그들이 그러한 말씀에 무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지함으로 인해 그들 속에 생명(사랑으로 인한 여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생명이 풍성하고 여유로워서 밖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람들은 ‘너는 왜 그렇게 부정하냐’ 혹은 ‘남자 욕심을 그만 부려라’ 혹은 ‘깨끗하고 선한 삶을 살면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 말들이 생명이 되었다면 그녀는 벌써 남편을 바꾸는 것을 중단하고 정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문제와 죄는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근본적인 생명의 채워짐이 있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의 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생명으로 자신부터 충만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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