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병
요한복음 11장
74.시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는 주님이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왜 병이 찾아오며 죽음이 찾아오는가? 그것은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명은 조금씩 소진(消盡)되고 쇠잔(衰殘)해진다. 그리고 삶의 절정기에서조차 삶은 힘들고 지치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질병은 사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망은 죄와 연결되어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6:23) 그러므로 죄가 없어지기 전에는 질병과 사망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과 탄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90:3-9)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인생의 실상이다.
무릇 모든 질병은 저주의 산물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길가에 앉은 소경을 보고 주님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하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것이라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 심지어는 저주조차 그리고 그 저주를 불러온 장본인인 사탄조차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 애굽의 바로는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서 조금도 방해받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끈질긴 저항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온 세상에 나타낼 기회로 쓰셨다.
야고보는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2-12)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만든다는 이 시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3-15) 시험의 출처는 하나님도 나도 아니고 바로 악한 자(마귀)이다. 마귀가 모든 시험의 근원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악한 자)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은 좋지 않은 것이며 위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했다. 그것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시험조차 유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도 그렇다. 질병 역시 일종의 시험이다. 그리스도인도 병에 걸리면 생명의 손실을 보기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우리를 병에 걸리게 함으로써 우리로 할 일을 못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에 유의해서 될 수 있는 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질병(의 고통)을 통해서 사람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실 수도 있다. 그리고 병을 낫게 하시거나 다른 방법으로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부러 병에 걸리거나 병들도록 몸을 방치해서는 안되지만 할 수 없이 병이 들었을 때는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도록 은혜를 구해야 한다.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치료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몸에 공급되어 질병으로부터 낫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질병을 허락하심으로)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빛을 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질병을 통해서도 은혜와 유익을 얻어야 한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으로 났습니까” 하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대답하셨다.(요9장)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주님은 그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어떤 사람을 소경으로 만들거나 질병에 걸리게 하시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능력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병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병,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 손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증인)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경험한 사실들을 증거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모두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가를 증거하는 것이다. 나사로를 살리신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병들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놓더라도 그는 언젠가는 결국 다시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사로를 고치신 것은 하나님이 (나사로처럼) 죽을 병에 걸린 모든 인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며 다시 살리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일들은 다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부활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경 속에서 불평 원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당한 모든 일은 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허락된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목적이 호의호식하며 육체의 안락(安樂)을 누리며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데 있다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결코 가난해지거나 병들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잘먹고 건강하게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영광)을 나타내는데 있기 때문에 택함 받은 자도 때로 병에 걸리며 가난과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사로는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였다. 주님은 그가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은 것을 보시고 주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사람들도 주님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사로가 병이 들고 그것이 깊어져서 죽기에까지 이르는 동안에 전혀 개입하시지 않았다. 질병과 사망 자체를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사로말고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이 다 나사로와 같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을 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의 사랑이다. 어떤 사람은 병이 들지 않게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은 병이 든 후 치료하심으로써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병이 들었는데 낫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시오” 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들 수 있으며 병으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허락하시는 경우가 아닌 질병들 곧 성도의 육체를 약화시키기 위해 사탄이 던지는 시험들과 질병들은 대적하여 물리쳐야 한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은 건강을 누리는데 있지 병들고 고통을 당하는데 있지 않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도해도 낫지 않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병에 걸리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병 낫기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병이 원인 불명의 수상한 병이고 급작스럽게 임한 것이라면 마귀가 우리를 해치기 위해 던진 시험일 수도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물리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간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의지하는 것이며 몸을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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