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
요한복음 11장
82.기적에도 반응하지 않음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 이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11:45-57)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을 때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더 견고히 믿게 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주님을 더욱 반대하게 되고 죽이고자 하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어떤 사람이 처음에 주님을 감시하기 위해 왔다 하더라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을 목격하였다면 마음을 바꾸고 길을 바꾸어서 주님을 믿고 따랐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을 본 유대인 중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대신 바리새인들에게 그 일을 이르러 갔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주님이 행하신 그 놀라운 일로도 감동이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다만 말씀(약속)만 듣고서 주님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며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사로의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보고 믿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믿는 사람도 큰 은혜를 받은 자이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10:14-18) 안 듣고 안 보고 믿기는 어려우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자기를 나타내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다고 다 믿는 것도 아니고 듣는다고 다 깨닫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깨닫는다고 다 감동되어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고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다. 아무리 보고 듣고 만져도 아버지께서 아들의 원대로 계시를 보여 주신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백 가지 체험이 다 소용없는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 25-27)
주님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사실 더 할 것이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그의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셨다) 안 믿는 사람들은 끝까지 안 믿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5-27)
하나님의 택하신 자 곧 주님이 내 양이라고 말씀하시는 그 사람들은 보고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계시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안 것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요6:67-7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5-17)
주님을 믿는 일은 상식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적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는 것은 영적 싸움을 거쳐서 이길 때만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너무도 명백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아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더 큰 자가 사람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를 결박하여 제어하지 않는 한 사람은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사람은 스스로 큰 자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사람이 마귀와 결탁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들을 마귀의 결박에서 풀어 그 마음을 온전케 하며 부드럽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의 나라를 이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로 끝까지 아들을 붙잡게 하시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이로 인해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만 잃어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도 ‘지키지 않으면’ 잃게(넘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 한다.(마24:2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은혜를 구해야 한다. 시험에 들지 않고 악한 자의 손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누구든지 성령께서 믿도록 역사하시지 않으면 주님을 보고 듣고 경험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못한다. 우리가 오늘날 주님을 믿게 된 데는 이런 저런 과정이 있었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어서 믿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감동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으며 전에 관심을 갖지 않던 영생과 진리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자기가 정말로 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을 의심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가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지 않은 사람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별로 그런 염려를 하지 않으며 또 일시적으로 그 문제에 관해 관심을 보이다가 곧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만일 현재 많은 부족에도 불구하고 영생을 사모하며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면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 거의 틀림없으며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다.
83.가야바의 불행한 쓰임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11: 47-53)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이상하고 악한 회의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다. 대제사장들은 모두 사두개인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반대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였고 사두개인들이 주님을 반대한 것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세상적 특권이 위태로워질까해서였다.
그들은 평소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예수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연합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후 헤롯과 빌라도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전에 원수였으나 예수님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태도를 취함으로 친구가 되었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1,12)
이 일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비롯하여 모든 권위를 싫어하고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까닭은 사람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자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를 낮추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해치는 큰 적을 막기 위해서는 작은 원수들끼리 연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다 거절하게 된다. 따라서 마지막에는 서로 물고 먹다가 다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의 생리이며 바벨론으로 대표된 세상의 원리이다. 그래서 바벨론은 크고 화려한 듯이 보여도 필히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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