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과 새 계명
요한복음 13장
100.그리스도의 길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13:33)
주님이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요7:33,34)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요8:21-24) 이 두 말씀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메시아)를 찾지만 그들의 길(처소)과 그리스도의 길(처소)이 다르고 그들의 생명과 그리스도의 생명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씀이다.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비록 일시적이나마 서로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왜 떨어져야 하는가? 왜 주님은 제자들이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로 가야하는가? 가야만 제자들이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주님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5-7) 주님이 가야만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오시고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해야 그들이 변하여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가는 것이다. 즉 지금 주님이 가는 것은 제자들을 사랑하사 살리고 온전케 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죽으러 가는 것이다.
이 길은 유대인들이나 현재의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길이다. 주님이 가신다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물었다. 그때 주님은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말했지만 주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라고 대답하셨다. 왜 유대인들이나 현재의 제자들은 주님이 가신 길로 따라갈 수 없는가? 그들의 자리 즉 그들의 삶과 주님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인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지만 그들은 삶의 자리가 육신(세상)에 있기 때문에 결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을 할 수 없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 혹 목숨을 버릴 수는 있을지라도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으며,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는 있을지라도 불명예(타인의 죄를 덮어씀, 신성모독죄를 덮어씀)를 안고 죽을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자기 목적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분이기 때문에 육신의 형편과 관계없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자기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요 그 목적은 육신의 영광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주님의 일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결코 주님의 길로 따라올 수 없음을 분명하게 미리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길은 그 생명, 그 자리에 의해 결정된다. 진리(하나님의 세계)를 아는 사람은 결국 진리의 길로 갈 수밖에 없고 하늘에 속한 생명(영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하늘(하나님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세상밖에 안 보이는 사람, 목숨(육신의 삶)이 전부인 사람은 결코 그것을 버릴 수 없다. 베드로는 그 속에 ‘진리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예언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가 이 세상(육신의 삶, 목숨)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을 분명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버릴 수는 없다.
101.생명과 계명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13:34,35)
사랑은 그리스도(하나님)의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제자들이 지금 주님이 가시는 길로 갈 수 없는 것은 그들 안에 이 생명 곧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가 크냐 하는 것으로 다투다가 주님의 발을 씻어드리는 일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적어도 현재에 있어서는 주님과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즉 실질적으로는 주님의 제자가 아닌 것이다. 제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제자인 것도 아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주님을 따라다닌다고 해서 제자인 것도 아니다. 오직 주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제자인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이 계명은 이미 있는 계명인데 왜 새 계명이라고 하는가? 요한은 그의 편지(요한일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요일2:2-9)
여기서 요한이 말한 주님의 계명은 주님의 ‘사랑’ 곧 주님이 타인의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화목 제물로 바친 그 행동이다. 요한은 우리가 그의 계명 곧 형제를 사랑하는 행동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런 줄로 속고(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생명이 곧 계명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즉 주님의 생명을 지닌 사람은 주님의 계명이 그 속에 있는 것이고 그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0,21)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이란 성령을 받아서 제자들이 주님과 동일한 생명을 갖게 되는 때를 말한다. 그때는 제자들이 스스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이 자기들을 하나님의 세계(행위)로 이끄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될 것이며 그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주님이 가시는 것은 바로 제자들에게 이 생명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다. 그가 가면 성령님이 오실 것이고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며 그 마음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이끌고 격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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