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과 처소와 길
요한복음 14장
102.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4-16장은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은 다음 세 구절에 잘 설명되어 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요16:1)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16:33) 주님이 떠나시면 제자들은 자기들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근심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에게 당신이 떠나시는 것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필요가 있었다.
즉 주님은 제자들이 이제 곧 닥쳐올 상황 속에서 실족(失足, 낙심, 실패)하지 않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요14-16장의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여기서 먼저 주님은 당신이 지금 제자들을 떠나시는 것은 제자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떨어지는 것이며 그 목적은 제자들을 위하여 한 처소(處所,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처소인가? 주님의 표현대로 하면 ‘아버지 집’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세계이다. 마귀와 죄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와 그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만 있는 곳이다. 이전 것들은 다 지나가고 만물이 새롭게 된 곳이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1-5)
문제는 이러한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내가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 안에 있다. 여기서 ‘나 있는 곳’이란 주님이 계신 곳 또는 주님이 가실 곳 즉 아버지 집이다. 주님은 어떻게 제자들을 그곳에 있게 만드시는가? 제자들을 자기에게로(“내게로”) 영접함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아버지 집 즉 하나님의 나라(세계)는 다른 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내용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요13:33-36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사랑의 세계’이다. 그곳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사랑과 의와 진실)으로 사는 세계요 하나님을 본받는 아들로 사는 세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 곁에 있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과 권능으로 역사하는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14:4) 그러나 제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14:5) 제자들은 실제로 주님이 가시는 곳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 즉 영생의 세계,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하여 같이 사는 세계에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하물며 그 길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들은 하나님도 그리고 그의 나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실은 주님 자신이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했을 때 ‘너는 나를 따라올 수 없다(너는 나 있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13:33-36) 그런데 왜 주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것이며 영생과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바로 길이고 처소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14:6,7)
주님이 가시는 곳은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로 연합되어 함께 사는 세계이다. 그것은 곧 말씀이 육신이 된 한 사람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그 사람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하나님을 그 속에 모시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천국이고 제자들이 이르러야 할 목적지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 자신이 바로 하나님(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에 와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생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이고 진리가 무엇인지 지식적 철학적으로는 알지 못했지만 실체적으로는 이미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동안 그들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이다. 나중에(오순절에)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했을 때 제자들은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해 그리고 영생과 진리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미 수년 동안 그것을 자기 곁에서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단지 눈이 어두워 그동안 못 느끼고 있었을 따름인 것이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1-3) 여기서 요한은 자기가 ‘생명의 말씀’ 또는 ‘영원한 생명(영생)’을 보고 듣고 만졌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그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귐(체험과 동행)이 곧 ‘아버지(하나님)와 함께 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러한 사귐은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버지와 아들(그리스도)의 사귐은 아들과 요한과의 사귐으로 이어졌고 그 주님과 요한의 사귐은 이제 요한의 편지를 받는 독자들(형제들)과 요한의 사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때 요한의 편지를 받는 그 형제들은 단지 요한과만 사귄(교제한, 생명을 나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도 사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곧 길이고 진리고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길이란 영원한 삶 즉 영생의 길이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 안에 있는 완전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영생’ 즉 완전한 삶이다.
이제 제자들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제자들이 영생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아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제자들이 영생이신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참으로 아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찾으며 길과 진리를 찾아 헤매지만 그들이 그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려고 하는 완전한 삶 곧 영생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다.(요17:3)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참으로 아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하나님의 나라(하나님 안에 있는 삶)와 거기에 이르는 길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비한 지식과 비밀을 깨달으며 신기한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 곧 하나님이 사람 안에 하나가 되어 거하시는 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4:8-10)
이것은 영원한 숙제이다.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말씀은 내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1:15)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
하나님은 볼 수 있는가 없는가? 볼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볼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먼저, 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무 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크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월등히 넘어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개미나 하루살이가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고 지구의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우리가 우주 전체를 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인간이 도저히 그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없는 지극히 광대한 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본 사람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이 자기를 어떤 모양으로든 사람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단 하나님이 나타내신 만큼이다. 그 ‘나타내신 하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이 그리스도 중의 대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말은 곧 예수님만 그리스도(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 속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14:1-1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행한 일은 어떤 일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일로써 증명한다. 그 일은 첫째, 주님의 착함과 거룩함, 그의 진실함과 의로움을 나타낸 일들이다. 그 다음이 그가 행한 기적들이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시다는 증거는 이렇게 두 가지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 속에 있는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그 속에 있는 것이 둘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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