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과 진리의 성령
요한복음 16장
115.그리스도의 영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16:12-15)
주님은 여기서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님은 다른 일을 하는 분이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를 알게 하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떤 진리인가? 첫째, ‘모든’ 진리이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된’ 진리이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바울은 성령님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표현했다.(엡1:17) 그것은 그가 우리의 눈을 열어서 마땅히 알아야 할 모든 진리를 보게 하시며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알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또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고 했다.
또 바울은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8:10,11)고 말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비추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다. 성령님은 사람의 모든 궁금증을 다 풀어주는 (점치는) 영도 아니고 사람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의) 영도 아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따르게 하는 분이다.(요한복음 강해 105번 참조)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6:16-22)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주님이 죽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가시기(세상을 떠나시기) 때문이고 조금 있으면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음으로써 ‘교회 안에(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제자들은 슬퍼했고 세상은 기뻐했다. 세상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뻐한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간섭과 진리의 책망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껏 육체의 욕망대로 살고 마음껏 죄 짓고 비뚤어진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곧 슬픔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스도 없는 삶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어진 (아이의) 삶, 이것은 간섭과 잔소리가 없어진 행복한 삶이 아니라 ‘양육’ 그 자체가 없어진 절망적 삶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 복된 시대를 맞이함으로써 영원한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묻혀서 싹을 틔우는 것처럼, 또는 해산하는 여인이 출산의 고통을 겪는 것처럼 더 큰 기쁨과 영광을 위한 희생이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일)는 언제나 이렇게 더 나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잡힌 모든 사람은 언제나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으며 썩어질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얻는 인생을 산다. 이것을 아는 사람 곧 상실(喪失)의 슬픔보다 획득(獲得)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를 위하여 늘 몸을 죽음에 내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고후4:10,11)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5:10)
116.하나님의 목적의 성취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을 비사(比辭)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16:23-30)
제자들은 주님께서 비유나 은유로 진리를 말씀하실 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께 많은 의문과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 날은 성령님이 임하시는 날이다. 주의 영을 받은 사람은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님의 일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일을 하게 될 따름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많은 의문과 질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주님과 여러 해 같이 있었지만 아들(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을 들어도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친히 구할 것을 구하지 못하고 오직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대신 알고 대신 구함으로써 모든 것이 공급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상황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자기들과 달랐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 말과 같이 주님은 사람을 알았고 진리를 알았다. 그는 참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주님에게는 의문(질문)이 없었으며 논쟁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다(요17:3). 영생은 곧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미 영생(완전한 삶)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물으며 무엇을 구하겠는가? 그가 구할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 자신’ 뿐이다.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말고 그가 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말고 그가 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을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9-14)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오늘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왜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종이 아니라 (제 것으로) 주인의 일에 참여하는 아들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주님처럼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내 일로 하는 자가 된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는 책망을 받았다.(마22:29)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날마다 읽는 성경에는 부활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도 진리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성경은 알아도 하나님의 능력은 모를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알 수 없고 반드시 체험해 보아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울타리 안에서 제한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은 사람이 성경의 지식을 머리에 새길 뿐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머리가 아니라 생명(체질, 본성)으로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31:33,34) 그 생명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언제나 흑암과 무지 가운데 있었다.
이방의 점술가들인 동방 박사들은 멀리서 주워들은 (메시아에 대한) 작은 정보만 가지고서도 베들레헴까지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갔다. 그러나 바로 곁에 살고 있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어디서 메시아가 태어나느냐’고 물은 동방 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가르쳐 주기까지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기를 찾아가서 경배하지 않았다.
오직 아들(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자)만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아들의 생명을 받았다. 이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속에서부터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명 곧 성령을 굳게 잡아야 한다. 오직 영을 좇아 행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육체대로 해서는 안 된다. 사탄이 오늘날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의 공격의 최종 목적은 우리로 범죄에 빠지게 하며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이지만 일차 목표는 그것이 아니다. 그의 일차 목표는 우리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자연적 생명(육적 생명)으로 살도록 하려는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사탄이 우리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새 언약 이전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채로 종노릇이나 하는 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속일 수는 있다. 우리로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종(구약 백성들)처럼 육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억지로 섬기려 하다가 실패하게 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 필요를 말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필요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기도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아무 기도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신약적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패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힘이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그 생명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성령님은 우리를 그런 수동적인 자리에서 헤매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생명의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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