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과 주님의 큰 기도 (1)
요한복음 17장
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드린 큰 기도를 싣고 있다. 이 기도는 마태복음 6:9-13의 기도(소위 주기도문)와 더불어 기도의 전형(典型)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기도이다. 이 기도는 주님이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어떤 마음과 소원으로 일에 임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택하신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17:1-5)이고 둘째 부분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17:6-19), 그리고 셋째 부분은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장차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17:20-26)이다.
117.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
주님의 첫 번째 간구 내용은 아버지께 아들(그리스도 자신)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주님은 여기서 영광,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얼마나 높고 권세 있는 분인지를 자신(주님)을 통해 드러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드러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아들이 잘 나야 아버지가 멋진 아버지며 아들이 잘 해야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인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형상이요 표현이기 때문에 아들의 모든 것은 곧 아버지의 것이며 또한 아버지의 모든 것 역시 아들의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물론 육신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반드시 하나라고 할 수 없다. 아버지는 영광스럽지만 아들은 영광스럽지 않을 수도 있고 아들은 영광스럽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말하는 것은 생명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마귀와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관계는 모양이 같아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본질이 같기 때문에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본질적인 생명에 비하면 육신의 모양(인물, 능력, 지위, 소유, 업적 등)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인간의 본질은 그 생명 곧 그 인격에 있다.
즉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바로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과 생각으로 그 사람을 알며 그의 생명을 판단한다. 영광스러운(훌륭한) 행동은 영광스러운 마음을 나타내며 영광스러운 마음은 영광스러운 생명을 나타낸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그 생명이 바로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즉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2:29)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7-9)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
주님은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이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주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모습(영광)을 드러내는 그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일)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17:4) 주님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주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도 그러하다.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빛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들로부터 거룩히 여김(찬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첫째 관심사는 언제나 이것이었다. 그는 항상 자기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또한 자신도 사람들로부터 합당한 영광 즉 거룩하고 진실하다는 말을 듣기를 원했다. 그는 사실상 그것(하나님의 영광) 외에는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았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말고 이 진정한 영광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할 것을 항상 강조하셨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1,44)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6)
하나님의 영광은 대단한 것이다. 우리가 사람 중에서도 영광스러운 사람(훌륭한 인격자)을 만나면 그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감동되며 그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은 그의 영광의 광채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타락했을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의 흔적이 있어서 그것(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한다. 그래서 자기는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은 멸시하고 거룩한 사람은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영광은 얼마나 크고 위대하겠는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시104: 1,2)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8:10,11) 심지어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을 한 번 만나고 내려온 모세조차 그 얼굴에 영광의 빛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그를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출34:29-35) 우리는 이 영광을 구해야 한다.
주님이 구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여기서 말하는 때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을 때이다. 주님은 지금 인류의 대속을 위해 죽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한사코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현 시점에서 하나님의 영광(부활 생명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은 영원히 보존될 수 없으며 설사 영원히 보존된다 하더라도 그 삶은 하나님의 아들이 누릴 진정한(영광스러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 사망(십자가에서의 순종, 인류를 위한 대속적 죽음과 부활)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애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열어 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권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죽기를 거부하는 자신의 육신적 욕망과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영의 욕망 사이에서 영이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이처럼 현 시점에 있어서 주님의 영광은 그가 세상의 구원자로 부름 받은 자답게 십자가를 담대히 받아들임으로써 마귀를 멸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잘 하게 되는 것이다.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릴 영광은 결코 육신적으로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참된 영광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주님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의 죽음을 담담히 감당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 설사 그것이 육신의 소욕과 반대되는 괴로운 일일지라도 담담히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것이 우리의 참 영광이고 권세이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육신적 삶)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히2:15)이 바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인생 곧 하나님 아들의 영광과 권세를 잃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애셨다.(히2:1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 속에 영생(하나님의 생명, 부활 생명)을 지닌 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권세이고 영광이다.
남의 돈을 긁어모으는 기술이 탁월해서 호사스럽고 부유한 생활을 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기술과 지위를 확보하여 자기 뜻대로 부릴 줄 아는 것이 능력과 권세가 아니고 (미약한 육신의 능력을 가지고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들의 인생을 부유하게 만들어줄 줄 아는 것이 능력과 권세이다. 옆의 사람은 굶고 있는데 나는 호의호식하는 것이 영광이 아니며 옆의 사람은 엎드려 있고 나는 그를 밟고 있는 것이 영광이 아니다. 진정한 영광은 사랑을 주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진정한 삶-사랑 안에서의 연합-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영광스럽지 않은 것이다. 미움과 다툼, 거짓과 살인으로 얻을 수 있는 영광은 없다. 마귀에게 속아온 인류의 머리 속에 있는 영광의 기본 개념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남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소유를 가지는 것,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육체의 능력(지혜, 지식, 건강, 외모)을 가지는 것, 다른 사람들의 지배를 받지 않고 부리는 것,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화(榮華)이다. 그러나 남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규정하신) 영광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신을 회복한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다.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은 육신의 영광이 아니라 도리어 육신의 영광을 희생하면서 이루는 거룩한 삶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몸을 입게 될 때 상황은 달라진다. 마귀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시작될 때 우리는 영광을 더 이상 영의 영광과 육신의 영광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도 영광스럽게 되어 하나님이 누리게 하신 모든 복을 제한 없이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은 죽음 후 부활하고 승천하여 만물의 주가 되셨다. 그는 더 이상 죄와 고통과 사망의 저주에 매여있지 않아도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남은 길이다. 죽음은 결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생(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데서 진가(眞價)를 나타낸다. 십자가에서의 승리는 곧 하늘에서의 영원한 영광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순종하는 아들의 삶’을 놓쳐서는 안 된다.
땅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하늘에서의 영원한 삶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은 육신의 고통과 희생을 손실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는 사람은 순종의 삶이야말로 최고의 영광인 것을 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5 | 제65과 주님의 큰 기도 (2) | 이상봉 | 2010.05.05 | 2743 |
» | 제64과 주님의 큰 기도 (1) | 이상봉 | 2010.05.05 | 2731 |
63 | 제63과 진리의 성령 | 이상봉 | 2010.05.05 | 2789 |
62 | 제62과 세상을 책망함 | 이상봉 | 2010.05.05 | 2762 |
61 | 제61과 우리의 길 | 이상봉 | 2010.05.05 | 2612 |
60 | 제60과 열매맺는 삶 | 이상봉 | 2010.05.05 | 2806 |
59 | 제59과 산 자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 이상봉 | 2010.05.05 | 2807 |
58 | 제58과 그리스도 안에 | 이상봉 | 2010.05.05 | 2729 |
57 | 제57과 처소와 길 | 이상봉 | 2010.05.05 | 2799 |
56 | 제56과 새 계명 | 이상봉 | 2010.05.05 | 2711 |
55 | 제55과 유다를 향한 권면 | 이상봉 | 2010.05.05 | 2776 |
54 | 제54과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그리스도 | 이상봉 | 2010.05.05 | 2794 |
53 | 제53과 하늘에서 난 소리 | 이상봉 | 2010.05.05 | 2807 |
52 | 제52과 자기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는 길 | 이상봉 | 2010.05.05 | 2835 |
51 | 제51과 기록된 대로 사는 삶 | 이상봉 | 2010.05.05 | 2778 |
50 | 제50과 복음은 가난한 자의 것 | 이상봉 | 2010.05.05 | 2806 |
49 | 제49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 | 이상봉 | 2010.05.05 | 2961 |
48 | 제48과 눈물을 흘리신 주님 | 이상봉 | 2010.05.05 | 2794 |
47 | 제47과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 이상봉 | 2010.05.05 | 2798 |
46 | 제46과 나사로를 살리심 | 이상봉 | 2010.05.05 | 2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