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과 주님의 큰 기도 (4)
요한복음 17장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7:6-9)
요한복음 17:6 이후의 내용은 주님이 그의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이다. 17:20-26은 제자들로 인해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인데 그들 역시 결국 제자에 속하게 되는 것이므로 1-5절(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을 제외한 17장의 나머지 부분은 다 제자들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참 자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셨다. 주님은 무엇으로 그것을 확인하셨는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들려주고 반응을 보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는가?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이것으로 주님은 그들이 ‘아버지의 것’ 곧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님은 이제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신다.
121.제자들을 위한 기도 1. 교회가 사랑(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20-23)
주님이 가장 먼저 아버지께 부탁하신 것은 제자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나됨)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랑 안에서 일체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연합(삼위일체)이 제자들 안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비한 연합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이 기도야말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 뜻은, 아들(그리스도)이 아버지(하나님) 안에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는 것같이 우리도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생명의 교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이것을 구하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우리의 연합이 예수의 그리스도(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세상으로 하여금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생명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한 몸(사랑의 공동체)으로 드러나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 독생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우리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것을 세상에 나타내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으로 하여금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0,21)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질이 그들의 삶에 반영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고 연합이다.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신비하고도 완전한 연합이 그를 믿는 자들 안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오직 분열과 다툼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이 거짓말과 살인으로 사람들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다툼과 시기 질투 반목 불화 분열, 고통과 파멸의 근원이다. 마귀는 모든 것을 갈라놓는 자지 붙이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연합을 알지 못한다. 물론 세상은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결코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서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랑과 연합의 생명을 받음으로 형제의 연합을 이룰 때 그것은 곧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신 분, 곧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서 이 놀라운 연합을 이루어내신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 결국 우리의 하나 됨은 단지 우리에게 좋은 일일 뿐 아니라 세상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은 지금 그들 안에 계시면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신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과도 연합을 이루고 또한 형제들과도 연합을 이루면 사탄과 세상은 ‘사람은 더럽고 못났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고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처럼 거룩할 수 없고 죄나 지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의 거짓말을 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든지 고작 휴머니즘 같은 거나 추구해야지 하나님을 나타내며 살 수는 없다’는 거짓말 또는 ‘사람은 목적이 같거나 이익이 일치하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나 연합할 수 있지 무조건인 생명의 연합이란 불가능하다’는 거짓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은 주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외모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계가 실제로 사람의 세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오셨고 그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임마누엘)을 입증하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또한 당신 자신 안에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을 이루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후 그들과 연합을 이루셔서 영원히 같이 계시면서 그들로 온전한 하나(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하나)를 이루도록 역사하셨음도 믿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은 사두개인들처럼, 생명 안에서의 연합을 믿지 않은 유대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은 것이다.
주님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일 수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으로 가장 확실하게 반박될 수 있는가? 오늘날 주님과 같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주님의 제자 우리가 서로의 개성과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를 이룰 때 반박될 수 있다. 완전한 연합(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은 완전한 증거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아들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아들로 삼으시고 그 안에서 사신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이로써 세상은 결국 나사렛 청년 예수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주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세상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어떤 사람 안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 사람 안에 사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 안에 살고 계신다는 실제를 세상에 대해 계속 보여준다면 세상은 마침내 주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고 또한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그 속에 생명으로 거하시면서 사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형제들 안에서의 하나 됨을 통해 세상에 대해 주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할 자이며 아울러 모든 인간 역시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았음을 증거할 자가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룰 때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사람으로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17:23)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본래는 하나님을 나타내며 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그 어떤 인간에게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만 있는 여러 성품들(그 대표적 성품이 ‘연합’이고 ‘무조건적 사랑’ 같은 것이다)을 우리 안에서 나타낸다면 세상은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122.제자들을 위한 기도 2. 교회가 주님의(하늘의) 기쁨과 평안을 유지하도록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7:12,13)
주님은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제자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구하셨다. 빌립보서 4:4-7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여유)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떤 방법으로 분명하게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역사하시는 새 생명을 내보임으로써 가능하다. 이 새 생명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착하고 거룩한 삶을 통해서,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통해서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특권 중 하나는 바깥 환경에 의해 요동되지 않는 평안과 기쁨이다. 그것은 매우 견고한 것이어서 세상에서 만나는 어떤 어려운 일로도 흔들리지 않으며 범사에 우리로 여유를 가지게 해 준다. 그것은 세상에서 배운 것이나 익힌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온 것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넉넉히 세상과 거기에 속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주님은 아직 당신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이 사람이신 주님 안에 있는 기쁨과 평안을 충만히 이어 받게 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천국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다.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아갈 수도 없는 평안을 주셨다. 그리고 기쁨을 주셨다. 이것은 정말로 세상에는 없는 것이며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것으로서 하늘에 속한 것이다. 환경을 초월한 평안과 여유,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원천적 기쁨, 이것이 천국 시민의 특권이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여유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육신의 감각대로 행하는 것은 땅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나 천국 백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좌우되며,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영의 인도를 받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웃을 때 웃고 울 때 울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웃을 때 웃지 않고 울 때 울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땅의 시각으로만 보지 않고 천국적인 시각으로도 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 참고 불안해 할 상황에서 평안을 유지하는 여유는 천국 백성의 특권이요 표징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슬퍼할 줄 안다. 그것도 역시 여유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려면 자기의 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주님으로 인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우리의 근원적 기쁨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은 전적으로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깝다는 말은 ‘주님이 우리 곁에 혹은 우리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 혹은 주님을 모신 사람이 홀로 있는 고아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부자가 궁색한 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고후 4:8-10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 어떻게 자기 몸에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는 주님의 생명이 그 자신과 일행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입증했는가? 바로 예수 죽인 것 즉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받을 때 그것으로 좌절되지 않고 기뻐하며 달게 받는 그것으로 입증했다. 이어서 그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말했다.(고후6:9,10) 이것은 다 그들 속에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가 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들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범사에 상황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환경과 여건은 다 변동할 수 있지만 주님만은 변치 않으시며 영원히 살아 계시며 우리 생명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바울처럼 살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여기서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를 바라보는 사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다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은 결코 이 변동치 않는 견고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0-22)
우리의 기쁨의 근거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주님이 부활하실 것임
2.그 주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심
3.그 주님께서 우리로 시험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도록 도우심
4.그 주님께서 우리로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에 속한 영광을 누리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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