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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과 주님의 큰 기도 (5)

이상봉 2010.05.05 14:25 조회 수 : 4240

제68과 주님의 큰 기도 (5) 

 

요한복음 17장
 

123.제자들을 위한 기도 3. 교회가 세상에서 승리하며 진리로 거룩케 되도록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4-19)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은 이제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말씀)을 가짐으로 인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하나님)에 속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은 세상에서 이방인과 나그네의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세상으로부터 배척과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주님은 아버지께 또 한 가지를 구한다.

 

주님이 구한 것은 제자들이 끝까지 세상에 빠지지(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람으로 남도록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님이 기도로 부탁하신 것은 (첫째) 제자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되며 그것(사랑 안에서의 연합)을 항상 유지하게 해 달라는 것과 (둘째) 그들이 범사에 하늘에 속한 기쁨과 평안을 나타내며 그것을 항상 유지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셋째) 주님은 제자들이 모든 삶에서 거룩함을 항상 나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다.  


교회(그리스도인)의 큰 특징은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성도(聖徒, 거룩한 사람, 거룩케 된 사람)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교회가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그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동을 하든 안 하든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그런데도 역사적으로 교회가 항상 실제로 거룩했던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교회가 종종 사탄에게 속아 자기의 속성과 신분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이 항상 진리로 그 마음과 생각이 깨어 있도록 간구하신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거룩을 유지하려면 주님(하나님)의 말씀 안에 견고히 붙어 있어야 한다. 말씀을 굳게 잡고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속지만 않으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문제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 속에 거룩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거룩한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들의 영광(거룩)과 승리를 위해 힘을 들여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제자들이 영광스럽게 되지 못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의 영광과 거룩이 세상 곧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온 우주 가운데서 항상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오직 그의 자녀들이 거룩한 자로 세상에 드러날 때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는 사람은 그가 어떤 이름표를 붙이고 있을지라도 마지막에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주님의 영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 말은 곧 거룩하지 못한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참 성도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거룩이 무엇인가?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일컫는 말이다. 거룩과 관련하여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거룩은 세상에 속한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5,16) 여기서 거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므로 우리도 그러해야 되는’ 무엇이다. 거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곧 거룩이고 하나님의 생명, 성령의 인도 그 자체가 곧 거룩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거룩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노력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된다는 것이다. 즉 거룩은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생명이 먼저고 말씀이 먼저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말씀)이지 사람의 결심과 의지가 아니다.  


흔히들 거룩은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술을 마시거나 저급한 춤을 추지 않고 여자나 도박을 가까이 하지 않고 말과 행동을 고상하게 하며, 선하고 의로운 일에 힘쓰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이 전적으로 그런 것이라면 거룩해지는데 꼭 그리스도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애를 쓰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거룩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윤리적인 삶일 뿐이다. 


물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이 별로 거룩하지 않다고 말한다.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속으로 다 자기에게 거룩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는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또 현재는 아니지만 노력하면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대로 삶에 점수를 매긴다. 도둑이나 강도는 거의 전혀 거룩하지 않고 정치가나 사업가는 아주 조금 거룩하고 교사나 판사는 그보다 좀 더 거룩하고 자선사업가나 수도자(修道者)들은 상당히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자선사업가나 수도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해서 나쁜 행동을 버리고 잘 하기만 하면 거룩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항상 ‘내가 현재는 부족하지만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노력이라는 것은 제사를 좀 더 자주 드리고 헌금을 더 열심히 내고 안식일을 좀 더 잘 지키며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하면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결과는 사람들이 다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고 단지 율법주의와 외식에 빠지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생명은 안 바꾸고 행위만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명이란 삶의 근본 자리 즉 삶의 근본 목적과 목표를 말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바꾼다는 말은 삶의 근본 목적을 바꾼다는 것이다. 거룩의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어 바쳐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려질 때 그것은 거룩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나 물체 자체가 어떻게 성질이 바뀌느냐 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출13:2)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 자체가 거룩해진 것이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16:23) 날은 다 똑 같은 날이지만 안식일이 거룩하다는 것은 그 날을 하나님께서 자기 목적을 위해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칠 일 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단이 되리니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출29:37)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로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민16:38)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왕상9: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눅2:23)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23:17,19)  

 

이 말씀들은 다 거룩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하게 되면 그것이 곧 거룩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실패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들은 행동과 일은 구별했지만 자신은 구별하지 않았다. 즉 일정한 시간과 돈, 장소, 행위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했지만 자신의 마음과 야망, 계획, 인생 자체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하지(바치지) 않은 것이다. 그들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은 이상 그들의 행위는 다 무의미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탐욕과 정욕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의 모든 행위는 다 거룩하지 않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11-17)


오늘날 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열심을 내고 무언가를 하는 것을 거룩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이 아니다. 거룩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거룩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거룩만 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거룩한) 생명뿐이다. 이 생명이 없으면 거룩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모르고 스스로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죄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실패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해설했다.(롬10: 3)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10:36)   

 

눈을 가리고 억지로 주님을 부정하려고 한 무리를 제외하고는 다 주님을 거룩하다고 인정했다. 심지어 마귀마저 주님을 거룩한 분이라고 말했다. 주님은 어째서 이렇게 거룩한 자로 인정되었는가? 그의 인생 자체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되고 바쳐졌기 때문이다. 마귀는 자기 義(잘난 것)를 나타내려는 자, 고상한 척하고 도덕적인 척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인생의 자리 자체를 하늘에 계신 분에게 두고 있는 사람만 두려워한다. 


거룩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8,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고전7:34) ‘시집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주님께 몸과 마음을 바치느냐 아니냐 이것이 바로 거룩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이 모든 말씀들은 우리가 자신을 주님의 목적을 위해 바칠 때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거룩한 삶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거룩의 내용은 무엇인가? 거룩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4:3,4,7)

 

소극적인 측면에서 거룩은 세상 즉 세상 정신과 풍습을 좇지 않는 것이다. 세상 정신과 풍습이란 결국 마귀의 정신과 습성을 말한다. 이것들이 다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거룩이란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정신과 습성을 본 받는 것이고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마귀의 정신과 습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란과 쾌락, 방탕과 육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이 거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거룩은 이웃 이방 나라들의 악한 풍습을 본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3:12)

 

적극적인 측면에서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고 그 생명의 성질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빠지지 않고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5)  

 

거룩하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거짓과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유지하려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 매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1-5) 

 

세상에 살면서 즉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자녀들을 키우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예 그런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다. 거룩은 세상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루어지며 사람의 상황이 좋으면 이루어지고 좋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사람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룩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라. 조용한 절에서 세상 염려들 하지 않고 수도만 하고 있으면 거룩이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이 있으면 승리한다. 그러나 말씀이 약화되면 모든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 모든 여건을 다 좋게 보며 시련은 도리어 승리의 기회,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로 볼 수 있는 눈은 말씀에서 나온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역사적으로 교회에는 바울이 여기서 경고한 말세적 현상이 항상 나타났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가치, 세상 지혜, 세상 상식, 세상의 관심사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진리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되고 성령의 지배가 아닌 사람의 지배를 받은 자리로 떨어지고 만다.  


소극적인 면에서 거룩을 말하라고 하면 한 마디로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육신대로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설 수 없다. 마귀의 의도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오직 육신의 안락과 향락에 부합되는 것만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마귀는 교회를 거룩하지 않은 곳으로 만듦으로써 교회를 유명무실한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교회가 아무리 완벽한 교리와 조직과 사업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거룩(하나님의 생명과 인격)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님을 마귀는 잘 알고 있다.  

 

좋은 외형은 좋은 생명에서 나와야 한다. 바른 교리도 중요하고 선한 사업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이기적이거나 육신적이서는 안 된다. 크든 작든 화려하든 초라하든 강하든 약하든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따라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차라리 건강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지 병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그 질(質)로 싸운다. 교회는 힘으로 승부를 거는 곳이 아니고 거룩으로 승부를 거는 곳이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 육신적 복을 받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치중하거나 죽어서 천당 갈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어떤 교회들은 천국은 포기하고 여기서 잘 살기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들 즉 정치적이고 세상적인 일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복 받는 비결을 익혀 육신의 개인적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상을 변화시켜 육신의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는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거룩(인격)을 나타내고 증거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는 무관한 일이다. 다 육신을 위한 일이요 땅에 속한 일들이다. 교회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며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땅에 있지만 하늘나라이다. 땅에서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유일한 곳이 교회이다. 땅에서 사람(의 생각)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유일한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것이 교회의 진정한 사업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거룩하지 못한 채로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사탄에게는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하며 세상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한다. 교회가 아무리 치밀한 교리와 조직과 힘이 있어도 십자가로 행하며 성령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영광과 능력은 분명하게 나타날 수 없다. 거룩이 빠진 교회는 아무 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것이며 ‘악에 빠진 것’이다. 교회가 생명(말씀)을 잃으면 거룩을 잃게 되고 거룩을 잃으면 교회는 맛 잃은 소금처럼 아무 쓸데 없어 버리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싸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함으로써 거룩한 인격을 세상에 선포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싸움이었다. 이것이 또한 교회와 바벨론(세상)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주님은 승리하셨다. 교회의 거룩은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 확보되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8,1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승리를 바탕으로 계속 거룩을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거룩은 의식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거룩은 오직 사람이며 인격이다. 사람과 인격은 말씀에서 나오며 생명에서 나온다. 어떤 생명인가에서 어떤 인격이 결정되며 어떤 교회와 사업과 외형이 결정된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학2:12-14)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거룩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거룩한 것이 될 수 있고 처음에 거룩한 것들이 나중에는 거룩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려졌기(부름 받았기) 때문에 분명히 거룩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고 사모했기 때문에 결국은 거룩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보다 주위 나라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이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삶보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편하게 사는 이웃 나라들의 타락한 세상 삶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은 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접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거룩한 백성으로 일컬어졌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영구히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계속 거룩한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쓰여지지 못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버려졌다. 하나님을 위해 쓰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 세상의 짝하여 세상을 따라가며 세상의 분깃을 나누는 사람,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대변자는 더 이상 거룩한 사람이 아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거룩은 사람과 관련된 것이며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다. 거룩이 무너지는 순서는 먼저 거룩했던 사람이 부정한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그것과 접하게 됨으로써 그 사람 자신이 부정해지고 다음으로 그렇게 부정하게 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부정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어떠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일들도 다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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