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과 보지 않고 믿는 믿음
요한복음 20장
146.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복된 마음을 소망함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4-29)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다른 형제들의 말을 듣고도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사실은 도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제자들의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아래 말씀들은 제자들의 불신앙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9-11)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2-14)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13-35)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24:36-43)
나면서부터 배워 익숙해진 것과 반대되는 사실을 접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란 본래 어려운 것이며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3:2)
물론 주님과 여러 날 함께 있으며 많은 ‘믿기 어려운 일(이적)들’을 목격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을 악하다거나 나쁘다고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것은 (죄로 인해 죽고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은 물론이고 증거를 보고 믿는 것도 타락하여 지각이 둔해진 인간으로서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가와 상관없이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주님도 도마의 불신앙에 대해 ‘잘, 잘못’을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으로 주님은 제자들의 불신앙에 대해 꾸짖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꾸짖음은 아니다. 최종적인 꾸짖음이라야 진짜 꾸짖음이다. 정말 무서운 책망은 마지막 심판 자리에서 듣는 책망이다. 그것은 그가 은혜 밖의 사람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들은 책망은 다만 믿음을 일깨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따름이다. 신자(信者)는 기본적으로 ‘믿는’ 자이다.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신자라도 마귀로 인해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거나 안일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마음이 둔해지고 믿음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결국 제자들의 불신앙은 근본적인 불신앙은 아니며 단지 마음이 해이해져 있었던 것뿐이다. 만일 제자들의 마음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주님을 믿는 ‘좋은’(부드러운, 열린) 마음이 없었다면 주님은 그들을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 앞에 부활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것은 그들이 (부활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믿는 자는 ‘복’되다. 그리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 복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택하시고 그 사람의 마음에 복된 마음, 좋은 마음 곧 믿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말이 ‘알지 못한 채로 무조건(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은 보고 체험하여 그것(어떤 영적 사실)의 실체를 확실하게 안 후 믿는 것이다.(요일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도마에게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 것은 도마가 예수의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데 있어서 ‘육신의 감각에 와 닿는 증거’ 즉 표적과 기사(奇事)만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부활을 비롯한 모든 ‘하늘에 속한 사실(영적 사실)들’은 육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으로 영적 사실을 감지하려는 것은 마치 눈으로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은 오직 영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고전2:9-12) 주님이 원한 것은 도마가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 다만 형제들의 증거만 듣고서도 진리(여기서는 주님의 부활)를 감지하는 것이었다.
성령님은 오늘도 살아서 우리 안에서 늘 말씀하시며 증거하시며 인도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바깥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속삭이며 우리를 이끄는 것과 달리 눈에 보이지 (육신의 감각으로 감지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이 살아서) 이것을 느끼며 거기에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보고도 믿지 않는 세대 가운데서 보고서라도 믿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런데 그 본다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본다는 것이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내기 원하시는 모든 일(하나님의 구원, 회복, 치료, 새 창조의 역사)들을 기적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먼저 체험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그것들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을 만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며 그 (삶과 간증) 속에서 믿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보고 믿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냥 보는 것이다. 믿음이란 말 자체가 아직 보지(겪지) 못한 일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러나 (도마가) 보고 믿은 것을 가지고도 믿음이라고 한 것은 그가 본 것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육체로 다시 나타남)임에 비해 그가 믿은 것은 그 주님이 자기의 생명의 주며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믿은 것이 본 것보다는 더 크고 나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최소한 ‘본 것보다는 더 많아야(더 큰 것이어야)’ 한다.
주님이 도마에 대해 아쉬워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표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 인격을 접한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꼭 부활의 증거를 보고서야 부활을 믿으며 그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하느냐 하는 것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항상 약속을 잘 지켰다면 그 사람의 남은 약속 즉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은 (아직 겪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의 인격을 믿고 그가 이미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약속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보고 믿는 것보다 복되다는 것은 주님을 적게 경험하고서도 그 경험이 확실해서 주님을 크게 믿을 수 있으면 복되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님을 많이 경험했으면서도 그 경험이 불확실해서 주님을 제대로 알지(믿지) 못하는 것은 복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주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에 대해, 주님의 인격에 대해 신뢰하는 상태가 아니면서 덮어놓고 믿는다면 그것은 좋은 믿음이 아니며 참된 믿음이 아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아무 근거도 없는 가운데서 자신의 신념에만 근거하여 믿는 미신적 맹신적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분명한 근거 위에서 믿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계시를 통해서 볼 것을 보고 알 것을 알고 경험하고 그런 후에 (믿을 만 해서) 믿는 것이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1-3)
믿음이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주님의 인격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자신 뿐 아니라 주님께 속한 영적 사실들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천국을 믿고 심판을 믿고 또 그와 같은 수많은 사실들을 담고 있는 그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그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의 약속을 믿어야 하며 그가 이루신 일들과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믿어야 할 이 모든 영적 사실은 우리가 그것들을 먼저 다 경험해 보고 나서야 믿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라 다만 경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들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여 믿는 것이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주님의 인격이 신실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충분한 유일한 경험은 이러한 주님을 확실히 경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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