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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그리스도인의 자유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내게 가(可)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같은 말을 고린도전서 10:23,24에서도 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 말씀은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세가 얼마나 굉장하고 광대한 것인지 말해 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자유 이면에 있는 매임(속박)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바울이 향유하고 있는 자유에 대해 살펴보자.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인가?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에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적어도 그가 의도하는 것, 마음먹는 것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그 마음의 원대로 다 하실 수 있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아들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우리에게는 첫째,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마음]이 있고, 둘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4:12-14)

그래서 모든 것이 가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다. 그러면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을 무제한으로 다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 왔는가? 그리스도인의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어떠했으며 바울은 어떠했는가? 사실은 주님과 바울은 모든 일을 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한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그들의 모든 행동은 그들 안에 있는 어떤 원리에 의해 매우 엄격하게 속박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행동도 실제로는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유인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로워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매여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매이기 때문이다. 신체에는 사람이 의도해야만 움직이는 부분이 있고 사람이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저절로 움직이는 부분이 있다. 손과 발을 사용하여 일을 하거나 입을 사용하는 음식을 먹는 것 등은 사람이 의도해야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저절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먼지가 날아들어오거나 눈동자가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 눈이 깜박여진다든지,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위와 창자가 움직인다든지, 폐가 움직여 호흡을 한다든지, 심장이 움직여 피가 돈다든지 하는 것은 다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기관들은 사람에게 묻지 않으며 알아서 돌아간다.

그리스도인의 행동도 이와 같이 많은 부분이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그 생명의 특성을 따라서 자동적으로 어느 한 쪽으로만 이루어진다. 이것은 분명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부분에 있어서 자유로우며 어느 부분에 있어서 매여 있는가? 죄에 대해 자유로우며 의에 대해 매여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거부하는 한 얼마든지 죄를 안 지을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더러 범죄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생각하고 죄를 당당하게 거부하는데도 능력이 없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닌 것이다. 죄를 거부하는 데도 육신이 약해서 죄를 억지로 짓게 되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잘못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즉 죄 지을 생각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어떤 합당치 않은 행동(죄)을 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이 범죄하는 것은 먼저 시험에 들고 미혹에 빠진 후 자기 것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시험에 든다는 말은 적어도 범죄가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거나 타의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의식(意識)하고 있고 동의(同意)하는 가운데서 자기 행위로서 죄를 짓는다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사탄의 시험을 거부하고 죄를 안 짓겠다고 마음 먹는데도 능력이 없어서 억지로 범죄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자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롬6:14)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자기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명하는 것이지 할 수도 없는데 이상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너희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고 말했다. 이것은 죄가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물 건너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해 자유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죄는 자기가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억지로 짓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되는 부분은 시험과 미혹의 부분이지 능력 부분이 아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마귀로부터 어떤 작용이 일어나서 죄를 거부하지 않고 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죄 지을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죄가 오면 억지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죄의 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신 그리스도인은 의에 대해서는 철저히 매여 있는 종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진리에 대한 자유나 하나님에 대한 자유가 아니다. 이는 마치 사람에게 신체를 머리의 생각대로 움직일 자유가 있지만 그것은 생명의 보존과 유익을 위한 쪽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제한과 속박을 받는 가운데서의 자유에 불과하며 그나마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자율 신경, 심장이나 폐 등과 같은 자율적 운동 기관이 아예 생각과 의지의 지배를 받지 않고 저절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성질 안에서, 하나님의 자유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도 제재를 받는다. 그는 자기 생명, 자기 인격, 자기 성질의 제재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고 악을 행하실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아무 일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일만 할 수 있고 진실한 행동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도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속박과 구속을 받고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기독교인이나 신학자들은 상황 윤리라는 개념 혹은 기타의 사상을 도입하여 그리스도인도 필요하면 이혼도 하고 사랑만 있다면 부인을 놔두고 다른 여자와 사귀어도 되고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기타 세상의 허무한 일들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꼭 무엇만 하고 다른 무엇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자유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생각을 잘못하였다. 의에 자유한다는 것은 곧 죄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것임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다. 의와 죄에 다 같이 자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둠이면 어둠, 빛이면 빛이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롬6:20) 인간의 실상은 무엇인가? 바로 의로부터는 자유인이고 죄에 대해서는 종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타락한 이후 인류는 근본적으로 자유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종의 생활을 해 왔다.

첫째는 저주받은 땅 즉 열악한 생활 환경이다. 타락 후 땅(생활 환경)은 에덴 동산과 같지 않고 매우 황폐하게 되었다. 기후와 농작물, 신체 조건 등이 다 죄로 인해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았다. 땅에는 질병이 창궐하고 기근과 홍수가 자주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류는 생(生)에 매여 종노릇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죄로 인해 왜곡된 인간 자체도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부리며 종으로 묶어 놓는 역할을 해 왔다.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괴롭게 하는 환경으로 역사해 온 것이다. 힘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약한 자를 종으로 부리며 속박하기 때문에 인류는 환경뿐 아니라 사람의 종 노릇도 해야만 했다.

둘째는 죄의 종 노릇을 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사탄으로부터 오는 거짓되고 악한 생각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왔다는 것이다. 타락 후 인류는 단단히 죄의 종이 되어 왔다.

사람은 어디에 종노릇하고 있는가? 사람을 종으로 묶는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해 보자. 사람이 하나님과 그 진리에 매여 있지 않고 다른 데 매여 있으면 그것이 바로 종이다.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주님에게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1-34)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를 종으로 묶어 놓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써 거기서 벗어나 자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죄 (육체의 정욕) - 쾌락을 추구함 : 음행, 놀이와 오락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벧전2:11,16)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벧후2:18,19) -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로부터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종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기들은 부패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5:13)

2.세상 - 세상 가치, 세상 영광(물질, 권력, 세상 명예...)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것들을 추구함

3.율법 - 반쾌락주의자 또는 의지가 강하고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매이는 올무

율법에 매여 있다는 것은 인간 자아 곧 자존심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참 실제를 무시하고 터무니없이 높여놓은 거짓된 명예와 허구의 능력을 붙잡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타락한 후 사람은 율법을 통하여 자기의 죄를 깨달을 뿐 그것을 결코 지켜낼 수 없는 무능하고 악한 죄인이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통하여 자기 의와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 바로 율법의 종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3:14-17)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2:4)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5:1-6)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자유한다. 그것은 첫째,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도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기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외부적 환경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기를 압박하는 물질적 세상적 환경과 자기를 지배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4:4,5)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6-8)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7:22)

그리고 물론 죄의 권능으로부터도 자유하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내게 가(可)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한편으로 자유인이고 한편으로는 종인데 이 위치는 세상과는 정반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의 진리에는 매여있고 죄에 대해서는 자유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해 매여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고 그리스도인의 생명 안에 진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육체의 정욕과 죄에 매여 있는 것은 그들의 생명 안에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성질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진리만 추구하는 것은 우리 생명 안에 그것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점의 주인과 종업원 두 사람을 비교함으로써 자유자가 어떻게 종인가를 알 수 있다. 상점의 주인은 그 집 종업원과 비교할 때 분명히 자유인이다. 그는 출퇴근 시간을 지킬 필요도 없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의무도 없고 그 집 물건을 조심해서 다루거나 아껴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을 보아도 자기가 보는 것이고 손해를 보아도 자기가 보는 것이기 때문에 꼭 이래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은 없다. 그러므로 분명히 주인은 종업원에 비해 자유인이다.
그러나 주인은 사실 자기 가게에 철저하게 매인 사람이다. 그는 그 집 일과 시간 사용과 그 집 물건을 관리하는 일에 철저하게 매여 있는 사람이다. 대개의 주인들은 종업원보다 먼저 일어나서 일찍 일을 시작하고 모든 일을 확인하고 정비한다. 그는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일을 죽도록 열심히 하고 찾아서 하며 자기가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노는 사람을 보면 일하라고 닦달하며 독려한다. 그는 가게의 종이 한 장, 볼펜 한 자루도 아낀다. 영업을 하러 나가거나 출장을 갈 때도 종업원 같으면 이미 나온 출장비를 다 쓰려고 하지만 주인은 차비도 아끼고 식사비도 아끼려고 간단한 것으로 때운다. 그러므로 그는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자유인이지만 실제로는 가게의 종인 것이다. 그는 그 일에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매인 사람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바로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 세상과 율법에 대해 자유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더 이상 매이지 않고 자유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못 짓는 것이 아니라 죄가 싫고 죄가 필요 없고 죄가 우리 생명에 맞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안 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와 진리에 대해 매여 있고 오직 그 일만 하는 것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 것으로 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 것이 아니고 진리는 우리 것이다. 죄는 꿈에도 보기 싫고 진리는 자다가도 좋아서 입이 벌어지는 바로 우리 생명의 기쁨과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2:14,15)

본래 진리를 이렇게 사모하고 제 것으로 챙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류는 타락한 이후 다 죄인의 길에 서 있으며 죄를 제 것으로 챙기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아닌 세상 헛된 것들에 매여 종노릇 하지 않고 죄와 허무한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인이 되게 하고 오직 하나님과 그 진리에만 매여 있는 참 자유인이 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4:18)

그는 참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그리고 참으로 매일 것에 매인 자가 되게 하셨다. 이러한 자유는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이 다 갈구하는 것이다. 그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바로 사람의 구원이요 사람이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1) 이것을 시작으로 그리고 이 자유케 된 사람을 도구로 하여 하나님은 세계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전개해 가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 생명 안에서의 매임, 즉 진리 안으로의 구속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본문의 "모든 것이 내게 가(可)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나 고전10:23,24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 그리고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는 말씀이나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29)는 말씀 등이 다 그런 말씀이다.  

아들의 생명 안에 매여 있는 우리는 몸을 그 생명을 따라 써야 한다. 미혹을 받지 말라. 몸을 다른 데 쓸 수 있는 것처럼 사탄이 여러분을 속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일분 일초도 진리 아닌 다른 일을 위해 쓸 수 없다. 몸은 주님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결코 몸(육신) 자체를 위한 것일 수 없고, 또한 정함 없고 실체도 없는 소위 '세상'(민족, 인류, 국가, 그리고 거기에 속한 여러 가치들)을 위한 것일 수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가 가신 길로 걸어가며 그리스도가 바친 것을 위해 바칠 수 있을 뿐이다. 형제를 사랑하고 의를 행하며 아버지께 순종하는 이것을 위해 몸을 써야 한다. 이것이 참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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