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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몸과 그리스도

우리는 지난 주에 몸은 주님을 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주님이 우리의 몸을 위하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주는 몸을 위한다"는 말은 다음 몇 가지 뜻을 지닌다.

⑴ 주님께서 우리를 육신의 죄에서 해방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의 죄]란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는 여러 가지 잘못되고 지나친 행동들을 가리킨다. 몸이 편치 않은 사람은 쉽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 쉽다. 사람은 몸이 약하여 밖으로부터 오는 여러 정신적 육체적 짐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지게 되면 신경 작용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육신은 영혼(정신)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정상적이라면 사람은 영으로 육신을 완전히 제어해야 하지만 타락한 이후 사람은 역으로 정신이 육신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의 상관 관계를 일찍이 깨달아왔다. 그래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타락시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로 인해 몸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약화된 몸이 사람을 다시 죄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타락은 사람에게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등 육체를 전반적으로 약화시켰지만 그 약화된 모양은 각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죄는 육신의 특정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더 약화시켜서 'A는 B에 비해 특별히 어느 부분이 더 약하다'는 식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은 그만큼 사탄의 시험에 더 노출되어 있는 것이며 범죄하기 쉽다.  

성적 욕구가 특별히 강한 사람들도 이런 육신의 결함(연약함)으로 말미암아 범죄하기 쉽다.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남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 별 일 아닌데 과도히 화를 내거나 남과 잘 싸우려고 하는 것 등 세상의 많은 육신적 죄들이 알고 보면 이같은 육신의 생리적 결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는 몸을 위한다'는 말씀은 이런 육체적 결점들이 있는 사람에게 주님이 역사하셔서 그들을 그러한 육신적 죄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고 결함있는 몸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고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주님께 순종할 때, 그리고 '주는 몸을 위한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연약한 몸을 이끌고 기꺼이 주님을 섬겨 나갈 때, 그 사람은 그의 여러 육신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을 수 있는) 육신의 죄들을 딛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⑵ 주님께서 우리 육신의 질병을 고쳐 주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육신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육신의 질병에서도 해방시킬 수 있다. "주는 몸을 위한다"는 말씀은 곧 "주님은 질병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질병이란 결국 육신 속에 역사하는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에서 우리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질병에서도 보호하신다. 중풍병자를 고치셨을 때 주님은 먼저 그의 병 치료를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죄가 사함 받았음을 선언하셨다. 그것은 질병과 죄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질병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상고하게 될 것이다.

⑶ 주님께서 우리 육신에 부활 생명을 공급하셔서 활력 있고 풍성한 몸의 건강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날마다 그의 몸에서 역사하는 주님의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아 왕성하고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신체 건강을 의미한다. 단지 질병에 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왕성한 건강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주님은 종종 우리의 영혼을 온전케 하기 위해 우리 신체를 일시적으로 약한 가운데서 고통 받도록 내버려두시기도 하신다. 때로는 긴 세월 동안 병이나 장애 가운데서 지내도록 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람이 비록 땅 위에서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을 누리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육신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영적 건강이 신통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부득이 그 자녀들을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그대로 두시는 것이다. 만일 영혼이 병든 사람을 육신만 강건하게 해 버리면 그는 영영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부활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령(주님의 생명)을 좇아 살지 않고 여전히 육신대로, 즉 옛 사람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락으로 약화된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넘어서 강건함을 누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 몸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몸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은 몸이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몸에 필요한 모든 힘과 생명을 공급하신다. 여기에는 위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생명 공급 외에도 적절한 衣食住의 공급과 운동과 휴식의 기회 제공, 건강을 위한 지혜의 공급 등이 다 포함된다.  

⑷ 주님께서 몸의 영광을 위한다는 뜻이다. 이는 몸의 장래와 관계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몸은 죄로 인해 죽은 몸이기 때문에 아무리 주님이 역사하시더라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온전히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되어지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몸을 쓸 수 있기 위해 위로부터 오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임시로 강건함을 누릴 따름이다. 그러나 장차 때가 이르면 이 죄의 몸, 사망의 몸이 썩지 않을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낮은 육신의 몸을 벗고, 영광스런 하늘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 다음 절에 나오는 바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6:14)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장차 있을 육신의 救贖(구속)'에 대해 언급한 말씀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는 몸을 위한다"는 약속의 말씀을 분명하게 경험하려면 반드시 "몸은 주를 위한다"는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바치며 범사에 주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몸에 부어 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육신의 욕망과 쾌락을 좇아 사는 사람은 결코 몸을 위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6:15)

여기에서 바울은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했다. 우리의 靈(영)만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와 따로 존재하는 일반적인 피조물로서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 곧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단지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명백한 실제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성령)과, 우리의 혼은 그리스도의 혼(知,情,意)과,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을 제외한 연합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주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것은 장차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가 몸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때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현재의 이 연합도 완전한 것이다. 성령의 보증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연합은 장차 있을 연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크게 위안을 준다.

우리에게 어떤 육신적인 약점, 결함, 질병이나 허약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주님의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신체적인 필요에 따른 힘과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다. 어떤 신자는 자신이 심각한 육신적 연약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없다고 말하며 육신의 연약함에 눌려서 계속 누추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을 주님께 바쳐서 그 몸에 주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공급을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주님께 바치지만 보잘것없는 상태에서라도 주님께 쓰이다 보면 주님께서 몸을 위해 일하심으로 인해 강건하고 유용한 몸의 상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받아들이고 육신적 필요를 따라 그리스도의 힘을 공급받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와 몸의 연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몸으로 범죄(음행)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한 그것으로 말미암은 각종의 징계들(질병과 사고, 사망)을 받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책망했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고전6:16) 창기와의 연합에 대해 말함으로써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가르쳤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몸을 창기와 합하면 먼저 이룬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의미를 잃고 만다. 바울이 음행을 철저히 금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림에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 몸이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영적인 일을 몸으로 느끼거나, 몸이 직접 영의 인도에 대한 증거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몸으로 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한다든지, 성령이 직접 몸을 지배하여 운용한다든지, 성령이 친히 육체에 충만히 거하여 성령의 뜻을 나타낸다든지, 성령이 친히 몸의 혀를 지배하여 말을 하게 한다든지 하면, 사람의 영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며 그 기능이 중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몸은 결코 영을 앞지를 수 없다. 영이 몸을 지배해야지 몸이 영을 지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장막(몸)은 연약하여 그런 큰 일을 담당할 수 없다.

우리 영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 하나님에 의해 다루심을 받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오직 신체적 건강만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살찐 돼지처럼 몸만 튼튼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우리 삶은 여기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천국이 우리의 소망이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은 이 몸을 가지고 사는 동안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한 몸을 입고 온전히 주님과 연합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이 직접 하나님과 접촉하는 창구가 되기를 소망하며 모든 관심을 온통 신체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될 때 더욱 위험한 것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는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악령들의 목표는 육신이다. 사탄은 육체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리를 체득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온갖 신비한 경험을 가지게 하여 그것을 궁극인 영적 체험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악령들에게 미혹되기 매우 쉽다.

사람이 자기 육신의 정상적인 기능을 모르고 그것을 넘는 과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곧 악령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성령이 몸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몸의 단계에서도 성령과의 교통을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육신과 직접적인 교제를 가지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제하는 채널은 오직 사람의 영이다. 성령은 우리 영에 거하시며 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 이때 우리의 영이 혼을 거쳐 몸을 지배하여 명령함으로써 몸이 하나님을 위하게 되는 것이다. 몸은 결코 성령의 주요 처소가 아니며 영이 일차적인 성령의 전이다. 다만 영이 살아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받고, 또한 몸과 혼이 영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의 영뿐 아니라 몸을 포함한 전 인격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육신으로 하나님을 의식해 보려고 노력하면 악령은 기회를 포착하여 그가 원하는 신비의 경험을 준다. 그러므로 육신의 체험을 구하는 모든 노력은 악령의 침입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몸이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는 말의 참 뜻은 몸이 자기 자신이나 사탄의 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도구로 쓰여진다는 것이며, 또 몸이 허약할 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서 강건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를 혼동하여 육신의 활동이 영의 일을 망치게 하거나 훼방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몸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이 우리 몸을 위하시며 돌보시는 것을 체험하고 그렇게 하여 더욱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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