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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 / 고전8:1-13

2010.05.01 11:41

이상봉 조회 수:6729

하나님을 아는 지식 / 고전8:1-13



37.참된 영적 지식

고린도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문제로 인해 형제들 간에 이견과 다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시험과 실패가 있었다. 고전 8장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전에 고린도교회 형제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고 또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에 대해 문의도 받았던 것 같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다룬바 있다. (롬14장)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이 말한 내용 또는 바울이 의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우상의 제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8:4-6)

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 첫째, 우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고기가 실제로는 우상에게 바쳐질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부정한 고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만물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룩하고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食物)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3,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14:14)

따라서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 잘못되고 부정할 수는 있어도 음식 자체가 부정하거나 귀신과 상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음식이든지 감사히 취하여 바른 용도로 쓰면 된다. 정욕을 따라 먹고 또한 먹은 정력을 가지고 죄를 짓는 것이 문제지 음식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없다. 이것이 음식에 대한 바른 진리의 지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이런 진리의 지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둘째, 주님이 참으로 구원하신 사람 곧 참 그리스도인이라도 진리의 모든 부분을 단번에 총체적으로 다 깨닫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점차 그렇게 되며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 어떤 부분의 진리는 상당히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진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어떤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오해하거나 불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8:7)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롬14:1)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복음 진리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거룩하신 성품 및 그 성품 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뜻과 진리에 대해 다 알아야 마땅하다. 참 진리의 지식이라면 진리의 어떤 부분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전체를 총체적으로 아는 지식이어야 한다. 좀더 세분하여 말하면, 참 진리의 지식이란 ①『하나님이 계시하신 모든 말씀(성경)』을 ‘전체적으로’ 아는 것이어야 하며, ②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총체적으로 감지하는 지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되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에 합치되는 것인지 항상 주의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③ 궁극적으로 참 진리의 지식은 그런 것들(율법을 비롯한 여러 하나님의 말씀들, 우리의 영적 체험 등)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자신을 아는 지식』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인격과 일치되지 않는 지식은 다 불완전한 것이며 잘못된 지식이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지식이요『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요 『하나님의 계시하신 말씀 전체』에 대해 참으로 아는 지식인『참 진리의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타락하여 우매무지하게 된 우리 인생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신실한 성도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심오한 진리의 지식을 단번에 가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 인해 결국 우리는 진리의 지식을 점차 완전하게 가지게 되겠지만 그것이 단번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참 신자라도 주님으로부터 많은 다루심과 가르침을 받아 진리의 지식을 규모 있고 온전하게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부분적으로 무지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두 진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으며, 어떤 진리에 대해서는 밝지만 어떤 진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오해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어떤 형제가 우상에 대한 좋지 않은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우상 제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음식이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어서 그것을 먹는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반대로 (실제로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형제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계속 그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서 먹고 싶음에도 참고 그것을 결코 먹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생명이 없는 사람 혹은 진리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만일 그가 진리에 대해 전혀 무지하고 또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왜 먹고 싶은 음식 곧 생리적으로 간절히 원하는 음식을 거부하겠는가? 그것은 비록 불확실하고 부정확하기는 하지만 무엇인가 진리에 접했기 때문에 자기를 거스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즉 그는 우상은 나쁘고 부정한 것이며 하나님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분이므로 부정케 된 것은 취하시지 않는다는 지식, 그리고 우리 몸은 그런 영광스럽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14:5,6)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대해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안에 아들의 생명이 있고 주님의 은혜의 구원을 받은 흔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그 불완전한 지식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의 지식이 주님의 가르치심과 다루심 가운데서 온전케 될 것을 믿고 기다려줄 줄 아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14:7~13)

셋째, 진리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진 형제는 그의 지식을 ‘사랑 안에서’ 사용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울이 말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가 말한 것은 이것이다. ‘완전한 지식을 가진 형제가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지식을 가진 형제를 정죄하거나 실족케 해서는 결코 안되며 생명의 연합을 깨는 방향으로 그 지식을 써서도 안된다. 오직 그의 지식과 생명을 온전케 하며 세우는 쪽으로 자기의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 참 진리의 지식을 가진 자는 강한 자요 그 진리로 말미암는 자유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자이므로 그렇지 못한 자를 상대적으로 약한 자로 여겨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중에 완전한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8:1-3)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지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8:8-1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14:3-21)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지식은 수단이고 과정이며 은사에 불과하지만 생명은 목적’이라는 것이다. 생명과 관련된 것은 『사람』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이것은 목적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의 중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지식(진리의 빛)을 주시고 어떠한 능력을 주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림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정죄하고 미워하여 나누어진다면 그 지식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세상에는 아무리 탁월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완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된다. 제법 많이 아는 신자들도 사실은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지식을 가진 것에 불과하다. 마지막 날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어느 정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완전하게 다 알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하물며 지금 우리가 아는 지식이란 어느 정도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약한 형제들을 깊이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의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

첫째, 자기가 가진 지식이 진리에 부합하는 참되고 옳은 지식인지, 아닌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 즉 자기의 지식이 계시와 진정한 영적 체험으로부터 나온 참 지식인지 아니면 자기 생각과 철학 또는 전통적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인간적 지식인지 늘 살피고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가 아는 그 진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는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은사이며 특권이다. 그것은 오직 실행하여 진리에 부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아는 만큼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그 진리가 살아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진리의 지식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진리의 진리됨과 중요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재림에 대해 알고 있고 말하는 자라면 매일 실제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재림의 임박함에 대해 말하는 자가 주님이 영구히 오지 않을 자처럼 행동하면 누가 그의 말을 듣겠으며 또 누가 그에게 재림의 계시가 있는 줄 알겠는가?

또 예컨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강조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실제로 하나님의 공급을 바라보며 돈을 사랑하지 않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여유 있는 자세로 생활해야 한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평안과 안식을 누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돌아보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라고 증거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예컨대 자기 생명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외치는 사람 곧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강조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좇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필요성만 알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이 참 진리의 지식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일 그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장 그 지식을 버리고 참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지식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자기로서는 진리인 줄 알고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자기가 아는 지식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것을 충성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비록 틀린 지식이든 옳은 지식이든 어떤 사람이 자기 양심을 거스려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8장에 나오는 신자들처럼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보다 육체의 정욕을 좇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는 생활에서 그런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그것 아니면 고기를 먹을 길이 없다면 곡식이나 과일, 채소만 먹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가진 진리에 충실한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 22,23)

반대로 우상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은 다 잘못된 인간의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신적이고 잘못된 인간의 모든 습관과 풍습에서 실제로 자유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저주받은 소의 고기를 누가 가져 왔다고 할 때 그것을 먹을 수 있어야 하며, 들어가기만 하면 죽는다는 흉가(凶家)가 있다고 할 때 그는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가 가진 지식, 곧 그것으로 다른 형제들을 정죄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자기를 옳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그 지식은 헛 지식이며 무익한 지식이다.

셋째, 자기가 가진 지식이 궁극적 진리 곧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며 기여하는 지식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항상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내 생명과 남의 생명에 도움이 안되는 지식은 참 지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림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모든 진리는 이것과 반드시 조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모든 진리는 사람이 사는 쪽으로, 자유과 생명을 누리는 쪽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쪽으로, 형제와 형제가 하나가 되는 쪽으로 역사한다.

만일 어떤 지식을 사용했을 때 그것이 사람이 죽는 쪽으로 역사하거나 강퍅하고 교만해지고 범죄하는 쪽으로 역사하거나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쪽으로 역사한다면 그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 진리의 지식이 아니다. 그렇게 작용되는 지식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정확하고 바른 지식처럼 보일지라도 무엇인가 잘못된 지식이거나 잘못 사용되고 있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생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역사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방해하고 손상 입히는 쪽으로 역사하는지를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만일 어떤 지식이 내 생명과 남의 생명을 약화시키고 실족시키고 망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그 지식은 주님으로부터 온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헛된 철학과 사탄의 거짓말로부터 온 거짓 지식이 분명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것은 (사탄의 의도대로) 대단히 잘못 쓰여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본문에 나오는 바와 같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부정하다고 먹지 않는 형제는 분명히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며 그것을 담대히 먹을 수 있는 형제는 분명히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가진 형제가 진리를 가지지 못한 형제를 마구 정죄하며 그의 행동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자기 생명과 상대방의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형제를 실족케 할 뿐이다.

그리고 몸의 각 지체가 연합하지 못하도록 막을 뿐이다. 몸은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것이지 모든 지식을 다 공유해야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생명이 있는 자들 간에도 서로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므로 그를 정죄하여 쓰러뜨림으로써 몸의 지체들이 분열하게 된다면 그의 지식은 생명을 거스려 작용하는 지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물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형제가 보는 앞에서 마구 제물을 먹는다면 그의 자유는 형제를 실족케 하는 사탄의 도구로 쓰일 뿐 아무 유익이 없다. 상대는 그것을 보고 ‘아니 내가 존경하는 저 사람도 저렇게 고기가 먹고 싶다고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정욕대로 먹는 것을 보니 나 같은 사람 정도야 얼마든지 정욕에 따라 주님의 뜻을 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의 지식은 비록 옳은 지식이라고 하지만 성령의 다루심을 받지 않은 육적 지식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선악을 따라 행하지 말고 생명을 따라 행해야 한다. 옳고 그름이란 하나님의 생명의 제재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어떻게 행하시는지 무엇을 하시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치에 옳은 대로 내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우려하는 모든 선악적 오류들도 다 아들의 완전한 생명의 역사 안에서 바로 잡히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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