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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역함 / 고전3:5-11

2010.05.01 11:26

이상봉 조회 수:6588

23.하나님의 일과 사람

바울은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고 하며 서로 나누어지고 분쟁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과 사람이 동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일에 참여하여 심기도 하고 물도 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말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동역하기는 하지만 그는 독자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서 일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 원칙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참여하고 동역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바울이 하는 일과 아볼로가 하는 일 또는 베드로가 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일의 내용과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따르고자 하면 아볼로를 따를 수가 없었고 아볼로를 따르고자 하면 또 바울을 따를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말하기를 모든 참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 일하는 종들이며 그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혹은 이 일 혹은 저 일을 함으로써 같은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 중 누구를 따르든지 결국은 다 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며 누구의 일에 참여하고 있든지 다 결국은 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은사가 다르더라도 그것을 따라 서로 다투며 갈라질 필요가 없고 또한 자기들을 가르치며 자기들을 돕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지도자에 따라 서로 다투며 갈라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요한복음 6:28에서 예수님을 좇던 유대인들이 주님께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그들은 주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자 그런 양식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가 하여 그렇게 물은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양식에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물은 것은 자기들이 어떻게 하면 그 양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떠한 하나님의 일을 해 주면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고 싶어도 하나님을 위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죽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은 아담 이후 생명의 양식이 없어서 죽은 상태에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혹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일하시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시도록 자기를 내맡기는 것이다.

바울이든 아볼로든 고린도교회 형제들이든 그 누구든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일하실 뿐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바울과 아볼로는 그들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는 일군도 아니요 그들 스스로 사람들을 어떤 길로 이끄는 지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하나님이 자기들을 어떻게 주무르시든지 전적으로 자기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일 뿐이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일을 하는 일군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은 분명히 사람을 구원하고 형제들을 가르치며 이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그 모든 일은 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그들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도록 자기를 하나님께 내맡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서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며 최상의 일이다.

언제나 사람은 자기가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은 다만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원칙인지 모른다.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려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을 내고 계산하며 일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비록 어떤 탁월한 하나님의 사역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 자신을 주목하고 신뢰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오직 그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나오는 그의 영과 생명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바울이나 아볼로같은 탁월하고 유능한 사역자들을 대할 때 그들을 지나치게 생각한다. 그들을 따를 때도 통하여 그들을 통하여 그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지 않으려 하지 않고 그의 외모, 곧 그 사람의 인간적 특성과 장점에 매력을 느끼고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은 헛된 일이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바울이든 아볼로든 베드로든 사람은 다 구원받은 죄인일 따름이다. 자신이든 남이든 헛되이 사람을 신뢰하고 숭상하는 것은 다 우상숭배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 하신다. 누가복음 10:38-42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이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주님이 오셨을 때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아래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들었고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하였다. 그녀는 주님께 동생더러 일을 거들도록 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자기가 주님을 위해 일을 많이 하고 있으므로 주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동생은 방에 편히 앉아서 주님의 말씀만 듣고 있으니 주님을 섬기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칭찬하지 않았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다. 마리아는 오직 조용히 주님의 발 아래 앉아 주님을 가까이한 것밖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 즉 주님이 그녀를 구원하시고 그녀를 섬기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인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주님은 그의 말씀을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 마리아가 이것을 받은 것은 주님이 그녀에게 일하실 기회를 드린 것이며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달성하도록 자기를 내맡긴 것이다. 일은 마리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 마리아의 일은 다만 주님이 자기에게 일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믿음이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믿음은 열심이나 수고가 아니라 주님이 자기의 생명이요 자기의 구원이요 자기의 능력임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그를 조용히 주목하고 그의 음성을 청종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를 이끄실 때 조용히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는 일이 바로 최고의 하나님의 일이다.

이것을 알면 바울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을 때 그 동역의 성격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동역은 분명히 하나님과 같이 일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람은 완전히 빠지고 오직 하나님 혼자서 일하는 것은 동역이라고 하지 않는다. 분명히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는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에 즉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 구원받은 형제들을 온전히 세우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일한 주도적 일군들이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서는 그들이 주도적 일군들 즉 지도자였지만 그들 내면에 있어서 그들은 전혀 주도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도자가 되시고 그들은 다 그의 지배와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그가 전한 모든 것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우리 안에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계시로 말미암아 깨달았기 때문에 육신적 관계를 따라 사람들에게 묻거나 의논하지 않고 계시로 깨달은 그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한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다가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바울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셨고 그는 다만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에 자기를 내맡겼기 때문에 일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았다. 그것은 자기가 연구해서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안에서 그를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사람의 상식대로 안 것이 아니라 영적 실제대로 깊이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를 확실히 전할 수 있었다. 그가 전한 그리스도는 객관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가 실제로 생명의 주로 누린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안에 계시고 그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생각 속에, 그의 말 속에, 그의 행동 속에 계셨다. 바울은 자기 안에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를 밖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모르는 것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참으로 아는 것을 전했으며 아는 만큼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먼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넣으시고 그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밖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했는가? 그는 무엇을 전했는가? 고린도전서 2장에서 계속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전했다. 그는 사람의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처리되고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형성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이 새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일이다.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와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은 다 하나님과 동역하여 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도구들이다.

바울은 이 일에 좀더 말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 것은 이 하나님의 일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작하시는 밭이요 하나님이 짓는 집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갈으시며 우리를 지으신다. 이 모든 하나님의 일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친히 기초를 닦으시며 그 자신이 이 건축과 이 농사의 기초가 되신다. 그가 없이는 하나님의 일은 시작될 수도 없고 진행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라는 밭에 그리스도를 뿌리신다. 씨앗이 그리스도이므로 장래 추수할 것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작은 생명의 씨가 뿌려질 뿐이지만 마침내 그것은 크고 영광스러운 단체적 그리스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본래 이 생명의 씨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가 거듭날 때 이 생명을 우리 안에 더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모든 일은 모두 이 더해진 생명의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이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터가 되신다는 말이다.

이 거듭난 생명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인 것처럼 이후의 생명의 성장과 성숙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양육에 달린 것이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5) 여기에 사람의 지혜와 능력은 아무 소용 없으며 사람의 가장 좋은 것도 이 하나님의 일에는 무용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오직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뿐이며 그 성령의 역사를 주목하고 그것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은 다만 하나님의 일을 막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과 관련하여 사람의 최고 덕목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 능력과 자기 지혜, 자기 주장, 심지어 자기의 선함도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부르심을 받아 사역하는 우리 모두는 여기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참된 동역을 하려면 어디까지나 순결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두려워하며 떨며 조심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속한 가장 좋은 것조차도 거절하고 그리스도의 생명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하나님의 일에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성령의 분명한 계시가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는 분명한 부담이 없으면 차라리 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령 안에서 분명하게 경험한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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