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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하게 삶  

우리는 지난 주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거룩하게 건축되어야 하며 어떻게 거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거룩하게 건축되고 관리되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성전을 지을 때와 관리될 때는 일정한 원칙이 있었고 그 건축과 유지는 이러한 원칙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선 성전이 어떻게 거룩하게 지어졌는가와 관련된 원칙을 살펴보자.

첫째, 구약 성전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산에서 지시하신 식양(式樣)대로 건축되었다. 그 재료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모든 재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선별되고 그 건축 양식도 오직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정해졌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8:5)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25:9)

둘째, 구약 성전을 이루는 재료는 반드시 비싼 것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반드시 깨끗하고 좋은 재료여야만 했다. 거기에는 금과 은과 보석이 아낌없이 사용되었고 백향목과 같은 좋은 재료가 사용되었다. 때로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에 따라 조각목(아카시나무)과 같은 값싼 재료도 쓰였지만 대체로 귀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적어도 더러운 재료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셋째, 성전은 가급적 인공적인 재료를 배제하고 자연적 재료를 사용했다. 될 수 있는 한 사람의 손이 많이 가미된 재료는 쓰지 않도록 하였다.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출20:25,26)

다음으로 성전이 어떻게 거룩하게 관리되었는가와 관련된 원칙을 살펴보자.

넷째, 구약 성전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함부로 만지거나 접할 수 없도록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다섯째, 성전에서는 땀나는 옷을 입는 것이 금지되었다.

여기서 첫째, 둘째, 넷째 원칙은 성전인 우리의 성별된 삶에 대해 말해 준다. 구약 성전은 거룩하게 만들어졌고 거룩하게 유지되었다. 거기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었고 그 안에 있는 아무 것이나 함부로 만지거나 접할 수 없도록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성전은 세 칸의 구조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제일 바깥에는 성막 뜰(바깥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손을 씻는 물 항아리가 있었다. 다음으로 성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등불을 항상 켜 놓고 하나님께 드릴 떡을 진열해 놓고 향을 피웠다. 제일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오직 법궤만 있을 뿐 아무 것도 들여놓을 수 없었고 불도 켜 놓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항상 컴컴했다. 이방인들은 바깥 마당에도 들어 올 수 없었고 유대인이라도 성소에는 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일 년에 단 한 번 오직 대제사장만이 제물의 피를 뿌리기 위해 잠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다.

이처럼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었다. 그러므로 세상은 성전과 전혀 관계할 것이 없다. 성전에는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성전에 즉 우리 인격에 우리 몸에 우리 삶에 결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택함 받지 않았고 하나님을 모르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은 그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고 세상의 아무 좋은 것이라도 성전 안에 진열해 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성전을 이렇게 보존 관리해야 한다.  

성전의 가장 중심부에 오직 법궤만 놓여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전인 우리 인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며 거기에는 인간의 어떤 지식이나 생각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보여준다. 지성소에는 인간의 불을 켜 놓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우리의 성별은 생각과 마음의 성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이방인이 들어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제사장도 들어올 수 없다. 즉 악하고 부정한 것뿐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 좋은 것이라도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성막의 중심 기구인 법궤의 경우에는 더 그랬다. 광야에서 법궤는 이동을 했는데 이동할 때는 반드시 사람이 그것을 채에 꿰어가지고 어깨에 메어야지 수레에 싣거나 손을 만지면서 들고 다녀서는 안되었다. 더구나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사사 시대에 법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탈취되어 우상 신전에 놓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법궤가 안치된 우상 신전의 우상은 즉시 넘어져 목이 부러졌고 그 지역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성전은 합당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과 함께 섞이며 함부로 다루어지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허용하시지 않으신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6:14-18)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3-20)

우리가 우리 몸을 창기에게 내어준다면 우리는 성전 안에다 창녀집을 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술과 오락을 즐기면 우리는 성전 안에 도박장과 술집을 차리는 것이다. 법궤가 넘어지려고 할 때 법궤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에 손을 댄 웃사도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법궤 안에다 술을 담고 쾌락을 위한 도구들과 오물과 온갖 세상 쓰레기를 담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셋째와 다섯째 원칙은 성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순종하며 그의 인도를 받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해 준다.
성전에서는 땀나게 뛰어 다니는 일이 금지되었다. 성전에서는 인간이 노력하고 애쓰고 자기 꾀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서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고 하나님 자신이 수행하는 사역이었다. 인간은 다만 그 일에 수종하고 보조하는 것뿐이었다. 제사는 사람이 힘들여 하는 작업일수도 있다. 그러나 제사가 일이라는 것은 고기를 불에 태우고 떡을 진열하고 피를 뿌리고 향을 피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의 죄를 사한다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제사는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이다. 이 일에는 제사장이 전혀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할 것도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일은 사실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수종하며 보조하며 그 역사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발에 땀나게 뛰어다닐 일이 없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는 성전 자체를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전과 제사 제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제대로 관리하는 길은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 분이 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는 그 많은 일들이 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열심과 자기 재미로 바쁘게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너는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대저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케 하는 것이 되었으며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전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44:6-15)

우리가 항상 우려해야 할 일은 우리 중에 하나님 자신은 섬기지 않으면서도 밖으로 뛰어나가 죄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들이거나 믿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거나 선한 일을 하는데만 몰두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봉사라고 하는 많은 일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기호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 가령 우리는 밖으로 뛰어나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의 기질과 열심을 따라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성경이나 거룩한 책을 보는 것이나 명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주님께서 밖으로 나가서 어떤 일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듣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명상하며 기도하는 것은 육신적인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에게 봉사도 하며 조용히 좋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하는 내내 사실은 우리 자신의 육을 섬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모든 봉사에 앞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 앞에 일단 서는 일이다.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 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겔44:16-18)

제사장이 수종드는 일이란 성소 내부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이 성소는 감추어진 곳으로 바깥 뜰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깥 뜰에서 요란하게 짐승을 잡고 제사를 드리는 것에 비하면 성소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제사장은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은 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수종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전 바깥 뜰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을 능가하는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오직 그 명령에 따라서만 봉사하며 우리의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신하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같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수종드는 자들이 입어야 할 옷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절대로 털옷을 입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땀나는 일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땀은 무엇인가? 우리는 땀이 처음 언급된 것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창3:17-19)  
땅이 다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 땀은 저주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분명하다. 땅이 저주를 받았으므로 이제는 인간의 수고가 없이는 열매를 내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땀흘려 힘써 수고를 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거두어지니 인간의 수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열심을 의미하는 땀은 하나님의 열심을 의미하는 안식과 반대되는 것이다. 성전은 어떤 곳인가?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 오셔서 사람을 위해 일하시며 사람을 살리시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전에 속한 사람은 거기서 땀나게 뛸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넘어서 인간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는 안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 온통 계획하고 조직하며, 권하고 촉구하며, 멀리 멀리 돌아다님으로써 부지런히 머리와 손발을 놀린다. 오늘날 현실은 땀이 없으면 일도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전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지시를 받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다.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시19:13)  다윗이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은 성막이 오직 하나님의 식양대로 지어졌다는 사실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땀나는 옷을 입지 않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의 생이 성공적이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왕이었다든지 그가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가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생을 살았다기 때문이다. 그는 고범(故犯)죄 짓는 일을 가장 큰 죄로 알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전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되는 사람이다. 이것을 어기고 마음대로 무엇을 하면 그것이 바로 고범죄이다. 고의(故意), 즉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장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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