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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신부 / 고전5:1-13

2010.05.01 11:31

이상봉 조회 수:6582

29.교회의 순결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영원하신 계획은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조성하시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세상은 지금 마귀와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차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더럽히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과 종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땅에서 마귀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땅의 주인으로 세우심으로써 땅을 하나님께 다시 돌리고자 하신다. 하늘과 땅은 다 본래 하나님의 처소이다. 그 목적을 위해 땅과 사람과 만물이 지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이 땅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사실 집으로 만드실 것이다. 나라를 회복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은 곧 이 땅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거룩한 새 사람을 조성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영원히 데리고 살 영광스러운 아들들을 조성하는 것,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거룩한 집(새예루살렘)을 짓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를 섬기며 살 거룩한 아들들, 거룩한 신부들을 조성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인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에 널려 있는 보통 사람들(이들은 죄인이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 말고 하나님에게 맞는 특별한(정상적인) 종류의 사람들을 조성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에 있는 이 새로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도라고 불린다. 이 사람들을 개인으로 부를 때는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전체로 부를 때는 교회라고 한다. 이 새로운 사람 곧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큰 특징은 첫째로 거룩하다는 것이고, 둘째로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것은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9) 이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만 가는 사람들이므로 진실한 사람 즉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범죄하는 사람, 불의한 사람, 육적이고 정욕적인 사람,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5-8) 왜 거룩한 사람이어야만 되는가?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4-16)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새로 조성된 생명이 본성적으로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제격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억지로 육신의 욕구를 누르고 무리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거룩한 생명을 믿음으로 누리라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 의사를 매우 존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가 부르시고 은혜로 역사하신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는 일을 그 사람의 마음과 상관없이 억지로 하지 않고 그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동의와 감사와 감격과 열망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

거룩한 삶은 거룩한 사람 즉 거룩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 생명을 받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은 그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 삶은 매일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다. 믿음으로 사는 이것이 우리 삶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조성하신 새 생명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하루 하루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혹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혹은 거룩한 새예루살렘으로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해 나가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여 연합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교회는 억지로 누가 만들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여러 모양을 가지고 있고 여러 다른 형편에서 살고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그 생명의 속성상 함께 모이고 싶어하고 함께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모여서 서로 돕고 서로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함께 살고자 하는 이 성질은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질과 복합되어 교회 안에서나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생활 속에서 특히 음행과 부정, 우상 숭배를 경계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음행이란 내 아내, 내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가정 파괴 행위이다. 처녀 총각 간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역시 가정 파괴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조성될 가정에 큰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의 길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 안에서 사는 것, 즉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굴레 안에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우주 질서의 근본은 가정과 교회이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교회는 큰 가정이다. 가정이나 교회의 머리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우리 각 사람과 하나님, 그리고 서로 간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음행과 부정, 우상 숭배는 이 틀을 깬다. 음행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음란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은 길로 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것이며, 또한 그 틀로 유지되고 있는 인간 관계를 깨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개인적으로 거룩하지 않은 생활 즉 더럽고 음란한 행동을 한다면 우선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다. 우상 숭배는 음란한 행실을 확대한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정욕을 좇아 사는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탐심을 좇아 행하는 것, 성적 범죄, 도둑질, 우상 숭배는 한 줄에 꿰어진 동일한 성질의 범죄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하려 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부터 만족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음행과 우상 숭배는 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믿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 즐거움과 만족만 믿는 것이다.


교회가 순결성을 유지하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단과 각종 거짓 사상들을 경계함으로써 교회를 사상적 진리적 면에서 순결하게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자들을 음란과 탐욕과 우상 숭배와 세상을 좇아가게 만드는 마귀의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시험에서 교회를 지킴으로써 교회를 실제 생활에서 순결하게 지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사상적 진리적 면에서 교회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아닌 거짓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마귀를 경계해야 한다. 사실 많은 경우에 두 번째의 시험 곧 신자들로 하여금 육적 본능대로 행하여 범죄하게 만드는 마귀의 시험도 알고 보면 첫 번째 시험에 대해 교회가 분명하게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즉 신자들이 돈을 사랑하여 재물에 탐닉하게 되거나 세상 명예와 권세를 탐하여 출세를 지향하게 되든지 성적 범죄나 기타 부도덕한 죄에 빠지는 것은 많은 경우에 교회가 그런 것들을 사상적으로 어느 정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어차피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사는 존재이며 이상만 가지고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니 세상 삶은 세상 방식대로 추구하고 영적 삶은 그것과 따로 추구하면 된다는 사고 방식을 교회가 허용하기 때문이다. 죄인인 인간이 어차피 전혀 범죄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지 인간의 선한 삶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니 약간의 범죄와 육적 생활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바로 신자들로 하여금 그런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나 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는 큰 죄 작은 죄 할 것 없이 전혀 당치 않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했으므로 범죄할 수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므로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질 수도 없고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사는 것 외에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3:7-9)

그 다음은 실행적인 것이다. 이것은 음행과 부정이 나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사탄의 시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마귀의 시험을 믿음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 범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믿음의 연습, 즉 매 순간 믿음으로 살며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실제적인 삶의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을 게을리하는 사람 즉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 심지어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 안에서도 교훈을 배우는 자세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두 가지 다였던 것 같다. 사상적 면에서도 문제가 있고 실행적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다 사탄의 시험을 간과하고 부주의하고 마음을 해이하게 했던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다루시며 어떻게 조성해 가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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