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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연합 (1) / 고전1:1-9

2010.05.01 11:12

이상봉 조회 수:5977

7.교회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땅에 있는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바울이 여기서 말한 것은, 몸의 지체가 많지만 한 몸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도 그러하니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교회)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머리일 뿐 아니라 또한 지체들이다. 그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포함하고 있다.

한 인격은 한 몸을 가진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렇다. 한 그리스도는 한 몸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여러 지체들은 하나의 몸에 속한 것이므로 모든 신자들은 연합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 신자들을 다 한 몸에 (지체들로) 붙여 놓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개인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큰 몸의 지체들로 부르신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지만 그것들은 따로 따로 여러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연합 안에서 한 몸으로 존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교회도 여러 신자들이 있고 여러 모임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다 서로 다른 교회들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모든 교회가 하나이며 모든 신자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이 연합은 땅(세상)에서 지금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 하늘에서 나타날 때까지 즉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실 때에 가서야 나타나도록 기다려서는 안된다. 주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땅에 있는 그의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주님은 세상이 교회의 연합을 보고서 비로소 주님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신자들이 행하는 선행이나 기타 어떤 종교적, 도덕적 활동을 보고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자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보고서 예수를 믿게 된다. 왜냐하면 선행과 기타 모든 종교적 도덕적 행위들은 다 세상에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진정한 연합만은 세상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주님을 증거하며 세상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연합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에는 결코 진정한 연합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세상 속에 즉 사람들의 마음 속에 마귀로 말미암은 미움과 불신과 분열의 씨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는 사랑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끌어당기는 생명이 들어 있다. 이것으로 인해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연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그 생명대로 살기만 한다면, 성령을 좇아 살기만 한다면 연합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삶으로써 세상에서 우리 생명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어야 한다. 장차 천국에서는 우리가 서로 연합하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하나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믿음 안에서 그것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라도 신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곧 많은 사람들이 사랑 안에서 아들의 생명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다 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대적하고 우리의 연합을 나타내어야 한다.


<연합은 두 방면에서 나타나야 한다>

첫째, 각 교회 안에서의 연합이다. 세상의 모든 신자들이 다 한 자리에 모일 수는 없으므로 신자들은 무리를 지어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지역교회라고 부른다. 이런 지역교회들 안에서 신자들은 반드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 머리(성령)의 인도를 좇아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통해 몸(그리스도)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 교회의 연합이다.

둘째, 각 교회들 간의 연합이다. 편의상 여러 곳에서 따로 모임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교회들은 다 한 교회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각 교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교통하며 필요할 때 함께 모이기도 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별 차이도 없으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교통도 하지 않는 것은 마귀의 뜻대로 되어 있는 것이다.


<연합의 원칙>

연합은 덮어놓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의 일정한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연합을 도모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원칙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교회의 연합, 신자들의 연합은 동일한 부르심을 받고 동일한 생명을 지닌 '성도들의 연합'이라는 원칙이다. 연합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믿음, 같은 소망, 같은 진리, 같은 생명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유로 연합하는 것은 절대로 진정한 연합이 아니다.

둘째는 동일한 생명을 지닌 형제들 간에는 어떤 다른 이유로도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것원칙이다. 본질적 생명이 같으면 지엽적이고 표면적인 차이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따지지 말고 하나됨을 굳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교회는 그 출생으로 인해, 그 생명의 본질로 인해, 그 생명의 동질성으로 인해 하나됨을 표방하는 것이지 겉 모습의 동일함으로 인해 하나됨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한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서로를 형제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형제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막바로 외형적으로 같은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동일한 생명을 지닌 형제들 간에 이런 저런 인간적 이질성과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근거로 분열해서는 안된다.


<연합은 몸에 제한됨>

많은 사람들이 이런 원칙에 주의하지 않고 덮어놓고 연합을 도모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참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도 연합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지나치게 연합의 폭이 넓다. 또 어떤 사람들은 꼭 자기와 생각이 같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만 연합하려고 한다. 이것은 지나치게 연합의 폭을 좁히는 것이다. 이렇게 폭 넓은 연합이나 폭이 좁은 연합은 주님이 원하시는 연합이 아니다.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상대주의, 다원주의는 신자들의 연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참 신자들끼리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단지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호의적인 사람들, 곧 영적으로 한 생명이 아니며 실제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과도 연합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이런 연합은 연합이 아니라 혼돈이요 음행에 지나지 않는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하는 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밭은 세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 알곡은 하나님이 뿌리신 자들,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참 신자들이고, 가라지는 마귀가 뿌린 자들, 곧 신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아닌 가짜 신자를 말한다. 신자와 가짜 신자가 공존하는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가? 그것은 그냥 세상이 아니라 교회 세상이다. 그러므로 마13장이 말하고 있는 세상(밭)은 참 교회와 세상적인 교회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기독교 세계'를 가리킨다.

이 기독교 세상에는 참 신자와 가짜 신자가 함께 존재하며 참 교회와 가짜 교회가 함께 존재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연합은 무슨 연합인가? 당연히 참 신자, 참 교회 간의 연합이다. 이것만이 몸의 연합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몸의 연합을 알곡과 가라지의 연합으로 생각하고 있다. 알곡끼리만 연합할 것이 아니라 가라지와도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근거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위해 기도하신 것(요17장)과 본 비유에서 주님께서 명하시기를 밭에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씀하신 데서 찾는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24-30)

그러나 주님이 이 비유에서 다루신 것은 교회의 연합이 아니라 단지 장차 교회에 참 신자와 가짜 신자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과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가짜 신자를 가려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참 신자와 가짜 신자의 연합을 명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은 바울을 통해 생명이 같지 않은 자와는 연합해서는 안되며 분리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6:15-18)

주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것은 단지 신자가 불신자나 가짜 신자들을 그들 모임에서 억지로 가려내거나 그렇게 가려내어진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로마 천주교는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이단 심판과 마녀 사냥을 종종 시도했다. 그 결과 많은 참 신자들을 교회에서 제거하고 말았다. 이단과 사이비라는 가라지를 교회에서 뽑겠다는 동기 자체는 옳았지만 절대자적이고 완전한 판단력과 완전히 공평무사한 마음을 소유할 수 없는 인간이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과 심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주의하지 않고 이단 심판을 남발했던 로마교회의 지도자들은 마13장의 주님의 가르침을 무시함으로써 마귀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다. 그들이 성령을 따르지 않고 교만하고 부주의한 마음으로 가라지를 뽑는 일을 저지른 결과로 나타난 가장 큰 실패는 참 교회인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교회에서 제거해 버린 것이다. 이는 곧 알곡을 제거하고 가라지만 교회에 남긴 꼴이 되었다.

이처럼 주님은 기독교 세상에서 가라지를 뽑을 것을 명하시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시며 판단하시는 주님께서 오셔서 친히 이루실 것이다. (밤에 몰래 와서 밭에다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로 인해) 어차피 교회가 아니면서 교회라는 이름으로 온갖 비그리스도적인 일을 행하는 무리들이 세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일일이 그것에 관여하거나 간섭하며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힘을 쏟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주님의 몸인 참 교회 안에서는 가라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밭은 세상이므로 거기에는 가라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는 가라지가 있어서는 안되며 만일 그것이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교회에서 제거해야 한다.

로마 천주교는 교회를 세상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근거와 기준으로 하여 교회를 세우지 않고 형식적인 교리와 의식, 제도와 조직을 기준으로 교회를 세웠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리에 동조하고 의식에 참여하며 그들의 제도적 권위(특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거나 조직에 들어 있는 사람은 다 교회로 인정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가짜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천주교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적 세상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서 분리 작업을 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에서는 생명을 근거와 기준으로 하여 항상 분리와 제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추수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는 것은 세상 곧 기독교라는 이름 하에 온갖 잡동사니 세상 요소들을 기독교적 요소들과 함께 받아들이고 있는 그 세계 안에서이지 교회 안에서 그러라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생명의 확대요 연장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낳은 산물이다. 그러므로 생명 없는 사람이나 생명 없는 일들 곧 모든 허례허식(虛禮虛飾),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닌 온갖 헛되고 무의미한 종교 의식들을 교회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생명 있는 자들끼리 하나되기를 힘써 모든 지체들이 몸의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고 그 영광을 밖으로 나타내도록 힘써야 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로마 천주교가 과거에 행한 것처럼 가라지 곧 명목만의 신자들을 교회 안에서 제거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하다가는 참 신자들을 뽑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참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참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 (제대로) 알고 그렇게 (합당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참 신자들도 처음에는 그 생명의 미약함으로 인해 가라지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유와 참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는 동안에 복음을 듣고 형제들로부터 생명의 자극을 받는 중에 그리스도를 참으로 받아들이고 살아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가짜 신자가 교회 안에 있어도 우리는 그들을 세상으로(교회 밖으로) 쫓아내어서는 안된다.

교회에 명목상의 신자가 있으면 그들을 신자로나 형제로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생명 주는 일을 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이 분명하게 증거되고 있고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이라면 설사 처음에는 다른 동기나 목적, 혹은 맹목적으로 나오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른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짓 신자와의 연합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원수가 교회를 혼란케 하기 위해 생명 없는 가짜 신자들을 교회에 뿌리며 그들이 교회를 혼잡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생명이 불투명한 사람들, 믿음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유력하다고 해서 중요한 자리에 앉게 하거나 영향력 있는 위치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적어도 교회는 분명히 신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을, 알면서도 신자로 인정하거나 형제로 수용해서 거짓 교제를 가져서는 안된다. 그들을 형제로 받아들여서 엉터리 연합을 하는 것은 지체가 아닌 것을 몸 안에 붙이는 것과 같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가라지를 허용하셨으나 그것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셨다.

로마 천주교와 같이 타락하고 왜곡된 교회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볼 것 같으면 양면적으로 모순된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가라지를 제거해 버리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라지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단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정죄하고 배척한다. 그러나 주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며 믿지도 않는 수많은 가짜 신자들을 단지 그들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그들을 좋아하며 그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신자로 인정하고 축복하며 교제한다.

오늘날 YMCA 등과 같은 수많은 기독교 단체들은 불신자를 버젓이 받아들여서 함께 연합하며 함께 일한다. 국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을 무조건 신자로 여겨 세례를 주고 교회에 가입시킨다. 이것은 다 공공연히 가라지를 교회에 받아들이는 일이며 심지어 가라지도 못되는 자들(가짜 신자가 아니라 아예 교회에도 다니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교회의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들은 항상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굳이 기독교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을 적대시하거나 백안시하지 말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자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그의 능력과 그의 방법으로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의 능력과 수단을 써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세상 일을 하며 세상 목표를 추구하기 마련이지 하나님을 위하지도 않으며 위할 수도 없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교회의 본질은 결코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 자들을 그 안에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만으로 구성된다. 그들만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 몸의 지체들이 함께 모여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함께 일하는 것이 교회이지 그 이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전도 목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러 놓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사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님이 세리와 창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자기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셨듯이 믿는 자가 아직 믿지 않는 자에게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교제하며 먹고 마시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모임과는 다르며 그런 연합과 교통은 신자의 연합과 교통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연합은 모든 몸을 포함한다>

이번에는 연합의 폭이 너무 좁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성도란 정확하게 말하면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성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요 그런 부르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를 말하지 그 이상은 아니다. 성도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인간적 자격이나 자질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예수는 분명히 믿는데 별로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성도이다. 단지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못했을 뿐이다. 교회란 단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주님을 부르며 의지하는 자들이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는 것이며 교회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생명으로 삼는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인정하고 그들과 교제하며 그들과 하나됨을 유지하기를 힘써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면 어떤 사람도 교회가 될 수 없고 또한 그들과 연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까다롭게 교제의 폭을 좁혀서도 안된다. 교회란 단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예수를 의지하는) 자들이면 족하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 이하도 안되지만 그 이상이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누가 참 신자이며 누가 참으로 교회에 속한 자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오직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누가 우리의 형제인가를 판별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이 선을 지켜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가 아니면 우리의 형제가 될 수 없고, 또한 주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자라면 부분적으로 다른 점이 있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분명히 함께 교제하며 연합할 형제인 것이다. 예수의 생명을 지닌 자이면 현재 그의 모습이 어떻든지 한 몸 안에 있는 지체요 형제로서 사랑하고 섬겨야 할 자인 것이다.

교회는 모든 종류의 인간들,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착한 사람이나 못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차별이 없이 한 식구가 된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1-19)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11)

세상은 언제나 사람을 대할 때 선악(善惡)의 원리를 따라 대한다. 즉 사람을 볼 때 그가 어떤 사람이냐 곧 그가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 내게 맞는 사람인가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그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단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즉 사람을 생명을 따라 보지 않고 선악을 따라 보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후로부터 모든 인류는 서로를 대할 때 언제나 저 사람이 나보다 나으냐 못하냐, 혹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저 사람이 무엇을 가진 사람이냐 가지지 못한 사람이냐는 식으로 항상 어떤 선악적 기준을 가지고 차별하여 대하게 되었다.

사람을 단순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동일한 생명 곧 형제로 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차별하는 습관은 마귀로부터 온 잘못된 습관이다. 오늘날 아담의 자손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함께 받은 모든 인류를 우리 형제로 볼 수는 없지만 함께 거듭난 모든 신자들과는 어떤 선악적 기준을 따른 차별 없이 생명으로만 그들을 대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인 선과 악, 물질이나 지식, 명예, 권력의 유무, 인종과 사상, 능력, 외모의 차이 등 그 어떤 선악 기준에 의해서든지 교회는 나누어져서 안된다. 한 형제가 다른 형제들을 이런 저런 선악적 기준을 가지고 대하게 되면 결국 교회는 서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못난 사람, 내게 필요한 사람과 불필요한 사람, 내게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으로 나누어져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싸우며 육신의 필요와 성향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는 식으로 결국 마귀의 뜻대로 되고 만다.

주님께서 자신을 화목 제물로 바쳐서 이루신 화목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화목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화목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사람은 사람을 어떤 선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명 안에서 화목을 이룰 수 있다. 교회는 사람을 육으로 대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대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가를 따라 대해야 한다.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 어떠한 사람'이기 이전에 한 아버지로부터 났으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형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납하며 평안을 도모하기를 힘써서 서로 하나임을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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