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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연합 (2) / 고전1:1-9

2010.05.01 11:13

이상봉 조회 수:7095

8.하나인 교회

지난 주에 우리는 신자의 연합, 각 지역교회 안의 연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모든 교회들이 다 한 교회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각 지역교회들 간의 연합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땅 위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다. 다만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오직 '교회' 그 자체뿐이지 다른 이름은 있을 수 없다. 고린도전서 1:2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표현할 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이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했다. 빌립보서 1:1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이라고 했고 에베소서 1:1에서도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1:2에서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이라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1:1에서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했다. 그 어디에도 교회라는 이름 외의 별다른 고유명사는 붙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보게 된다.

첫째는 교회는 다 하나이므로 따로 따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교회들이 있어도 그들은 다 한 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말한 고린도교회나 빌립보교회, 에베소교회는 [고린도교회], [빌립보교회], [에베소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조직화된 교회가 아니었다. 그런 교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고린도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한 목사 밑에 단일한 모임을 갖고 있는 그런 조직화된 교회는 없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부른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교통하고 있는 고린도 지역 내의 모든 교회들(성도들의 모임)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하나의 고린도교회라고 인식했으며 더 나아가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본 것이다. 그때의 고린도나 빌립보, 골로새, 예루살렘 등에는 지금의 부산처럼 이미 여러 개의 많은 소규모 모임들이 있었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편상 교제만 소규모로 나누어 가졌을 뿐 마음으로 다 한 교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단위 지역 내에서 필요할 경우 아무 제한 없이 교통을 가졌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나 초대 교회 형제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오직 우주에 하나 뿐이며 그것은 시대와 공간과 구성원들의 종류를 초월하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고린도교회라고 할 때 앞에 붙는 고린도라는 이름도 그 교회들(모임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을 밝히려고 붙인 이름일 뿐이지 무슨 고유명사로 쓴 것도 아닌 것이다.

이 큰 몸인 교회(the church)에서 구별되어 특별히 무슨 무슨 교회라고 불릴 수 있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 없다. 오직 편의상 서로 교제할 수 있는 구역(울타리) 내에 있는 형제들의 모임을 그 구역의 지명을 붙여서 무슨 무슨 교회라고 부르는 것일 따름이다. 성경에는 고린도교회라는 식으로 지역명을 교회명으로 붙이지 않고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교회라는 식으로 개인의 이름을 붙인 교회명으로 붙인 경우도 있다. 어떤 신자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교회를 가리킬 때 그 집주인 되는 형제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롬16:5, 고전16:19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교회] 또는 [그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썼고, 골4:15에서는 [눔바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한 목사 혹은 한 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조직화되고 독자적이 되어 독자적으로 일을 하고 독자적으로 교제함으로써 다른 이웃 교회들과의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오늘날의 교회는 그 형태와 성질이 초대교회와 다르다. 오늘날의 각 교회들은 철저하게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교회가 같은 지역 내에 있는 다른 형제들의 모임과도 실제적으로 전혀 교제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어떤 특정 교파에 속해 있는 교파 교회들은 그 교파에 함께 소속된 이웃 교회들과 교제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몸의 생명을 함께 누리는 교회적 교제가 아니라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교제에 지나지 않는 세상적 교류에 불과하다.

어떤 곳에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서로 교제하지 않거나 교제할 수 없는 여러 무리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매우 잘못된 상황이다. 한 지역에 별 차이도 없는 신자들이 서로 차별화 된 여러 개의 다른 집단으로 모이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영적 의미도 찾을 수 없고 실용적이고 편의적인 의미도 찾을 수 없다. 부산같이 넓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단 하나의 부산교회로 모이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집회소를 가지고 여러 모임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교류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문제는 바로 한 건물에 교회가 여러 개 존재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광범위한 지역적 문제 때문에 모임을 따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들로 인해 한 작은 마을에도 교회가 여러 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생겨난 것은 몇몇 사람들의 악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분열과 분파 현상은 잘못된 교회 역사가 남긴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서로 하나임을 표방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서로 교제하는 여러 무리의 신자들의 모임이 존재해야 한다. 땅위의 모든 신자들이 다 한 자리에 한꺼번에 모일 수 없으므로 교제의 편의를 위해 형제들이 작은 여러 개의 모임으로 나누어져 따로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모임(교회)들은 서로 실질적 관계(교제)가 없는 다른 교회로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새부산교회, 부산진교회, 수정교회, 부산제일감리교회처럼) 분명한 한 교회로서 다만 편의상 따로 모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이 있거나 함께 모일 필요가 있으면 하나의 교회로서 모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설사 함께 모이고 교제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한 몸으로서 전혀 거리 없이 하나인 교회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분열하여 여러 개의 교파, 여러 개의 교단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신학적, 교리적 차이이며 그 다음이 정치적 입장의 차이이다.

교회들이 하나로 교제할 수 있으려면 진리에 대한 입장이 같아야 한다. 신학적 차이나 교리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실제로는 교제할 수 없다. 사탄은 역사상 교회들 안에 많은 거짓된 사상과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심어서 교회들이 그 사상의 차이로 인해 도저히 합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 정도가 심하게 되면 교회들은 서로를 거짓 교회나 이단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도저히 하나로 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교회들이라면 지금 부분적인 차이가 있다 해도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해소되고 말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오류가 있고 불완전한 것이다. 사상의 차이는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차이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께 순종하고 그 인도를 좇아가는 한, 사람의 불완전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완전히 생각을 같이 하고 완전히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각 사람들이 한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고 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할 때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연합을 소망하는 모든 교회들은, 사상을 통일하고 생각과 입장을 같이 가지게 될 것을 추구하거나 그렇게 될 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자신들의 믿음과 순종의 입장을 더 강화하고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각 교회들이 성령께 철저히 복종하고 완전히 그의 인도를 따르는 삶을 산다면 모두 저절로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교회는 교단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내 자신도 지금은 교단에 별로 관계하고 있지 않다. 나는 본래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이라는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에서 자랐고 목사가 되고자 할 때도 그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다녔고 거기서 가르치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의도적으로 교단에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 교단 즉 교파라고 하는 것이 성령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일 교단 또는 교파라는 것은 곧 성경이 분파(分派) 또는 당(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육신에 속한 것이다. 바울은 당파주의가 분명히 비성경적이며 육신에 속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나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갈5:19,20) 여기서 이단이라는 단어는 분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당파, 분파를 나누는 것은 육신의 일로서 주님으로부터 정죄를 받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분파적 연합 즉 교파적 연합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러한 연합은 신자의 참된 연합, 교회의 참된 연합을 파괴하며 방해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연합을 강조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이 말하는 연합은 협회의 연합이며 교파적 연합이다.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초교파 운동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연합 운동이 될 수 없다. 분파가 옳다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옳지 않다면 그것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분파가 옳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영적인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둘 다 좋다고 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을 택하면 그것은 곧 어느 다른 한 쪽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가입하는 것은 연합이 아니라 분열에 가담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연합에 대해 그리고 신자의 연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연합은 우리가 좋으라고 하는 것일뿐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당연히 그것을 위해 힘써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적인 감정과 자존심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형제이면 연합하고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형제에 대해서는 무조건 적극적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며 섬기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하찮은 사람이요 그래서 그에게 도움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는 신실한 형제라면 기꺼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순종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아무리 유력하고 여유와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 그래서 그에게 도움을 받아도 조금도 뒤탈이나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망과 부담을 따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섬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주는 돈이나 도움은 받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서도 안된다.

교회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의 생명을 땅에 나타내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연합은 적극적으로는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교제하는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이루어지고 소극적으로는 형제 아닌 자들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아닌 모든 일과 수단들을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돈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안될 일이 없음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많고 적음과 유능하고 무능함, 돈의 많고 적음을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누리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교회의 연합은 몸(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제 각기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각 지체(형제)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섬김으로써 그 몸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을 도모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교회가 사랑 안에서 연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놓으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가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함으로써 완전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며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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