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9.하나님이 주신 은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 감사의 내용을 '하나님이 고린도교회에 주신 은혜'로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1:4) 고린도교회에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신자가 되었고 또 구변과 지식이 풍족하였고 많은 은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게 만든 근원인 은혜로 인해 감사했고 그들이 그런 여러 가지 지식과 은사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든 근원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를 한 것이다.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지식과 은사들로 자랑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자랑하고 감사하고 있다. 은혜로 자랑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자랑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사람 자신으로 자랑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소유한 그 어떤 은사로 자랑하는 것도 거부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베풀어진 것이다. 둘째, 그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랑, 즉 구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은혜란 구원의 수단이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베풀어진 것이다. 그것은 은혜 없이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 자신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은혜는 베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은혜 외에는 아무 방법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은혜가 베풀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도 자랑할 수 없다. 오직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처음에도 현재에도 나중에도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소망도 없는 자임을 인식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따름이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자랑하며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체험하고 하나님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인지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며 그가 얼마나 진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진실하고 완전하게 대표하며 나타내고 있는지를 증거해야 한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말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찬양하고 자랑해야 한다. 은혜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세계로 사람을 이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 세계를 벗어나 하나님과 그 아들의 영광스런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자기에 대해서 말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자기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도 별로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것을 주신 분과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소유한 자신을 보지 않고 은혜를 주신 분 또는 은혜 자체의 영광스러움만 본다.

그러면 은혜가 이끌어 가는 최종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으로 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 사람이란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의 정상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로부터 나왔으며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참 사람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즉 은혜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그 은혜의 세계 곧 은혜주신 분의 세계 안으로 이끌어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은혜의 목적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찬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진정한 증거와 찬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하는 찬양도 필요하며 귀한 것이지만 더 귀한 것은 존재로 찬양하는 것이다.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은혜로운 사람이 되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어서 그 몸으로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게 될 때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감사와 찬양이 되며 최고의 자랑과 간증이 된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가 받은 은혜의 증거가 될만한 이런 저런 지식과 은사로 자랑할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영광스런 자로 변해가야 한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이야말로 은혜를 받은 증거이며 보혜사 즉 은혜를 주시는 분이신 성령을 받은 증거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1-4)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러한 세례의 목적, 곧 은혜의 목적은 우리를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하는데 있으며, 우리를 죽은 자리에서 살려서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려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6:5-7)

은혜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며 이 세례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생명의 자리로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목적은 단지 죄를 용서받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의 몸이 멸해지고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자가 되게 하는 것, 즉 그리스도처럼 '범죄하지 않고' 거룩한 사람으로 살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다.

고전1:8에서 바울은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도 은혜의 최종 목적이 나타나 있다. 은혜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주님의 심판 날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로 세우는 것이다. 즉 은혜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진실한 사람', '거룩하고 영광스런 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자기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릇 행하고 있다. 은혜를 받지 못한 가짜 신자들에게는 차라리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일이지만 교회에는 은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 열심으로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아마 지금 언급하려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에는 분명히 은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지식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며 꾀를 부려서 은혜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받는 것인데 이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니 문제는 끝났다. 잘못이 있으면 은혜를 구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으면 되니 이제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런데 우리 실력은 여전히 죄인의 실력밖에 안되니 어쩌겠는가? 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잘 안되면 (틀림없이 잘 안되겠지만) 되는대로 살자. 은혜를 받았으니 어떻게 살든지 크게 걱정 안해도 되니까' 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의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 살 먹은 아이가 머리 굴려서 어른을 이용하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은혜는 죄인을 '요령 피우는 죄인', '벌 안 받는 죄인'으로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새 사람'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극단적인 두 개의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지키라고 하셨으니까 그렇다고 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라고 했더라도 사람이 못 지키면 못 지키는 것이다. 지키고 싶지만 능력이 안되어서 못 지키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덮어놓고 당위성만 말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그의 공로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살라고 하시든지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누가 주었는가? 은혜는 바로 율법을 주신 그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란 율법과 배치되거나 모순될 수 없다. 그 둘은 조화를 이루며 합력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아들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요구(율법)란 짐과 멍에, 정죄와 저주밖에는 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본래 율법이나 기타의 형식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요구 그 자체는 다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참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은혜가 오면 안 가도 되는 길이 아니라 은혜가 오든 안 오든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에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요구들은 은혜가 오면 안 가도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은혜가 오면 더 힘써 가야 할 길이다.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은 진리의 길로 힘써 나아간다. 왜냐하면 은혜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은혜는 그리스도로 행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옛날 죄를 용서받는 것'도 경험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도 경험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2:12-16)

구원은 은혜의 목적이며 결과이다. 이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은혜의 구원에 대해 즉 이 구원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이에 대해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시든지 조용히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지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귀를 세우고 주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말씀 하시고 한 일을 벌이셔서 우리 안에서 어떤 역사가 벌어지면 태연한 척 '나는 은혜를 받았으니', 또는 '나는 은혜를 아는 자이니까'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주목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밖의 일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두려움이 없고 태평이며 안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벌벌 떨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담대한 자는 정신이 돌은 것이다. 자기 목숨을 쥐고 있는 자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고 큰 소리 치며 마음대로 하는 자는 허풍을 치는 것이지 담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에서 흠없고 순진한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려고 하심에 있어서 항의하거나 나는 힘이 없고 의지가 없으니 안 따라가겠다든지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힘이 없으면 그를 조용히 바라보며 그가 참으로 신실하셔서 모든 일을 그 뜻대로 다 이루실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복창하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기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