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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근거로 연합을 힘씀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아니한 가짜 신자라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지식과 은사가 부족하여 일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다 성령을 받았고 예수도 믿고 은사도 풍부하였다. 문제는 그들이 범사에 그 성령을 좇아 살지(행하지) 않고 육신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즉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영적이지 않고 육신적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성령을 따라 산다면 같은 영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들이 다 육신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뜻을 품고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억지로 같은 말을 하고 억지로 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도 다 연합하고 싶고 통일하고 싶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육신 속에 '일치하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안되는 것이다. 육신은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내 이익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 연합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혹 이익이 합치되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익이 합치되지 않는 한 결코 같은 뜻과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없는 것이 육신이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려면 오직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자기 생명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말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영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을 좇지 않는다면 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5,26)

고린도교교회 형제들은 다 생각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같은 여러 무리들이 있었으므로 그들끼리는 파당을 조직하였다. 그래서 나는 바울파, 나는 게바파, 나는 아볼로파, 나는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며 다른 형제들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 다투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로 서로 인정치 않고 나누어지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자기들의 경험과 지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 신앙의 색깔이 유일하게 옳고 바른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로 분열되게 만든 것이다. 사람은 다 각기 자기가 들어온 길만 안다. 그러므로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라는 길로 들어온 사람은 지식만 알고 지식만 인정하며, 경험이라는 길로 들어온 사람은 경험만 알며 그것만 인정한다. 그리고 지식도 여러 가지이므로 이런 지식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런 지식밖에 모르고 저런 지식으로 들어온 사람은 저런 지식밖에 모르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그들의 형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① 바울파
바울에게 속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따로 파당을 만든 것이 바울파이다. 이 파는 아마도 제일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처음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의 말이 가장 권위 있다고 여겼으므로 그의 말밖에 듣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보다, 바울을 통해서 받은 성령님보다 그것을 전달한 바울이라는 사람을 더 의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통해서 말을 듣고 도움을 받든 그 사람 자신을 궁극적으로 의지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수단이고 최종적 목표는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다.

② 아볼로파
고대 북아프리카의 유명한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아볼로는 학문이 깊은 사람이었으며(행18:24) 헬라 철학에 밝고 유대교에도 능한 사람이어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웅변적이고 철학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수사학자요 웅변가 변론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러므로 아볼로는 지식인이 많이 사는 고린도에서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큰 호응과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곧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자처하는 지성인들은 단순한 바울의 복음이나 무식한 베드로의 가르침 따위는 눈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③ 게바파
베드로에게 속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베드로가 바울이나 아볼로보다 더 권위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로 구성된 파이다. 고린도교회 안에 실제로 베드로를 따랐거나 그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이고 그가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지도자로서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였기 때문에 베드로야말로 예수님의 직계 제자도 아닌 바울이나 아볼로보다 훨씬 추종할만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고린도에 있는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라 생각하고 또 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야말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적 지도자라 생각하며 다른 파들을 우습게 여기며 자기들만이 정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④ 그리스도파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어느 사람 어느 사람에게 속한다면 결국 하나가 될 수 없으므로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들은 아무 당에도 속하지 않고 파당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자처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하며 그의 명령만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무소속 또는 무당파라는 또 하나의 조직(파당)을 만든 결과를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이 그리스도께 속한 줄 알고 바울파나 게바파, 아볼로파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배격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나라 교회에도 많은 당파가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소규모의 파당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에는 순복음 교회, 사도 신앙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의 성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 여기서 순복음 교회는 자기들만이 순수하고 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고, 사도 신앙의 교회는 자기들만이 초대 교회 사도들의 신앙에 가까운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라는 뜻이고, 그리스도의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만 추구하는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교회들은 그런 대로 괜찮은 교회들이다. 그들은 다른 교회보다는 자기들이 붙이고 있는 이름에서 나타내고 있는 어떤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교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결국 자기들이 한 분파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자기들이 말하는 그 좋은 것이 정말로 있느냐 (혹시 그런 것이 없는데도 그런 이름을 붙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냥 '나는 온 세상의 동일한 믿음과 소망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 형제들 가운데서 한 형제이다' 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나만 옳고 참되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밖으로 그런 생각을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실제로 잘못된 신앙과 잘못된 신앙인들이 많이 있으므로 그들을 안타깝게 여김과 동시에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바른 복음을 깨닫고 바른 길로 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자기를 특별하게 나타내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차별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자기에게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한 자기에게 있는 그 좋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온 것이지 결코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님을 망각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그 어떤 인물보다 바울을 존경하고 귀히 여긴다. 우리는 모세와 엘리야보다 바울을 더 큰 자로 여기며, 하나님께서 베드로나 신약의 그 어떤 사도보다 바울을 더 크게 사용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파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바울의 정신과 가르침에는 주목하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도 받고 싶은 열망은 간직할 것이지만 그 이상 바울을 크게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를 생명 없는 종교로, 죽은 교리와 도덕 윤리로 몰고 가며 또한 교파주의를 표방하며 세속적인 조직처럼 교회를 몰고 가는 많은 기성 교회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들의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령 공동체로, 그리고 순수한 복음과 생명의 말씀이 지배하는 교회로 키워나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운동파 교회도 아니며 소위 지방교회파나 형제파나 워치만니파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교회파, 무소속파, 초교회파도 아니다. 우리는 고린도교회의 어떤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파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요 모든 것이며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머리시지 한 분파의 머리가 아니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파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인들이고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자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냥 교회이다. 그 외의 다른 이름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지기를 원치도 않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다른 형제들, 곧 다른 교회들과는 다른 특성과 경험, 지식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근본적으로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교회 형제들과 따로 구별되는 파당을 이룰 수는 없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며 죽을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지혜와 지식, 능력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면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본질적인 면에서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격려하며 서로 세워야 한다.

내게 다른 형제들에게 없는 장점이 있으면 다른 형제들에게도 내게 없는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만 옳고 나만 정통인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지나친 다원주의나 상대주의는 배격한다. 오늘 시대에는 무엇이든 절대적인 것이 없고 다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 팽배해 있다.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진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본질적인 진리는 둘이나 셋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이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우주 가운데서 유일한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하신 생명과 인격 안에서 세우신 질서 곧 성경 말씀 안에서 계시된 진리뿐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며 우리 생명이시며 인생의 유일한 목적과 의미라는 사실과 그의 십자가의 도가 그가 이룬 구원 역사를 우리에게 성취시키고 적용시키는 유일한 수단임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며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함께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이루어지게 될 영원한 나라에 대해 동일한 소망을 가진 형제들 안에서도 은사의 차이가 있고 지식의 차이가 있으며 경험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형제들의 외형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며 삶의 내용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서로 배격하고 거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있어서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지도자들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우리도 바울을 존경하며 베드로를 존경한다.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들 앞에 엎드려서 경의를 표하고 그들에게 배우고 싶다. 그리고 그들 외에도 고대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사 속에서 일으키신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일한 경의를 표하며 역시 배우고 싶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우리가 제대로 배우고 가르침 받는다면 우리는 각기 자기가 배운 지식과 경험의 특성을 따라 형제들과 다투고 경쟁하며 분열하여 파당을 나누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흔히 루터교를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존 칼빈은 장로교를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존 웨슬리는 감리교를 세운 사람으로, 찰스 피니는 성결교와 오순절계통의 교회를 세운 사람으로, 워치만니는 지방교회와 형제단 계통의 교회을 세웠거나 크게 활성화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터나 칼빈, 웨슬리나 피니, 워치만니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배운 사람은 결코 다툼과 분열과 파당의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르침과 추구한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형제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뜻을 품음으로써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마귀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즉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필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고 다 같은 말과 같은 뜻을 품으며 함께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을 쳐부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 분열의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궁극적으로는 각 신자들이 육적이기 때문이다. 육적이라는 말은 육신이 그를 지배하는 상태에 있다는 말이며 이는 곧 자기가 살아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살아 있는 한 하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육적이면 첫째,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인간적(육신적) 조건과 자랑거리로 서로 비교하고 다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끄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듭나기 이전의 모든 인간적 차이를 무위로 돌린다. 우리는 다 한 세례를 받았다. 세례는 사람을 물 속에 집어넣어 장사지낸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잘난 것도 못난 것도 다 죽어 없어졌다.

육적인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거듭나고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은 것들을 가지고 자랑하며 서로 비교하며 다툰다는 것이다. 은혜와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비교하며 자랑하고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신자는 옛 생명(육신의 생명)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새 생명 곧 우리 안에 부어진 그리스도의 생명을 따라 사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고 특징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가진 좋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런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땅에 계실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가진 것 곧 그의 탁월한 인격과 삶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세상 죄인들을 멸시하거나 다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기와 궁극적으로 다툴 수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를 사랑하고자 하며 그를 불쌍히 여기며 그에게 생명을 주고자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기와 비교할 때 잘났고 더 크고 더 훌륭하면 그렇지 못한 아기와 꼭 자기 가진 것을 비교하며 그를 멸시하고 자기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해 그와 싸워야 해야 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인도 그렇지 않아야 한다.

우리 생명은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는 생명이다. 다른 형제들의 장점과 은사로 인해서 시기하고 다투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의 약점과 부족함으로 인해서도 멸시하고 다투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 곧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 따라야 한다. 그것은 가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힘써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1-3)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는 방법은 몸의 각 지체들이 각각 자기를 낮추고 다른 지체들을 인정하며 용납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을 깊이 인식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4-6)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7-14)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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