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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새 피조물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지난 주에 언급했듯이 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피조물"이라는 말씀은 두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이고 하나는 [새 피조물]이다.

우리는 지난 주까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고 생명으로 취해야 한다는 주제를 따라 우리가 더 이상 이런 저런 이전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새로 지음 받은 새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그것에 이어 또 하나의 포인트인 [그리스도 안에]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떻게 새 피조물인가? 우리 육신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새 피조물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 몸에 무슨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없다. 다만 우리 속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지식과 그 믿음이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냥 새 피조물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지니 우리 자신은 여전하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 피조물인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동안에는 새 피조물이지만 육신의 성질대로 그대로 살면 여전히 아담에 속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 피조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비실제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새 피조물 즉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복과 능력을 누리는 것은 엄연한 실제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과는 전혀 딴 판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즉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우리가 아담 안에 있으며 죄인이라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사실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며 그를 믿는 가운데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새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육신적으로는 여전히 아담의 자손으로서 본질상 죄인이며 세포 하나 하나마다 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담에게서 난 사람은 다 아담의 성품을 소유하고 있다. 육신의 성질은 육신과 함께 유전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저런 죄, 곧 사소하거나 큰 거짓말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사람과 다투며 화를 내고, 탐욕을 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죄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거나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서가 아니라 우리 생명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정신-을 거스려) 저절로 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외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안에도 그 성질이 그대로 있다. 우리가 이 몸 곧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아담의 타락한 성품과 생명도 함께 지닐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만물은 그 생명대로 사는 것이다. 사람은 타락한 죄인이다. 이것이 사람의 모든 행동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실제이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구원하셨다.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 즉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를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이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참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요 유일한 구원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나 천주교인들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그것은 곧 만물 가운데서 그리고 만사(萬事)를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직접 하나님을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거듭난 후에도 여전히 죄에 매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의 크신 능력으로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착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기대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며 또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소용없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는다. 가장 분명한 증거는 그것을 추구한 사람들 중에 누구도 그렇게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착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죄로 인해 괴로워하며 거기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외치는 말은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탄식한 이 말과 같은 것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8-24)

몸이 사망의 몸이요 죄의 몸인데 어떻게 거룩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새 몸을 주시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일을 순리대로 하신다. 되지 않을 일을 하시지 않는다. 사람과 죄가 하나여서 죽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죄를 벗어나 거룩하게 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펼치시더라도) 거룩한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과 선한 열망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아시기 때문에 즉 우리가 원천적으로 변화 불가능한 죄 덩어리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살려 둔 채로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방법은 오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로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안에 아담의 생명보다 더 강력한 이 아들의 생명이 들어와서 우리를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보내주셨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이 생명으로 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요 아담의 몸을 가지고서도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육신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저절로 죄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저절로 의롭게 된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생각이나 노력이 아니라 생명과 위치이다. 아담 안에 있는 동안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아담의 행실(범죄)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안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비록 과정을 겪기는 하지만)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산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 위치의 문제, 생명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만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생명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고 자꾸 스스로 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것이 잘 안되면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변화시켜 주셔서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 기도와 정성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 많이 기도하면 자신들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우리 안에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넣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변케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없이 사람을 가르치거나 설득하거나 감동을 주어서 변화시키는 따위의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표범이 그 반점을 변케 할 수 없고 구스인(흑인)이 그 검은 피부를 변케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그 죄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렘13:23)

사람들의 생각 가운데 가장 흔하고 가장 잘못된 생각은 죄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 생각이다.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자신의 죄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선한' 욕망으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치과에서 앓는 이를 뽑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의 뿌리'를 쏙 뽑아주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죄라는 것이 무슨 고구마나 이빨처럼 사람에게서 쑥 뽑힐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죄는 죄인에게서 나오는 필연적 산물이지 어쩌다보니 박히게 된 이물질 같은 것이 아니다. 연탄에게서 검댕을 뿌리뽑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연탄과 검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일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사람과 죄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죽음과 부활을 이미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제거해 달라고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과 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사람 자체가 죄 덩어리요 사람과 죄가 일체이기 때문에 사람은 죽기 전에는 결코 죄를 뗄 수 없다. 죄라는 것이 노력하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처리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이시는 것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헛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사람의 죄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 더 나아가서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인생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살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 날 이후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 곧 죄로부터의 자유, 세상으로부터 자유, 육신의 욕망과 정욕으로부터의 자유, 원치 않는 모든 아담의 죽은 행실과 허망한 행실로부터의 자유,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한 양식을 얻으며 사탄의 손아귀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이 모든 문제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만큼 크고 완전한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가? 근래에 와서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우리의 영혼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가난도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순복음교회와 같은 곳에서 그렇게 했다.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자유와 축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만 강조하다 보면 본질적인 구원이 놓쳐지게 될까봐 그것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여러분의 모든 인격적 문제, 삶의 문제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한 사도 요한의 축복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역사를 근거로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이 해 놓지 않은 일을 누릴 수는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각 사람들이 별도로 이런 축복을 받고 저런 축복을 받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셨으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셨다. 하나님은 이 이상의 일을 못하시며 이 이상의 은혜를 베푸실 수 없다. 인격적인 변화든지 생활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든지 다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오직 그 안에서' 누려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방법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확실히 보게 해 달라는 것과 그것을 분명히 믿음으로써 그것을 실제로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뿌리를 뽑아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구하거나 우리의 이런 저런 병을 고쳐주십시오 라고 직접 요구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것을 들어주실 수 없다. 죄는 죄인에게서 당연한 것이요 병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죄인을 그대로 둔 채 죄만 제거하거나 병만 치료하여 건강하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은 "내가 나의 영원한 아들(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놓았다"고 말씀하시는 것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은혜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그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사실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그와 함께 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며 우리가 그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육신이 타락하여 범죄하고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기 때문에 부득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즉 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하게 되면 그때는 꼭 그리스도 안에서 있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몸은 나중에 완전한 몸으로 변할 것이며 그때는 '성령의 도우심'과 그로 말미암는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영혼)을 거스려 행하는 육체가 사라지고 몸이 영에 속한 거룩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라는 식의 권면은 필요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할 것이며 더 견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산다면 모르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변화된 몸은 달리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담는 확실한 그릇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이며 그를 만물 위에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그리스도로 통일되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며 그리스도를 위하며 찬양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태초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해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하나님의 일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우리의 할 일은 다만 그를 바라보며 그를 믿는 것이다. 과거에나 오늘날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이렇게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었고 천주교인들이나 안식교나 모르몬교, 여호와의 증인들도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가 왕 노릇하며 자기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서 이것저것을 주시고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지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목적인 그리스도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돌아보시지 않으며 그들로 얼마든지 자기 뜻과 자기 방법을 따라 하나님을 헛되이 찾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하실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하신 이 일을 믿으면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기를 부인하기를 싫어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한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해도 여러분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는가? 기도하는 중에 어떤 특별한 빛을 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여러분의 죄가 이제 뿌리뽑혔다고 하는 특별한 음성을 듣기를 기대하는가? 아니면 여러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줄 무슨 느낌을 바라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병든 여러분의 몸을 치료해주시기를 원하는가? 여러분의 마음은 이런 것들을 좋게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깊이 의지하는 것 외에 이런 여러 가지 역사들을 별도로 기대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행하신 참된 역사를 불신하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시며 또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서 직접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다 아들로 말미암으며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쪽으로 진행되기를 원하신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1)

병이 들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새끼손가락으로 나를 한 번만 만져주시면 내가 회복될텐데 하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치료하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죄와 질병과 사망을 한꺼번에 다 가져간 것이며 근본적으로 치료하신 것이다. 죄는 죄인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질병과 사망은 죄의 삯이다. 그러므로 죄인에게서는 죄와 병과 사망이 제거될 수 없는 것이고 반대로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죄도 병도 사망도 이미 다 해결된 것이다.

여러분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내버려 놓으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시며 낮추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셨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직접적인 치료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일을 다 하셨기 때문에 더 다른 일을 하실 수 없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의 뜻과 그의 성품을 따라 살면 그의 생명도 누릴 것이다. 또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회복시키셨음을 믿고 주님을 찬양한다면 많은 경우에 여러분은 회복되어 건강을 찾을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시달리고 있는 각종 시험에서 떨쳐 일어서고 승리하기를 원할 것이다.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리스도의 승리만이 우리의 승리이다. 세상을 이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승리를 믿고 찬양하라. 모든 승리는 여러분에게 달린 것이 아니요 오늘 여러분의 간구와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놓으신 사역에 달린 것이다. 여러분의 눈이 열려서 모든 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다만 그것을 믿음으로써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되기 바란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누린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한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쓰러뜨린 것은 애굽 군대나 아말렉 군대, 더위나 추위, 갈증과 배고픔, 맹수와 질병이 아니었다. 그들을 쓰러뜨린 것은 불신앙이었다. 즉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지켜 보호하신 것은 그들이 살려고 노력했거나 그렇게 해 달라고 간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한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즉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곧 그리스도였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나라가 서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었고 그리스도가 만유의 왕으로 서기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결국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놓치고 망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심으로 하나님께 무엇이나 간구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며 하나님은 그런 모든 행위에 상대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러 여기 나왔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세계를 누리는가? 우리는 유대인들이나 세상의 종교인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를 믿으며 그가 이루신 역사와 승리를 믿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이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죄를 벗어나려고 해도 안된다고 탄식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죄의 몸이요 사망의 몸임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그는 어떻게 죄와 정죄와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노력으로? 기도로?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으로써 죄에서 벗어나며 정죄 받지 않는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서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를 정죄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여러분을 용서하고 싶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외에 그 어느 것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도 볼 필요가 없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도 믿을 필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시며 의롭다 하시는 것만 붙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과정을 겪어서 변화를 체험하면 새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신다. 자기를 쳐다보면 영원히 우리는 새 피조물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형제를 보아도 새 피조물이 아니고 자신을 쳐다보아도 새 피조물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면 그 안에서 우리가 죽은 것을 볼 수 있고 거기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새 피조물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이것만 붙잡아야 한다.

만일 여러분에게 너는 아직 옛 사람이다 라고 마귀가 유혹하면 여러분은 언제나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대응하라. 그러면 마귀는 놀라서 황급히 물러갈 것이다. 우리의 행위로 새 피조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로 새 피조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포함하여 함께 죽음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믿으면 우리는 그 안에 있는 것이며 그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 피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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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고후10:1-18) / 2001.11.11 이상봉 2010.05.02 3786
31 사람의 참된 일 (고후8:16-24, 9:1-15) / 2001.11.4 이상봉 2010.05.02 3559
30 형제를 섬기는 원칙 (고후8:9-15, 9:3-8) / 2001.10.28 이상봉 2010.05.02 3574
29 헌신 (고후8:1-15) / 2001.10.21 이상봉 2010.05.02 3903
28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3) (고후7:5-16) / 2001.10.14 이상봉 2010.05.02 4072
2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2) (고후7:10) / 2001.10.7 이상봉 2010.05.02 3422
2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1) (고후7:5-16) / 2001.9.30 이상봉 2010.05.02 3618
25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태도 (고후6:14-7:1) / 2001.9.23 이상봉 2010.05.02 3954
24 세상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음 (고후6:3-7:4) / 2001.9.16 이상봉 2010.05.02 3373
23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2) (고후6:1,2) / 2001.9.9 이상봉 2010.05.02 3385
2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1) (고후5:18-6:2) / 2001.9.2 이상봉 2010.05.02 3845
» 그리스도 안에 새 피조물 (고후5:17) / 2001.8.26 이상봉 2010.05.02 3557
20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2) (고후5:14-17) / 2001.8.19 이상봉 2010.05.02 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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