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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1)

(고린도후서 5:18-6:2)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사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케 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화목 사역을 사람들에게 증거함으로써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도자로 일했다. 그리스도가 화목의 근본적인 성취자요 집행자였다면 바울은 그러한 주님의 화목 사역을 널리 증거함으로써 주님의 화목 사역에 동참하고 협력한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죄와 육신적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이 막힌 것은 죄와 육신 때문이었으므로 화목 또한 죄와 육신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엡2장)

그런데 죄의 몸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죄와 육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고 권한 것이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깊이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고 그를 좋아하며 그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를 참으로 믿으며 범사에 실제로 그를 따르며 그의 생명을 누리는 것은 사실상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하나님과 싸우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내민 화목의 손길을 외면한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대다수는 사실 여전히 자기 고집대로 살면서 죄와 고통과 사망의 늪에서 헤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얻은 이 큰 구원을 가벼이 여기며 흘려보내는 것이다. 바울처럼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마음으로 그의 독자들에게 같은 말을 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2:1-3) 구원이라는 것이 흘러 떠내려갈 수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인지는 구원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린 것이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성경은 최후에 구원받은 사람에게만 구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현재 구원에 대해 관심이 있고 구원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모르기는 해도 분명히 구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미래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이 미래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구원을 등한히 여겨서 흘려 떠내려보내는 사람이 미래에 구원을 얻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바울이 경고한 것은 구원에 대해 아예 무관심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깊이 받아들여서 구원을 실제로 누리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 생활과 교회 생활을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 그것을 깊이, 완전히 추구하지 않고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구원을 놓치거나 은혜가 헛되이 흘러 가버리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 구원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으며 은혜를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첫째, 그들이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진리에 속한 참 형제(예를 들어 바울)와 거짓 형제(교회 안에 침투한 사탄의 거짓 무리들)를 구분할 줄 모르고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의 부도덕한 삶이다.

우리 안에서 구원이 참으로 누려지며 깊이 누려지며 은혜가 헛되이 흘려 보내지지 않고 생명의 결실을 맺도록 깊이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믿으면 안된다. 그것은 부정확하다. 믿을 것은 오직 열매뿐이다. 우리가 다 성령으로 사는지, 아니면 육신으로 사는지, 우리가 다 믿음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지 아니면 자기 생각과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사는지는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삶의 실제를 봄으로써만 판단할 수 있다.

은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 자신 또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이고 또 하나는 그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돕는 은혜이다.

먼저 그리스도 자신이 은혜라는 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4-17)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딤후2:1)

다음 말씀들 역시 주님이 은혜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눅24:3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요20:26)

바울은 그의 모든 편지에서 항상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편지를 맺었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평안이 있을지어다" 라고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은혜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주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받거나 은혜가 있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은혜이며 그가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곧 은혜이며 그가 사람에게 생명(성령)으로 부어진 것이 바로 은혜이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을 따름이다. 다른 은혜는 다 부수적인 것이며 이 은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 곧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을 받는 것이며 생명을 얻는 길이다. 온전히 구원을 누리려면 온전히 그리스도를 알고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한다. 풍성한 생명,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려면 그리스도를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팎에 이러한 일(믿음)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일부러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았거나 일부러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해 요인들에 걸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 우리 자아이다. 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육신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자아란 육신의 생명을 말한다. 육신은 은혜와 믿음을 거부하고 율법을 택하며 자기 행위와 공로와 능력 의지하기를 좋아한다.
둘째, 사탄이다. 사탄은 그의 교묘한 거짓말을 통해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그다지 신빙성 있는 것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는 우리가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육신의 느낌을 따라 행하도록 사주한다. 하늘에 있는 것, 영에 속한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붙잡을) 수 없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 육에 속한 능력만 믿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그리스도)를 참으로 은혜대로 받으려면 반드시 이 두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은혜가 바로 앞에서 말한 두 번째 은혜이다. 이것은 곧 우리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리도록 [돕는 은혜]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조적 은혜이다. 그러나 중요성은 그에 못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으면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 속에는 언제나 고기가 있지만 잡아서 실제로 요리를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없다.

그런데 이 은혜 역시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과 우리의 의가 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돕는 대제사장(중보자)이시기도 하다. 그는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매 순간 도우신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를 의지할 때 그는 즉각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추구함과 동시에 그의 돕는 은혜도 추구해야 한다. 바울이 그의 모든 편지를 시작하고 끝맺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한 것은 바로 이 돕는 은혜가 형제들에게 항상 임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맨 끝 말씀(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로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에 가면 시간을 내어서 바울이 그의 모든 서신들 안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 말했는지를 살펴보기를 바란다.

롬16:20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갈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엡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빌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골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1: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3: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전6:21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딤후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딛3: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몬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히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가룟 유다처럼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고 실패하고 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12:15) 교회 안에 있다는 것, 말씀이 선포되고 증거되는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곧 은혜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12:28)

은혜는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는 받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일이다. 예수를 믿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만 하면 된다면 진동치 못한 나라를 받았는데 또 무슨 은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은혜를 받자"는 말을 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귀하게 주신 것을 힘써 받을 필요가 있다. 힘써 받는다는 것, 헛되이 받지 않고 제대로 받는다는 것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받는 것이다.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조심하며 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은혜를 받는 자들 안에서 터무니없는 어리석고 헛된 행위들이 나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1-6)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거나 은혜에서 떨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은혜를 받는 자의 마음이 겸손하고 가난하지 않고 '교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기(자아)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자기에게 무언가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다지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자아를 크게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과 거기서 나오는 각종 허무한 생각과 욕심으로 인해 막힌다.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자, 마음이 가난하고 단순한 자, 세상의 다른 것으로 만족과 위로와 소망을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특별히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이 본래 그런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만 은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이미 그리스도라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셔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못 받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밖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는 자에게만 은혜는 참 은혜가 된다. 그리스도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다른 것들도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직 가난하지 않은 자이며 자기 속에 아직도 무언가 소망이 남아 있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거저주시는 은혜가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며 마음이 겸손한 자, 범사에 자기의 죄인됨과 작음을 인식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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