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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태도

(고린도후서 6:14-7:1)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주님의 신부이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실체가 세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요 주님의 신부로서 그와 연합하게 되는 것은 장차 주님이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그 날에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성전과 신부로서 건축되고 단장되는 것은 지금 세상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것을 알지 못하며 심지어는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성전과 신부로 단장되는 당사자들조차 때로 그것을 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전체적으로 볼 때 지금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하나님의 성전은 아니며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와 연합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단지 그렇게 되도록 예비되고 준비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죄와 모든 악과 그것의 근원인 사탄과 하나님께 대해 죽은 우리의 부패하고 무능한 몸을 제거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날이 오기 전에 즉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우리 인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정결하고 아름답게 단장하면서 그가 오시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한 마디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삶이다. 저쪽 동네에 사는 신랑이 결혼식을 하러 지금 산을 넘어 이리로 오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우리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영원한 삶에 비하면 지극히 짧다. 신랑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다.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다닐 수도 없고 장난을 치거나 오락을 할 수도 없다. 그것을 고통으로, 외로움으로 치자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다. 순간이다. 곧 신랑이 올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거기에는 고통도 외로움도 지루함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즐거움과 설레임과 연합의 기쁨이 있을 뿐이다. 현재는 분명히 떨어져 있고 혼자 있고 심심하지만 그래도 신랑과의 만남과 결혼을 앞두고 있으므로 그것이 기다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게 만들만한 요인은 되지 않는다. 아무도 반나절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에 고통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로 가거나 결혼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내 육신적 감정을 근거로 내 인생이 어떻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 안에서 전체적으로 내 인생이 어떠하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그의 자녀로, 그의 성전으로, 그의 사랑, 그의 신부로 삼으셨다. 우주에 그야말로 '만물(萬物)'이 있지만 수 없는 만물 가운데서 유독 사람을 그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의 기업으로 삼으신 것이다. 기업(基業)이란 삶의 터전이다. 기업이란 삶의 기쁨과 만족, 삶의 의미와 보람, 삶의 영광을 가져오는 토대이다. 즉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삶이 의미를 가지고 유지되도록 만드는 근본 터전이 바로 기업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에게 있어서 이러한 위치에 있도록 두신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복이다. 그가 우리를 이러한 자리로 부르셨기 때문에 즉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그를 우리의 기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그의 백성으로 부르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그의 왕고 주로 모실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 하고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오시며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데 우리는 마음을 다른 곳에 두며 다른 것을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기업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지극히 불행하고 어리석은 일이 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고 말했다. 우리는 정결한 처녀로 우리의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바쳐지기 위해 예비되고 단장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결해야 한다. 약혼자가 있는 사람, 결혼한 사람은 다른 남자나 여자를 만나거나 사귀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직 정한 신랑, 신부가 없는 사람만 그렇게 한다. 그런 사람은 미팅이나 사교장에도 나가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심심하고 외롭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고린도교회가 왜 범죄하고 왜 세상을 사랑하고 왜 우상 숭배나 거짓 무리들에게 빠졌는지 아는가? 손에 붙잡히는 것이 없으므로 불안하고 심심하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위기는 눈 앞에 현실로 다가오는데 하나님은 멀리 보이지 않으니 혼자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 곁에 계셨고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들의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러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신부인지를 알지 못했다. 어떤 때는 그것을 알다가도 일이 닥쳐오면 순간적으로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거의 전 생애동안 하나님을 망각하고 살았고 그로 인해 항상 외롭고 불안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을 안심시켜줄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과 세상의 쾌락과 우상을 찾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디로 부르셨으며 그 결과 여러분이 지금 어디에 와 있으며 무엇을 할 자인지를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죄와 사망으로 점철된 왜곡된 세상 삶을 떠나서 영원하고 완전한 삶, 창조주의 뜻대로 사는 정상적인 삶을 바라며 그것을 이루러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둘 수 없고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다른 것으로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없으므로 육신이 답답하게 여기고 외롭게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는 곧 우주 가운데서 가장 즐겁고 가장 만족스럽고 가장 완전한 어떤 일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영원한 안식과 기쁨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우리는 지금의 준비 기간을 마땅히 기쁨과 설렘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 받은 우리의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우리 인생이 무엇해야 하는 인생인지를 혹 우리 자신은 잘 모른다 할지라도 사탄은 알고 있다. 사탄은 지금 발에 불이 붙었다. 지난날 그의 머리가 그리스도에 의해 치료불가능의 상처를 입었던 것이 이제 때가 되어 그를 죽게 만드는 것을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곧 죽게 될 것을 알고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함께 지옥의 멸망으로 갈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일차적 공격 목표는 교회와 거기 속한 신자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사탄은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고 공격하여 고통과 죄악에 빠뜨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우리를 포함한 주님의 예비 신부들을 강하게 미혹하며 시험한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망하면 하나님이 가장 큰 손상을 입으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점에 대해 형제들에게 경고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1:2,3)

사탄은 자기 발에 불이 붙었으므로 몹시 바쁘게 되었다. 그래서 다급한 나머지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를 꼬셔서 바람을 피우도록 만드는 황당하고 무리한 유혹을 하고 있다. 이것은 턱도 없는 일 같지만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탄의 미혹에 더러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바울이 이 말은 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약속이란 무슨 약속인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결혼하자고 맺은 바로 그 결혼 약속이다. 신랑이 조금 전에 전화로 '내가 곧 갈 테니까 화장 잘하고 옷 잘입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그 신랑의 말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약속이다. 주님과 우리가 사랑하여 서로 맺은 약속은 바울이 바로 앞 절에서 인용한 말씀 안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6:16,18, 레26:11,12, 출19:5,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4-16)

신랑을 기다리는 자는 마땅히 다른 남자와 멍에를 같이 매지 않는다. 심지어 신랑의 친구나 신랑의 동생이나 형님과도 같이 한 방에 앉아 있지 않는다. 이것은 어려운 고통이나 외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없고 성령 안에서 그러한 약속의 보증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붙들어야 하고 사탄이 우리를 미혹할 때 어차피 갈 데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니 따라가 보자고 우리 마음을 허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짝 없는 처녀도, 홀로 된 과부도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하고 부르시는 음성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그는 우리에게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하고 아름다운 신혼여행의 계획까지 들려주시며 우리를 부르시고 있다.(아4:1,8)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면서 하신 이 약속 곧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약속은 마지막 날 반드시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끝까지 약속을 붙잡고 견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 약속은 실제로 성취될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계21:1-5상)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5하-8)

여기 나오는 말씀 중 첫 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장차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둘째 부분은 지금 곧 그 날이 이르기 전의 현재 시점에 있는 우리에게 '일이 이렇게 될 것이니 끝까지 주님을 잘 믿으라'고 권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요한이 본 계시에 의거하여 사탄의 유혹과 거짓말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몸을 거룩하게 단장하며 보존하기를 원한다.

변심과 더럽힘의 핵심은 '마음을 다른 데 주는 것'이다. 사탄의 미혹은 여기서 시작하여 여기서 끝난다. 문제는 마음이다. 주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주는 것, 주님을 믿지 않고 다른 것에 기대고 의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실패의 시작이요 끝이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고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데도 육신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가 오직 주님에게 마음을 두고 소망을 두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 인생이 잠깐 머무는 이 세상 속에서 모양이 번듯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진정으로 복되고 빛나게 되며 또 그로 인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데 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3-1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살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 남편과 아내가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은 관계이다. 자식이 부모를 자기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또한 그처럼 부모가 자식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으로 삼고 그 안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형제들의 마음 눈을 밝히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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