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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2)

(고린도후서 7:10)

근심이란 무엇인가? 근심이란 곧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근심과 같은 단어인 염려(念慮)는 한자로 '생각할 염(念)'자에 '생각할 려(慮)'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근심, 걱정, 염려란 마음을 쓰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심하라는 말은 마음을 쓰라는 말이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마음을 쓰지 말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람은 한시도 생각 없이 사는 법이 없고 무엇엔가 마음을 두지 않고 사는 법이 없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무엇엔가는 마음을 쓴다. 문제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에다 마음을 쓰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쓰고 근심하며 염려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일보다는 사람, 일보다는 생명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잠27:23) 우리가 마음을 써야 할 대상은 사람이지 일이 아니다. 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고 일 때문에 사람을 돌리는 행동을 한다. 처음에는 사람 때문에 일을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말이 전도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염려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수많은 일들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마음을 쓰고 염려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가족과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 가운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으며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의 성적과 공부로 인해 마음을 쓰는 부모를 생각해 보라. 공부는 아이의 미래 생활을 위해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생의 준비는 궁극적으로 육신적 삶만을 위하는 것이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영혼을 잘되게 하고 영혼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부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준비이므로 당위성을 가진다. 그리고 성적은 그러한 공부의 성과요 아이의 현재 삶의 열매요 결과이므로 부모가 거기에 마음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부는 어디까지나 일이지 사람 자신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이 자신보다는 덜 중요한 것이다. 일은 어디까지나 일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기까지 공부나 기타 아이가 수행해야 할 여러 '일'들에 매달린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와 성적으로 인한 부담 때문에 실의에 빠진다. 어떤 아이들은 공부를 못함으로써 공부만 잃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삶 전체를 잃어버린다. 즉 빗나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일을 사람보다 생명보다 더 중시하는 풍조가 이런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사람이 못되면 나가버리든지 죽어버리든지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가장 잘못된 근심이다.

모든 근심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생명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탄은 언제나 사람보다는 일, 사람보다는 사상, 사람보다는 속 생명보다는 껍데기의 모양을 더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더 염려하게 만든다. 여기에 속아서 헛된 근심과 염려에 빠져서는 안된다.

2.사람보다는 하나님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6,2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시118:8)

이 말씀들은 단지 어려울 때나 외로울 때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우리가 본질적으로 지향하고 마음을 써서 사랑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온통 사람,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육신)에게 있다.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 하나님을 찾아도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을 사모하고 생각하는 자가 없다.

3.세상보다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주가가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대한민국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인가 못 오를 것인가, 정치가 제대로 되어 참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리민복이 실현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혼란만 가중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세상은 이미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죄와 모순과 왜곡으로 인해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선고를 받았으며 정해진 때가 되면 폐기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세상(바벨론) 자체의 운명이나 거기 속한 영광과 일들이 아니라 단지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그들로 인해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 실현되고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펼쳐지게 되는데 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의의 진리가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마음을 써야 하며 근심하며 애통해야 한다.

4.육신의 삶, 육신 생활의 문제, 육신의 자유와 안식보다는 영혼의 자유와 안식

많은 염려와 근심과 애씀이 생활 문제로 말미암는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드리는 목적도 대부분 육신의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 곧 육신이 고통과 피곤함과 불안함에서 벗어나 안식과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6:25,27,28,31,34)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12:22,25,26,29)

눅12:29의 "구하지 말며" 라는 말은 영어성경에 "마음을 쓰지 말며"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일로 아예 기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의) 표시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담담하게 한 마디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중요한 것은 구하는 것이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더 중요한 믿음의 포인트이다. 우리가 참으로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더불어 우리 영혼의 자유와 안식과 평안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람만 있으면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어떤 생명이 있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느냐 사탄의 나라가 되느냐를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보전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 빠져서 실패하고 범죄하게 될까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정욕과 망상으로 인해 악한 자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도구가 될까 염려해야 한다. 깨어서 주님을 의지하고 마귀와 싸워야 한다. 이 일에 우리는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한다.

5.나보다는 그리스도

우리의 승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데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대 관심은 주님이고 우리의 최대 염려와 걱정 근심은 혹 다른 것을 바라보다가 주님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서로 그의 사랑하는 자를 잠시라도 놓칠까 전전긍긍했으며 실제로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즉각 찾아 나섰다.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근심의 대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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