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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3)

(고린도후서 7:5-16)

지난 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근심해야(마음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다섯 가지 기준을 들어서 생각해 보았다. 그 기준은 첫째, 일보다는 사람, 일보다는 생명에 마음을 쓰라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에게 마음을 쓰라는 것이고, 셋째는 세상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쓰라는 것이고, 넷째는 생활 문제보다는 영적 문제, 육신의 안락보다는 영혼의 자유와 안식에 마음을 쓰라는 것이고, 다섯째는 내 자신보다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두 세 가지 사실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되새겨보고 강조함으로써 우리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우리가 승리하는 길은 간단히 말해서 마음을 쓸 데 쓰고 쓰지 말아야 할 데 안 쓰는 것이다. 걱정할 것을 걱정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길이며 삶의 에너지를 보존하는 길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의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의도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탄은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경주자인 우리를 어떻게 하든 중간에 방해하여 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자이다. 달리는 사람은 앞만 보고 가야지 곁눈질을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눈을 주면 결국 걸음이 멈추어지고 갈 길을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근심이란 곧 눈길을 주는 것이며 관심을 가지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경주자라고 할 때 눈길을 주어야 할 대상, 관심과 근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분명하다. 그것은 경주자의 목표인 푯대요 골인점이다. 그리고 결코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하며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할 대상도 분명하다. 그것은 그 목표 외의 모든 것이다. 곁에 지나가는 사람이나 풍경이나 하늘의 구름이나 땅바닥에 떨어진 물건에도 눈길을 주어서는 안된다. 오직 앞만 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우리가 영적 경주자로서 또는 영적 나그네로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 분명해진다.

먼저 우리가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눈을 고정시켜야 하며 거기서 떨어질까 근심하고 염려해야 할 대상 곧 우리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다음으로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하고 근심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마땅히 해야 할 근심]

1.영혼을 위한 염려

(1) 사탄의 시험에 빠져 진리에서 떠나 범죄하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염려함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눅12:58)

우리는 죄를 두려워해야 하며 죄에 빠지는 것에 대해 마땅히 근심하고 염려해야 한다. 그 어떤 작은 죄 곧 사소하다고 생각하여 그냥 지나치고 있는 어떤 숨은 작은 죄라도 있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이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이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우리가 작은 죄라도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정죄와 심판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거룩하신 분의 아들이요 그의 생명과 영광을 표현하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1:1,4,5)

욥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즉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매일 죄를 두려워하고 속죄제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했고 진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길에서 떠나 범죄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고후7:10,11)

죄를 지었거나 죄의 길에 서 있으면 마땅히 돌이켜야(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말아야 하지만 만일 서 있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운 과정을 겪더라도 거기서 반드시 돌이켜야 한다.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행동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해야 했으며 그것을 위해 책망을 듣고 징계를 당하며 근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근심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으로 돌이키고 진리 안에 굳게 서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5:24-26)

호리(毫釐)란 가장 작은 계량 단위이다. 호리 또는 추호(秋毫)라는 말에 쓰이는 '호'(毫)자는 잔털을 의미한다. 가장 작은 죄라도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시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율법적 심판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어떤 죄도 희미하게 흐려지지 않는다. 진리를 떠나 행하는 모든 것이 죄요 성령을 떠나 행하고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우리는 이것을 거부해야 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히2:1)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히3: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4:1)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히12:15,16)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시38:17)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 가운데 있다는 사실과 우리 자신의 연약함 및 사탄의 훼방으로 말미암아 각종 위험 가운데 노출되어 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늘 생각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냥 구원(가나안에서 안식)을 누린 것이 아니라 바로의 핍박과 훼방, 홍해와 메마른 광야와 가나안 주변 민족들의 공격과 방해를 거쳐서 구원에 이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를 믿음으로써만 그 위기를 거쳐서 약속의 실제에 이를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다보면 어떤 때 왜 하나님은 우리로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비록 신령한 일이라고 하지만 왜 그것에 대해 염려하며 두려워하며 걱정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진리 안에서 온전히 행하고자 하여 여러 문제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염려하는 것은 겉으로 볼 때의 모양은 근심이고 걱정이고 두려워함이지만 실제 내용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태도의 다른 모양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그러므로 우리의 근심과 염려, 두려워함은 생명을 따라 온전히 행하려는 근신의 태도이지 세상 염려와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의 표현이요 성령의 인도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다.

(2) 육신대로 행하여 성령을 거스를까 두려워하고 염려함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2:3)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9:27)

특히 우리는 범사에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않고 단지 선을 행하는 것과 열심을 내는 것과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여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될까 염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사탄의 시험에 빠져 실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3) 행동을 함부로 하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치 않는 일이 있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함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엡6:5)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2:18)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3:6)

이는 권위에 대한 순복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는 권위를 두려워해야 하며 권위를 무시하다가 사탄의 정죄에 빠지게 되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권위에 순종하는 일은 사울이 실패하고 망한 일이요 사탄과 아담 이래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려서 실패한 일이다.


2.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염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8)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2:20,21)

교회를 위한 염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는 문제 곧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세상에 충만케 되어 가는지 어떤지에 대한 관심과 염려이다.


[하지 말아야 할 근심] -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하는 세상 근심과 세상 염려

간단히 말해서 하지 말아야 할 근심의 핵심은 세상 염려 곧 생활에 대한 염려이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2:23)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11:10)
세상 염려는 더 들어가 보면 곧 돈에 대한 염려로 제한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약4:1-9)

모든 세상 근심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데서 나오며 거기에 필요한 돈을 얻고자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10:22)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완전한 것으로서 사람으로 아무 것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또 물질적 보장(돈)을 추구하는 것이다.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13:22)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막4:18,19)

예수를 따라가고 진리 안에서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는 세상 염려 곧 생활에 대한 염려이다. 세상 근심과 예수를 믿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일은 공존할 수 없다. 예수를 믿든지 즉 주님의 돌보심과 공급을 신뢰함으로써 세상 염려는 접어놓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 안에서 살든지 아니면 내가 내 인생과 내 생활을 책임지고 거기에 온 신경과 힘을 쏟으며 살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세상 염려하면서 주님을 따르지는 못하며 주님을 따르면서 세상 염려를 할 수는 없다. 세상 염려를 하면 주님을 따르며 진리 안에 거하는 삶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고, 주님을 따르면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믿으면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근심하지 않는 것이며 세상 삶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세상 삶 대신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내용과 관심 대상과 소망이 됨으로써 근심과 염려와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19:21,22)

세상 것, 썩어질 것이 많아서 부자인 사람은 쓸데없는 근심거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영광과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은 세상 것을 소유하면 갈등과 근심이 생기게 된다. 이런 종류의 근심거리는 적을수록 좋고 아주 없는 것이 가장 좋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부유하고 강한 자, 잘난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 못난 자가 복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없는 것으로 근심하는 것은 거꾸로 된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기뻐할 일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없는 것으로, 믿음이 없어서 그의 구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근심해야 한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24:19)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고전7:26-34)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소유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운명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어디서 영광을 취하며 어디로 갈 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할 세상, 잠시 지나갈 육신의 영광과 안식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영원한 우리의 분깃과 소망인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써야 한다. 그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그를 다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안타까워하고 근심해야 한다.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8-42)

심지어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마음이 분주하고 근심할 때조차도 그 근심과 염려와 애씀과 분주함이 참으로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인지 주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내 생각과 내 계획, 내 체면과 자존심 때문인지를 살펴야 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만일 주님이 우리에게 세상 삶에서의 평안과 안식을 주지 않았다면, 주님이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염려하고 근심해야 한다. 우리 건강, 우리 생활, 우리의 안전과 미래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책임지고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 삶을 보장하시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눅12:6,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세상 근심은 사람의 생명을 축내고 죽게 만든다. 어떤 농부가 매일 '내일도 해가 떠서 햇빛이 비치게 되어야 할텐데' 하고 또 '때를 따라 비가 내려서 곡식을 적셔야 할텐데' 하면서 거기에 온 마음을 쏟고 온통 그것으로 염려하며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그는 결국 농사도 못 짓고 굶어 죽고 말 것이다. 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뜰 것이고 비는 염려하나 안하나 하나님이 내리면 내리는 것이고 안 내리면 안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될텐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안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 근심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땅히 마음을 쓰고 구하도록 한 것(하나님의 나라와 의 : 그리스도) 외의 것으로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우리가 진짜로 염려하고 근심해야 할 일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멍하니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염려와 근심을 쳐다보고 있다가 우리도 그 속에 빠져 그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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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세상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음 (고후6:3-7:4) / 2001.9.16 이상봉 2010.05.02 3373
23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2) (고후6:1,2) / 2001.9.9 이상봉 2010.05.02 3385
2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1) (고후5:18-6:2) / 2001.9.2 이상봉 2010.05.02 3845
21 그리스도 안에 새 피조물 (고후5:17) / 2001.8.26 이상봉 2010.05.02 3557
20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2) (고후5:14-17) / 2001.8.19 이상봉 2010.05.02 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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