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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고후8:1-15) / 2001.10.21

2010.05.02 18:19

이상봉 조회 수:3903

헌 신

(고린도후서 8:1-15)

이제까지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연약함과 실패와 혼란으로 인한 염려와 아울러 자기의 사도됨 및 자기 속에서 이루어진 은혜의 체험들에 대해 쭉 말을 해 왔는데 여기 고린도후서 8장에 이르러서는 고린도교회 형제들 안에서도 바로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그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전제로 '너희들도 나와 같이 주님을 체험하고 그 은혜를 맛보기를 바란다'는 권면을 하게 된다. 즉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과 다른 형제들을 향한 헌신을 요구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울은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나서서 그들을 도울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위해 그가 방문할 때까지 헌금을 모아놓았다가 자기를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바울은 헌신의 이유와 당위성, 내용,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바울이 왜 문제가 많고 혼란을 겪고 있는 고린도교회 곧 선을 행하기에는 약한 고린도교회에게 예수를 온전히 믿음으로써 그들의 당면한 문제나 처리하는데 전념하라고 권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돕는 일을 하라고 권면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유는 한 없이 간단하다. 즉 그들이 마땅히 그 일을 해야 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연약한 자들이며 생명이 미약한 자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이며 여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바울은 결국 고린도교회가 그들의 실패와 허물과 연약에도 부족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거룩한 교회임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들은 단지 잠시 사탄에게 속아 자기를 망각하고 있었을 뿐 여전히 주님을 나타낼 그의 몸인 것이다.

일의 어떠함은 생명의 어떠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한 생명에서는 선한 일이, 악한 생명에서는 악한 일이 나오며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자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마귀의 생명을 지닌 자 안에서는 마귀의 일이 나온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을 지닌 사람도 때로 실패하고 헤맬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미혹당하여 자기의 생명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생명이 근본적으로 사라지거나 바뀐 것은 아니며 그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승리의 자리에서뿐 아니라 실패의 자리에서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의 자리에서뿐 아니라 실패의 자리에서도 더욱 우리 안에 있는 큰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되새기며 이 생명을 시험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사탄은 우리가 결코 자기의 종이 아니라 여전히 주님의 종임을 알고 도망갈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성도 섬기는 일에 나서라고 권한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실패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 여전히 능히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거룩한 생명과 능력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원리에 따라 그들이 그동안 반복해 온 죄와 실패를 이기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이 성령의 요구에 부응하여 진리와 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동안 마귀의 시험과 육신의 정욕에 빠져 사탄의 도구가 되다시피 했다. 그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시험과 정욕을 이길 힘이 없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바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
승리의 길은 바로 성령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죄는 싫어한다고 안 짓게 되거나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정욕과 죄의 유혹은 사람이 '육신에 속해 있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죄와 율법은 '살아 있는 자' 곧 육신에 속한 자에게는 언제든지 위력적이다. 죄와 정욕은 오직 죽은 자에게만 상관하지 못하며 않는다. 그렇다면 죽어야 하는데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 죽음이란 곧 어떤 것에 대해 신경을 안 쓰고 생각하지 않으며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그 세계와 완전히 상관없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몸은 살아 있어도 마음이 죽어버리면 사탄은 우리를 죽은 자로 간주하고 건드리지 않는다. 식물인간, 뇌사 상태의 사람은 실제로는 죽은 자이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도 관심도 원함도 없으면 그는 적어도 사탄과 죄와 정욕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 있는가? 그 방법은 곧 성령의 문제에 대해서 사는 것이다. 즉 성령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마음을 쓰며 근심하고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이 성령 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성도 섬기는 일과 헌신의 삶을 종용받은 것은 그처럼 주님의 이기는 생명, 살리는 생명으로 형제들을 섬기고 주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이 바로 그들이 참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들의 수많은 부정적 문제들을 온전하게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마라톤을 계속 하다보니까 그동안 있던 수많은 병들이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져버렸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수많은 약을 먹으며 병을 치료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대처하지 않고 오직 달리기만 하다보니 체력이 강해지는 가운데서 저항력이 생겨서 모든 병을 저절로 다 이기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삶에서 적극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따르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문제만 바라보고 문제에만 매달리며 자기 능력과 의지로 그것들을 처리하려고 하는 태도는 지혜롭지 못하다. 모든 문제는 생명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생명 자체를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은 주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순종의 삶, 믿음에 근거하여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우리를 우리의 바라던 대로의 사람, 강건하고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을 자극하기 위해 본보기로 제시한 마게도냐 교회들이란 마케도니아 지역 곧 그리스 북쪽의 발칸반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아볼로니아, 동쪽으로는 빌립보에 이르는 지역으로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행17:10-15) 이 지역들은 B.C. 148년부터 로마의 영토가 되었던 곳이다. 그들은 환난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형편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금기시한 기독교를 믿었으므로 로마인들과 그들을 시기하는 유대인들과 기타 이웃으로부터 여러 가지 핍박과 훼방을 당했을 것이며 식민지 백성으로서 압제와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예루살렘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마게도냐 각 교회들은 그들이 처한 큰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풍성한 기쁨이 있었고 깊은 가난 속에서도 관대함(여유로움, 자유로움)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지닌 현저한 특징이며 생명으로 말미암은 하나의 역설이요 기적이다. 마게도냐 각 교회들의 형제들은 억지로 선을 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그 일을 했다. 그것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만나면 언제라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명의 특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환난과 핍박, 시련과 고난이 증가되면 그만큼 믿음과 주님의 위로, 생명의 능력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바울이 말한 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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