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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를 섬기는 원칙

(고린도후서 8:9-15, 9:3-8)

형제를 섬기는 일 곧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 그 뜻대로 헌신함에 있어서 몇 가지 기억해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크게 네 가지인데, 첫째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에 원함이 있을 때 기쁨으로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있는 대로 하라는 것이고, 셋째는 준비했다가 하라는 것이고, 넷째는 믿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1.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내 마음에 깨달음이 있고 원함이 있을 때 하라는 것이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마땅히 이 일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는 정도에 있어서도 원함을 넘어서 과도히 하지 말고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고후8:11)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손놓고 있는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열심을 내라고 독려하고 있다. 생각만 있고 실제로 일은 하지 않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어떻게 억지가 아니고 자발적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이미 그 일에 대한 성령의 인도가 있었고 그것을 그들이 순종하여 헌신에 대한 분명한 마음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마음에 없는 일, 마음에 원치 않는 일은 시키지 않으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7)

초대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교회에 바쳤다. 그러나 그들은 재산의 반을 바치면서 전 재산을 팔아서 바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것은 그들이 원함과 성령의 인도를 넘어서 억지로 일을 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원함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하지 않으면 바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헌금은 강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공명심 때문에 그들의 원함, 그들의 마음에 정한 것을 넘어서 그릇된 헌신을 하다가 징계를 받았다.

하나님의 일은 사실 급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다리시는데 선수다. 하나님은 결코 마음이 없는 자를 일이 급하다고 억지로 일하게 만들지는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의 일의 가치를 알고 그 일의 급함을 안다면 우리의 몸을 다그쳐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음이 없다면 일을 먼저 서두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 눈이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그 일을 향한 열망이 일어나도록 은혜를 구해야 한다.

2.있는 대로 함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1,12)

있는 대로 하라는 것은 힘(형편)대로 능력대로 하라는 것이다. 일은 어차피 각 사람의 능력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지 그 이상은 못한다. 그리고 그 이하도 안된다. 능력 이상이 되면 외식과 위선 억지가 되고, 이하가 되면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성전의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었다. 그 돈은 부자들의 껌값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 재산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나라를 기다리는 마음을 자기의 온 힘을 다해 최선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부자에게는 소를 제물로 바치게 했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비둘기까지 제물로 바치는 것을 허용하셨다. 그러나 만일 부자가 비둘기를 바치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을 것이다. 부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있는 대로 하라는 것은 결국 받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에 정한 바를 따라 하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그 속에 큰 은혜와 감동이 있어서 마음이 부유하다면 힘에 지나게 많이 헌신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축복하시며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하나님은 보통은 힘대로 조금만 하라고 권하신다. 그러나 부자는 부유하므로 많이 하는 것이 힘대로 하는 것이다.

3.미리 준비해서 함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3-6)

힘(형편)대로 한다는 것은 평소의 힘(형편)대로 한다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일이 닥쳤을 때 그 날의 형편대로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섬기는 일에는 평소의 꾸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형제들을 돕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꾸준히 수행해야 할 일상사이다. 그러므로 예산과 계획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은 평소에 규모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 내 쓸 것을 다 쓰면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내일 쓸 것까지 오늘 다 써버리면 내일에는 쓸 것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존속하는 한 가난한 자는 우리 가운데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신15:11)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돕기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이것은 저축의 원칙이고 소득의 원칙이다. 여기에 왕도는 없다. 평소에 부지런히 조금씩이라도 모아두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일을 할 수 없다. 건강도 마찬가지이고 생활도 마찬가지이고 주님을 위한 헌신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4.믿음으로 함

있는 대로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받고자 원하시는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의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믿음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무 능력도 힘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다 하신다. 진정한 헌신과 구제는 (힘도 없는) 내가 나서서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참으로 살리고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이 나서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를 믿고 그에게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즉 헌신은 결구구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반드시 이 믿음 위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으로 일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다시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첫째], 믿음으로 하라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즉 주님이 나에게 먼저 큰 은혜를 베풀어서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건지셨으므로 내가 이 정도의 은혜는 남에게 마땅히 베풀 수 있으며 또한 마땅히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바탕 위에서 남을 돕고 섬기라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거룩, 모든 선, 모든 헌신은 주님을 아는데서 나오며 또한 주님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의 복되고 여유로운 위치를 아는 데서 나온다. 우리 생명은 주님에게서 왔고 주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주님을 깊이 바라보며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도 주님처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부요하신 자로서 남을 위해 가난하게 되신 이를 아는 사람, 그래서 그로 인해 부유하게 된 사람은 실제로 부요한 삶 곧 남을 넉넉하게 도울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일은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데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1-8)

우리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권면이나 사랑이나 위로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를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것처럼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믿음으로 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넉넉히 지원하신다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내 것을 밖으로 내 보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내 삶이 어려워져서 곤란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책임지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우리는 힘대로 혹은 힘에 지나도록 헌신할 수 있다.

이 믿음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커지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하나님을 체험하는 가운데서 그의 살아계심과 공급하시며 보호하시는 능력을 알아가야 한다.
또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일을 시키실 뿐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8-10)

하나님은 먼저 믿음을 요구하신다. 사람을 사랑하며 살리고자 하는 헌신의 마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들을 돕고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들판에 모여 있던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여 배부르게 한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들어 있던 아이의 도시락이 아니라 주님의 살리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그 아이가 도시락을 내놓기까지는 무리들을 먹이시지 않았다. 무리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었지만 주님은 그 전에 먼저 제자들의 헌신과 도시락을 가진 아이의 헌신을 요구하셨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14:15-21)

[셋째], 믿음으로 하라는 것은 내가 하는 이 섬김과 그로 인한 감소가 결코 궁극적으로는 나의 희생과 감소가 아니라 나와 형제들 모두를 부요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촉진시켜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그 믿음의 바탕 위에서 하라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생명대로 행하려는 사람은 이런 저런 계산을 다 안해도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손해가 되는지 이익이 되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된다. 그저 주님의 생명을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약한지라 때로 사탄이 와서 너는 왜 일방적으로 수고하고 희생하느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고 우리를 시험할 때 진리를 확실하게 모르면 거기에 헷갈려서 그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주의 빛 가운데서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형제를 섬기는 일은 일방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한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양식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인 만나를 먹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식구의 하루 필요만큼만 거두지 많이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출16:16-18)

거둘 때 됫박을 가지고 계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식량대로 거둘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좀 많이 줍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항아리에 넣어보면 꼭 그 날치 양식만큼 되었고 어떤 사람은 좀 적게 주웠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와서 달아보니 꼭 그 날 먹을 만큼은 주워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셨는지에 대해 다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적어도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16:19-21)

이 말씀은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둔 사람에게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많이 거두어 온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그날치 양식 이상을 거두어왔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다음날까지 남아서 재물로 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해서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 곧 사람의 필요대로만 무엇을 공급하시지 그 이상으로 즉 그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까지 공급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힘 안들고 평안히 살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탐욕을 부리면 괜한 수고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 자녀들의 삶을 보장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느 한 자녀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그 모든 자녀들을 평균케 하시고자 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다 살기를 원하시며 다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큰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은 (제한된 환경과 자원 속에서는) 틀림없이 가난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용인하실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나는 손해보고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게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형제를 섬기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평균케 하는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길이며 나를 섬기는 일이다.

다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그들 중에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나님은 아무도 부자가 되지 못하도록 만나를 당일치기 양식으로 제한시키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자기 능력대로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평균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가?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일이란 언제나 힘있고 부지런한 사람은 아무리 적게 거두려고 해도 약하고 굼뜬 사람보다 많이 거두게 되고 반대로 힘없고 굼뜬 사람은 아무리 많이 거두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힘이 좋아서 부득이 자기 양식보다 많이 거두게 되는 자는 약하여 자기 양식조차 못 채우는 자에게 나누어주면 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병이 들었거나 기동이 불편하거나 어떤 이유로 만나를 주우러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많이 주워온 사람들이 자기 것을 나누어주면 되는 것이다.

만나는 신기한 음식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공급품이었다. 그것은 원래 이틀 이상 둘 수 없는 것이었지만 안식일에만은 예외였다.

"제육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두목이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출16:22-24)

따라서 만나는 자기 욕심을 위해서는 전혀 소용이 없는 물건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면 아무 문제없이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인 것이다. 만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쓰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런 성질을 띠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재물과 시간, 몸과 인생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일 때만 자유롭고 안전하게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을 섬기는 일을 특별한 희생으로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일로 알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어느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하는 것이다. 나는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를 섬기든지 그 나라를 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곧 나를 섬기는 것이다.

[넷째], 믿음으로 하라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내 필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이므로, 내가 그것을 합당하게 쓰지 않으면 결국 다 날아가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는 분명한 지식의 바탕 위해서 일이든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전6:2)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전2: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16-21)

어리석은 사람은 어차피 만나를 많이 거두어 집에 갖다 놓아봐야 다음날 다 날아갈 것인데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주저하고 주더라도 인색하게 군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우리 눈이 분명하게 열려서 무엇이 삶의 지혜인지 확실히 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지혜롭고 순리대로 사는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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