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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싸움 우리의 무기

(고린도후서 10:3-6 )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10:3-6)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은 육정을 따라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에서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강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우리는 복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싸움이 어떤 싸움인지, 어떤 무기로 무슨 싸움을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육체로 싸우지 않고 그의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 곧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과 싸우는 그의 싸움은 사람과 싸우는 육적 싸움이 아니요 사탄과 싸우는 영적 싸움이었다. 그러므로 그 싸움은 육신의 능력으로 싸워서는 안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야 하는 싸움이었다.

육신의 싸움은 사람을 상대하여 사람의 힘으로 싸워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싸움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싸워야 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 없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 믿음뿐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싸우는 이 싸움에서 칼자루를 쥔 쪽 곧 이기는 쪽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능력이 되셔서 원수들의 모든 거짓말과 교만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다 쳐부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바울이 말하는 이 싸움과 이 무기, 이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영적 싸움의 무기와 능력이 되는 이 '하나님의 강력'(强力)에 깊이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의지하고 사용해야 할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힘, 이 무기를 쓸 수 있는가? 하나님의 힘을 자기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을 공격하여 굴복시키려는 사람이 이 능력을 소유하며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바울이 말하는 이 독특한 삶의 원리와 능력에 깊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먼저 바울이 말한 바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라는 말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자.

'육체에 있다'는 것은 바울도 육체를 가졌고 육체를 사용해서 사는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도 일을 하려면 건강이 필요하고 지혜와 물질과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몸을 가진 하나의 작은 인생이지 영만 있고 몸은 없는 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를 가졌으되 바울은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육신을 사용하기는 하되 그것을 다만 일의 도구로만 사용할 뿐 그것의 힘을 의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힘으로 일하고 싸우는가? 육신 이상의 다른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특수한 삶의 원리이다. 바울이 육체를 가진 보통 사람이었지만 그것의 능력을 의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육체 이상의 어떤 생명과 능력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무릇 누구라도 '육체밖에 없는' 사람은 육체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육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 사람,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달리 의지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간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인간의 능력이 곧 힘의 한계이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다. 그는 자기 속에 모든 원수를 파하는 강력의 소유자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범사에 육신의 능력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행했고 원수들을 대적함에 있어서도 오직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역사하는대로 순종할 뿐 그 어떤 인간적 수단도 쓰지 않았다. 그의 일생은 큰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치열하고 복잡한 나날들이었지만 그가 한 유일한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바울이 일하고 싸운 이 행동 원리를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적 본성에 따라 사는 것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몸을 가진 하나의 연약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바울도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라고 말했다. 빚졌다는 것은 우리가 육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육신대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몸을 드려야 하는 새로운 인생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쓴 표현이다. 이 타락하고 약해진 몸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육신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8:12)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가진 우리가 몸의 요구에 부응하여 먹고 자고 쉬고 몸을 즐겁고 쾌적하게 해주는 것이 잘못된 일이나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몸의 욕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전적으로 지배하려고 든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몸은 몸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드려져야 하지만 몸은 그것을 거부하고 오직 몸 자체의 안락만을 추구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거스려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몸은 저항한다. 이것을 두고 우리 몸이 타락했고 하나님께 대해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몸에 새로운 생명을 공급하셨다. 우리 몸을 하나님의 소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에 새 힘과 능력을 공급하신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0,11)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능력이 됨으로써 우리는 능히 몸의 약함을 이기고 몸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릴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8:12)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얼마든지 이 타락한 몸, 죽은 몸을 가지고도 주님을 섬길 수 있다. 더 나아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싸움, 어떤 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몸 자체의 능력이 강화되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복음이다. 주님의 생명이 이 죽을 몸에 깃들어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큰 영광이요 구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육신 자체의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거나 의지할 필요가 없다. 육신의 생각, 육신의 언변, 육신의 의지, 육신의 지위를 의지할 필요가 없고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거나 재물과 권력의 도움을 받거나 부정한 수단을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강력을 사용하여 모든 일을 하면 된다.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자아를 부인하는 일밖에 없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거짓 무리들을 대적함에 있어서 그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무기는 선동과 거짓말과 외모였지만 바울은 그런 것으로 그들을 대항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대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고 자기의 지식이나 언변 혹은 자신이 교회들 내에서 구축한 사도로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고린도교회 안의 거짓 선생들은 말재간이나 여러 가지 간교한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기편으로 이끌었지만 바울은 오직 진리와 생명의 능력으로 그들을 대했고 오직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친히 일하시도록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기만 했다.


바울이 믿고 의지하는 이 강력(힘)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는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붙잡았는가? 그가 의지한 힘, 그가 믿은 '강력(强力)'의 실체는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능력의 원천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막연히 그리스도가 힘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우리의 힘과 능력이신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알아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힘이라는 것은 그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힘은 곧 {진리}의 힘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능히 이기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거짓을 단번에 파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당연히 모든 거짓을 이기고 무너뜨린다. 거짓은 진리가 오기 전까지 가공의 세계를 엮어낼 뿐 진리가 오면 설 자리를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것은 곧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에 속한 자는 곧 자유자이다. 자유자와 종, 둘 중에 누가 더 힘 있고 누가 더 능하겠는가? 당연히 자유자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들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자유자가 아니라 종이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에게 매여 있는 종이다. 그들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원치 않아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죄를 짓는 자는 다 죄의 종이다.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고 정욕에 매여 있는 자는 정욕의 종이고 권력에 매여 있는 자는 권력의 종이다. 무엇이든지 그것을 안하고는 못배기는 자는 그것에 매여 있는 종이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3,34)

종에게는 왜 힘이 없는가? 왜 자유자에게만 힘이 있고 여유가 있는가? 그것은 자유자는 어디든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자기 마음(뜻)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곧 일을 함에 있어서 방법을 알고 요령을 아는 자와 같다. 그러므로 그는 헛되이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남고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자 곧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는 좌충우돌하며 인생을 낭비하며 방황한다. 그리고 혹 길은 알더라도 자기 속에서 무엇인가 다른 길로 자기를 이끄는 자가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그 길로 가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인생 길에서 방황하게 된다. 하나님을 떠나 마귀에게 사로잡힌 인류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아는 자가 반드시 세상을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리를 알고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곧 힘이고 능력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힘이 있다. 이 힘으로 우리는 누구든지 능히 대적할 수 있으며 결국 그들을 무너뜨린다.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거짓 선생들의 싸움은 곧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었다. 그러므로 그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둘째, 그리스도가 힘인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므로 그와 함께 있는 자를 실제적으로 지켜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힘의 실체는 {하나님의 지켜 보호하시는 능력]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힘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다는 것은 단지 진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그 자녀의 일에 개입하고 간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우리 힘의 실체이다.

언제나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일생을 보면 그의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유일한 능력,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 한 가지였다. 그것으로 그는 자기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을 항상 이겼다.
어릴 때 다윗의 적(敵)은 사자나 곰이었다. 그것은 그가 어릴 때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작은 아이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하게 맹수들을 물리치고 가축들을 보호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는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대적하게 되었다. 그는 작은 소년이었고 상대는 최고의 장수였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삼상17:33-37)

그의 말과 같이 그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를 가지고 그 싸움에서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삼상17:43-50)

그 다음에 그는 아주 곤란한 상대와 대적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왕 사울이었다. 그는 그의 주(主)요 장인이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울은 군대를 비롯한 모든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부랑인들 뿐이었다는 것이다. 힘으로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죽일 수도 없었으므로 그의 싸움은 다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긴 세월동안 쫓겨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다윗이 그 자리를 이었다. 하나님을 믿은 결과였다.

나중에 그는 범죄의 결과로 그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에 끌어넣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그 상황에서 그는 도망가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압살롬은 죽고 다윗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위기 때마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니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승리는 언제나 그의 것이었고 아무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다윗뿐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있었던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많은 적대자들이 있었다. 그를 시기하는 형들, 그리고 애굽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는 그보다 선임인 많은 종들이 다 그의 적이요 경쟁자들이었다. 그리고 주인 보디발의 아내도 그를 해치는 대적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 그러나 어리고 힘없는 요셉은 그 모든 자들을 다 능히 이기고 그들 위에 올라갔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켜 보호하시는 능력은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그를 이기는 자로 만드셨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당하고 순종하기만 했지만 그가 제일 강한 자로 드러났다.

또 다니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많은 시기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지켜 보호하셨기 때문에 결국에 당하는 쪽은 언제나 그의 원수들이었다. 누구도 다니엘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가 한 일은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셋째, 그리스도가 힘인 것은 그가 우리 안에서 능력있는 생명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 힘의 실체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 '우리 밖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성령)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아들의 생명이 역사하는 것이 곧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이 생명은 우리 안에서 우리로 지혜와 지식과 통찰력과 용기와 사랑의 마음이 샘솟도록 역사한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다만 지혜롭고 담대한 자가 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사람의 죄를 사하며 질병을 고치며 각종 표적을 행할 수도 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처럼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능력이 됨으로써 우리는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힘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과 능력, 우리의 승리는 그 그리스도를 믿고 붙드는데서 나오며 그 안에 견고히 붙어 있는데서 나온다. 육신의 힘과 능력으로 다 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힘으로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유일한 승리의 길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온적히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전술이고 최고의 지혜이다.


다니엘의 체험은 참으로 기이하다. 그의 체험은 사람의 참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그림처럼 잘 보여준다.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 .....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단10:8-19)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상(異象, 계시)을 보게 되었을 때 다니엘은 육신의 힘이 다 빠져나가고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곧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께 대해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거나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니엘을 어루만지며 생명을 불어넣으시자 그에게는 새로운 힘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일에 반응하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있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육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사람이 타락하여 하나님께 대해 무능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고 육신대로 사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과 새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146:4-6)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31:1-3)

이 말씀들은 우리의 싸움이 무슨 싸움인지 말해 준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이다. 하나님을 믿고 붙잡느냐 아니면 사람을 믿고 육신의 힘을 믿고 붙잡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날마다 우리 속에 있는 교만과 불신과 싸워야 한다. 이는 곧 사탄과의 싸움이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사람과 재물과 권력을 더 의지하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한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전쟁 곧 영적 전쟁임을 알고 담대히 싸워서 사탄의 유혹과 거짓말을 물리쳐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면 승리하는 것이고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 패배하는 것이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0-13)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씨름은 사람과 하는 씨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생각과 그것을 사주하는 사탄과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육신적 무기를 써서 싸워서는 안된다. 겉으로 보면 '사람'이 원수 같지만 실은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는 사탄이 우리의 원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와의 싸움은 거짓과의 싸움이요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진리를 무기로 삼아 싸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직접 사람과 싸우면 그것은 바로 사탄에게 지는 것이다. 사람과 대항하더라도 그를 미워하거나 그에게 모든 것을 따지려 들어서는 안된다. 그는 단지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으로 싸우고 대항해야 할 대상은 사탄이 그의 종들을 통해 뱉어내고 있는 그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심지어 사람의 선한 상식과 선한 생각 속에 숨어 있는 마귀의 거짓말까지도 분별하여 대적해야 한다.


범사에 바울이 싸운 싸움을 싸우며 바울이 싸운 방식대로 싸우며 바울이 사용한 능력을 사용하여 범사에 바울처럼 승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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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사탄에게 속음 (고후11:14,15) / 2002.1.6 이상봉 2010.05.02 3610
38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사탄 (고후11:13-15) / 2001.12.23 이상봉 2010.05.02 6569
37 그리스도께로 중매함 (고후11:2) / 2001.12.16 이상봉 2010.05.02 4107
36 그리스도의 신부의 순결 (고후11:2,3) / 2001.12.9 이상봉 2010.05.02 3963
35 우리의 자랑 (고후10:12-18) / 2001.12. 2 이상봉 2010.05.02 4227
34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마음 (고후10:4-6) / 2001.11.25 이상봉 2010.05.02 4898
» 우리의 싸움 우리의 무기 (고후10:3-6) / 2001.11.18 이상봉 2010.05.02 4461
32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고후10:1-18) / 2001.11.11 이상봉 2010.05.02 3786
31 사람의 참된 일 (고후8:16-24, 9:1-15) / 2001.11.4 이상봉 2010.05.02 3559
30 형제를 섬기는 원칙 (고후8:9-15, 9:3-8) / 2001.10.28 이상봉 2010.05.02 3574
29 헌신 (고후8:1-15) / 2001.10.21 이상봉 2010.05.02 3903
28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3) (고후7:5-16) / 2001.10.14 이상봉 2010.05.02 4072
2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2) (고후7:10) / 2001.10.7 이상봉 2010.05.02 3422
2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1) (고후7:5-16) / 2001.9.30 이상봉 2010.05.02 3618
25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태도 (고후6:14-7:1) / 2001.9.23 이상봉 2010.05.02 3954
24 세상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음 (고후6:3-7:4) / 2001.9.16 이상봉 2010.05.02 3373
23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2) (고후6:1,2) / 2001.9.9 이상봉 2010.05.02 3385
2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1) (고후5:18-6:2) / 2001.9.2 이상봉 2010.05.02 3845
21 그리스도 안에 새 피조물 (고후5:17) / 2001.8.26 이상봉 2010.05.02 3557
20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2) (고후5:14-17) / 2001.8.19 이상봉 2010.05.02 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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