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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로 중매함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중매자로 소개하고 있다. 참으로 그의 일생은 사람들을 신랑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매자의 일생이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려 한 것은 그의 눈에 사람들의 인생이 짝 없는 반쪽 인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구원 곧 인생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반쪽 인생에게 참 반려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결혼하게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결과 비록 바울 자신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작은 인간에 불과했지만 그가 소개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었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만들었다. 중매쟁이나 들러리는 신랑이 아니지만 결혼으로 인해 기뻐하듯이 바울 역시 그리스도와 사람의 연합으로 인해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산 것이다. 바울이 만일 자기 목적을 따라서 자기 일을 했다면 자기 능력과 자기 존재만큼 영광을 누렸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고 사람과 주님 사이의 중매자가 되어 주님을 증거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는 마치 원님 덕에 나팔부는 포졸처럼 신랑(그리스도)의 영광을 제 것처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본래 영광이 없는 자지만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중매쟁이가 되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면 신랑의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바울만 중매자로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다 나름대로 중매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소개하며 어디로 누구에게로 인도하는 중매쟁이냐 하는 것이 문제지 다들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사람들을 어디론가 인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무슨 중매자인가? 매일 무엇을 소개하며 무엇을 강조하며 어디로 가라고 권하는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에는 사회가 사람에게 술을 권한다고 해서 어떤 소설가는 '술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라고 권하는 자인가? 혹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하는 자인가? 아니면 어느 집의 아무개 별미가 맛있으니 그것을 꼭 먹어보라고 권하는 자인가? 아니면 이러저러한 취미가 있으니 그것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권하는 자인가? 아니면 어느 물건이 어디로 가면 싸니 그것을 사라고 권하거나 어느 땅, 어느 주식이 좋으니 거기에 투자해 보라고 권하는 자인가?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젊은 사람들만 만나면 왜 시집을 가지 않느냐? 왜 장가를 가지 않느냐 하고 물음으로써 가정을 가지도록 권하는 자인가?

다 좋은 권면이고 다 좋은 중매이다. 사람은 마땅히 공부해야 하고 마땅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할만 하면 시집 장가도 가서 아들 딸 낳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젊을 때 흥청망청 돈을 쓰지 말고 모아놓았다가 집도 사고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틈틈이 좋은 음식도 맛보고 좋은 구경도 하고 여행도 해보고 즐거운 취미 생활도 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삶의 길을 제시하는 마음으로 혹은 삶의 여유와 자유를 터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소개하고 권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궁극적 중매인 노릇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생은 한 번 뿐이고 귀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일을 여러 번 할만한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섬기거나 돕는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최급선무, 최상의 일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사람을 참으로 사는 길로 데려가지 않고 대충 사는 길로 데려가는 것은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적인 문제를 주무르다 마는 식으로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도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근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함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이 길로 꼭 사람을 데려가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낚시의 재미나 오락의 재미나 돈 버는 재미나 연애의 재미를 소개하고 그것을 안겨주는 중매쟁이가 된다면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께 나아가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막고 도리어 사람을 사탄에게로 혹은 멸망의 길로 중매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여러분이 인생의 본질적인 필요는 도외시하고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육신적) 필요만 채워주는 중매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우리 인생과 상대방의 인생이 너무 아깝고 너무 짧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도움을 주었는가? 무엇을 소개하는 중매쟁이 노릇을 했는가? 만일 우리가 여러가지 좋은 일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인생을 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을 잠깐 행복하고 부수적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할 일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 곧 영원히 살고 영원히 만족하게 되는 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람들을 도왔다 하더라도 사람을 신랑이신 그리스도께로 안내하고 중매하는 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이다.

여러분은 이 한 해 동안 자녀들을 열심히 섬겼고 여러분이 만나는 이웃과 교회 형제들을 나름대로 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예컨대 아이들에게는 오직 공부하라는 말과 밥 잘 먹으로라는 말만 했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웃에 사는 사람을 만났을 때 조기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좋은 수학 학습지와 싼 할인 매장을 소개하고 권하는 일만 했다면 그것은 우리 삶이 헛되이 흘려보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보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그에게 붙어 있어야 했다. 우리의 자녀들도 밥이나 운동이나 공부나 학원보다 그리스도께로 먼저 접붙였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헛 섬긴 것이다.


공부의 중요성과 지식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사람을 '지식의 신'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돈의 중요성과 돈 버는 방법과 돈 쓰는 재미와 길에 대해 많이 강조하는 것은 곧 사람을 재물의 신(맘몬)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결혼과 취직과 자녀 양육과 규모 있는 생활,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사람을 본의 아니게 사탄의 세상 왕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사람을 세상에 뿌리박고 살도록 인도하는 세상의 사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천국의 사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삶이 있고 인생의 참 내용과 지혜와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만 제대로 전하면 다른 것은 일일이 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된다. 주님을 알 때 사람은 자연히 생명(시간,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따라서 그것을 아끼며 소중히 여긴다. 그리스도를 알 때 사람은 인생이 귀하고 아깝기 때문에 저절로 열심히 일하게 되며 허무한 데 자기를 바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진리에 바치게 된다. 그리고 자기 목숨만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게 된다.

주님만 알면 만사가 해결되는 까닭은 주님 안에 인생의 길이 있고 그 안에 인생의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 급한 것은 없다. 답답한 인생을 볼 때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우선 이것을 해결해주고 저것을 처리해주고자 하는 마음 또는 이것을 가르쳐주고 저것을 소개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해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의 해법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만 알게 되면 그는 저절로 성실한 사람이 되며 저절로 규모 있는 사람이 되며 저절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만 데려다 놓으면 우리는 그에게 술을 마셔보라고 권하거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권하지 않아도 그의 스트레스는 저절로 다 해소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속의 생명의 결핍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 그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만족케 하실 수 있는 신랑이신 그리스도께로 그를 인도해야 한다.


이제 실제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우리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할 때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즉 내가 먼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하나가 되고 다음에 사람들을 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내 생명(인격)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중매쟁이가 신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런 방법이 필요한가? 그것은 사람들이 직접 그리스도(하나님)를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격이신데 이 인격이신 하나님은 말과 글로는 충분히 표현되기 어렵고 오직 '인격'(사람) 안에서만 제대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하고자 하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결국 전도자가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는 아비(하나님)의 마음을 자녀(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러 오신 분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그는 어떻게 자녀들을 아버지께 인도하셨는가? 바로 자기 자신을 통해서였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5-10)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단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소개받으려고 했다. 즉 주님이 자기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인도자요 중매자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중매자는 중매자인데 단지 소개만 하고 인도만 하는 중매자가 아니라 자기 안에 아버지(신랑)를 포함하고 있는 특별한 중매자였다. 그는 중매자이자 아버지(신랑) 본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아들(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고 그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하나님은 당신을 형상화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형상화되면 그것은 곧 우상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안에서는 자신을 나타내고 형상화하는 것을 원하신다. 여기서 아들이란 영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도와 우리 사람을 포함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뿐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도 자신이 형상화되는 것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본래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 예수님뿐 아니라 바울도 사람들을 하나님(그리스도)께로 중매할 때 자기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제시하면서 "나를 받아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할 때 "어디로 가라고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나라"고 방법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을 자기 안으로 이끌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11:1,2)
이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교리나 율법을 가르쳐주며 그대로 하라고 하지 않고 다만 자기(자기의 정신과 삶의 본, 삶의 실제)를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중매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바울이 전한 것은 객관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울의 생각(정신)과 인격과 삶 속에 담긴 그리스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울 자신이 증거될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가 왜곡되게 증거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방법이 아니고는 그리스도가 실질적으로 전달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말과 글로 그리스도가 온전히 증거될 수 있다면 바울은 결코 자신을 그리스도의 매개체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부득이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기 인격과 생명을 그리스도의 전달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6-18)
이 말씀은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구원을 전할 때 이론(교리)과 사상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그것을 전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세상에 대해 죽고 죄에 대해 죽고 자아에 대해 죽은 자신을 보여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여서 영광스러운 인격으로 변한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단지 '교훈'을 전한 것이 아니라 '교훈의 본'을 전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은 이해와 동의가 아니라 순종과 추종이었다. 교훈은 이해만 하면 되지만 본은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만 가지고는 전혀 그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그가 바울이 보인 본을 따라 그의 정신과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올 때만 인정했다. 참으로 로마교회 신자들은 바울로부터 교훈만 받은 것이 아니라 교훈의 본을 제공받았으며 거기에 마음으로 순종하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하도록 요구받은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그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의 십자가의 역사가 무슨 의미를 지녔으며 무슨 역사를 이루었는지, 그의 부활 생명이 무엇이며 어떤 역사를 이루는지에 대해 일일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는 자신의 생명과 인격, 삶의 풍요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직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매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매자가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강도 높은 생명의 연단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지식과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적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으려면 십자가를 철저히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아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그런 식으로 증거할 수 없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떠날 때 한 말은 그가 어떻게 그런 그리스도의 참 중매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까닭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행20:26-35)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그는 저절로 그리스도의 사자가 된 것이 아니라 많은 고난과 수고를 통해 그런 권세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순도 높은 그리스도의 대리자 곧 속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성분으로 채워진 사람이 되기 위해 범사에 철저히 자기를 부인했고 또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렸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4-14)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살전2:5-10)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11:18-33)

이 말씀들은 다 그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수고를 했는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그리스도의 사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많은 수고를 했다.

먼저 그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체험했고 십자가를 온전히 거쳤다. 그는 주님과 깊이 교통한 나머지 주님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자가 아니라 그 속의 깊은 사정까지 통찰하는 자가 되었다. 다음으로 그는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와 그 진리를 조금도 왜곡됨 없이 (사탄의 훼방을 받지 않고) 증거할 수 있기 위해 모든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는 자가 되려면 우리에게도 철저한 십자가의 체험이 필요하며 몸을 주님께 완전히 드려서 그의 필요에 따라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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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2) (고후6:1,2) / 2001.9.9 이상봉 2010.05.02 3385
2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음 (1) (고후5:18-6:2) / 2001.9.2 이상봉 2010.05.02 3845
21 그리스도 안에 새 피조물 (고후5:17) / 2001.8.26 이상봉 2010.05.02 3557
20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2) (고후5:14-17) / 2001.8.19 이상봉 2010.05.02 3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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