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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체험 (고린도후서 1:1-11)

2010.05.02 18:01

이상봉 조회 수:3976

십자가의 체험

(고린도후서 1:1-11)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십자가 에 대해 깊이 말하고 있다. 지난 주에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깊이 누리고 그의 인격과 그의 사역에 제대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십자가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십자가의 역사를 체험한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고후1:8,9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했고 또 4:10에서 다시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라고 말했다. 이것은 모두 그가 어떻게 십자가의 체험을 거쳤는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예수의 죽음, 예수의 고난을 자기 몸에 항상 짊어지고 다닌다고 했다. 그는 그것이 예수의 생명, 예수의 삶, 예수의 영원한 생명이 자기 몸에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는 주님이 지신 것이요 우리가 져야 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고난을 겪더라도 우리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위해 대속의 희생을 하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의 죽음과 고난을 우리 몸에 짊어져야 하는가? 우리가 고난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의 역사에 참여하고 그의 죽음을 우리 몸 안에서 체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십자가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내거나 거기에 무엇을 보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의 역사를 우리가 분명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믿고 의지하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확실하게 받아들여서 누리기 위해 우리도 우리 몸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다.

꼭 우리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만 주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되는가? 그렇다. 고난이 없으면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하는가? 누구든지 마음과 생각으로야 육체에 고난이 있든 없든 범사에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육체의 힘이 남아 있고 자기 지혜와 능력과 손에 쥘 수 있는 세상 영광이 있으면 그것으로 자기를 나타내며 자기를 의지하려고 하지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4:1,2)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 즉 십자가를 지셨으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가 아니라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것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에게 임하는 육체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이 우리의 죽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깊이 누릴 수 있는 기회이며 또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거듭난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기회로 알고 (육체의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고난이 올 때 (주님이 자기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달게 지신 것처럼) 피하지 말고 달게 받으라는 것이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거친 자는 죄를 그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 그러나 이 체험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깊이 붙잡고 누리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범사에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벧전4:11)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려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의 능력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항상 자기의 어떠함 곧 무능함과 악함과 죄인됨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우리의 약함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십자가의 체험이 없다면 사탄의 속임수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자인 것처럼, 자기가 무엇이나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며, 자신이 아직 여전히 살아 있는 자며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아닌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고난)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은사도 중요하지만 단지 은사만으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낼 수 없고 오직 고난과 연단을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과 생명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은사를 사역으로 연결시킨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에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말을 잘 하거나 지혜와 지식과 각종 능력과 인내와 강한 의지와 선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어쩐 일인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다루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연단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여전히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육신적 사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은사가 아니라 연단을 거침으로써 형제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사역적(일할 수 있는) 은사'이다. 이런 은사를 소유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1:9-11)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기도의 내용은 단지 바울이 전도자로서 훌륭히 사역을 감당하게 해 달라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더 굳게 붙잡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체험하며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구체적인 것이다.

십자가의 체험은 또한 우리로 고난 받는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며 위로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격려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1:4,5) 하나님은 우리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의 모든 고난 중에서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신다.

이것은 사역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살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와 위로와 부활 생명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고난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얼마나 체험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바울은 형제들의 위로와 구원을 위해 환난을 받았으며 그것도 보통 고생이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고생을 했다.(1:6,8)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압박을 받았을 때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는가? 이겨야겠다는 생각도 아니고 사역도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죽음을 생각했다. 그들의 눈 앞에는 오직 죽음이 어른거렸다. 그들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올 때 처음에는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기 힘으로 그것을 이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려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기까지 반드시 우리 힘에 지나도록 계속 우리를 압박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압박에 대항하여 우리의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압박의 강도가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졌을 때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생각했다. 고난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죽음의 체험은 다시 우리를 부활의 체험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역사의 목적은 부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우리 자신을 끝내는 것이다. 십자가의 체험은 항상 부활의 주이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며 그러한 체험이 비로소 우리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역을 가능케 한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자기의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괴롭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세계를 누릴 수 없으며 구원과 승리는 언제나 생각 속에서만 맴돌 뿐 우리에게 전혀 실제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배울 때까지 고난은 계속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를 범사에 압박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자신에 속한 모든 것을 최후의 하나까지 다 포기하고 내려놓도록 만드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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