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게 행함

(고린도후서 1:12-16)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는 것과 또한 우리 자신의 지혜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을 따라 일했다고 했다. 어떤 사본에는 거룩함이 소박함이라는 단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바울이 일할 때 진리를 따라 단순하고 순박하게 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전서 2:1-5에서 그가 이미 천명한 바 있다. 그때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만 전했고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만 일했다고 했다. 과연 그는 모든 일을 자기 뜻과 능력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자신의 뜻과 일하심에 따라서만 수행했다. 그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만 일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고 담대할 수 있었다. 그가 자기를 반대하는 무리들이나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의 사역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에는 분명히 그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교회는 분명히 바울이 전한 복음의 산물이요 하나님이 바울 안에서 친히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끝까지 바울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며 사탄이 그 교회 안에서 아무리 역사해도 결코 복음의 능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었다. 누가 한 일인데 감히 뒤집어엎을 수 있는가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혼란에 대해 권위로 책망하며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일할 때 자기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함께 펼쳤거나 자기 힘과 지혜를 조금이라도 사용했다면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자신이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음으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사람들의 평가와 비난에 대해 신경을 쓰고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육체의 지혜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육체의 지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육체 자신을 위한다. 육체의 지혜는 육체를 위하고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자기 힘과 지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을 하려고 애썼다. 은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그 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친히 모든 일을 해 나가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은혜로 행하는 것이다. 은혜로 행함에 있어서 사람이 할 일은 다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이 무엇을 지시하시면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며 그 결과를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믿음으로 사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의뢰하며 그 분을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육체에게 있어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매우 힘들 것이다. 우리 안에서 영이 득세하여 온 몸을 하나님의 요구대로 이끌 때 우리 육체와 혼(자아, 정신)은 강력히 반발할 것이며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몸은 이미 죄로 인해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대로, 몸의 요구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8:10-13) 우리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매사에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함(단순함)과 진실함으로 행했다고 말했지만 2:15-17에서도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다. 그는 참으로 복잡한 사람이 아니고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 안에 오직 하나님(그리스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하나님밖에 없고 그리스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열면 오직 그리스도만 말할 수 있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한 분이시다. 그 안에는 어떤 이질적인 것이나 혼란스러운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한결같으시다. 그는 요동하는 법이 없고 항상 평안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 안에 있으면 우리는 단순하고 순전한 사람이 되며 항상 평안할 수 있다. 그러나 육신 안에 있으면 우리는 저절로 복잡한 사람이 된다. 육신에게는 정한 목표와 길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동물적이고 정욕적인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혼(魂)적인 사람 곧 생각이 많고 정신적인 욕구가 강한 사람도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다 복잡하다. 그 동기와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추구하고 다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순함과 진실함이란 없으며 마음의 평안도 삶의 확신도 없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이러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벗어나 바울의 자리로 들어가려면 십자가를 거쳐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육신의 온갖 생각과 야망과 목표를 버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십자가의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끝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단순함과 진실함으로 살 수 있을 것이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한 것과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고 우리가 또한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쓴 편지를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다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바울의 편지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이 어떤 책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먼저 형제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보낸다고 했다. 이처럼 성경은 보통의 정상적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진리와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성경은 한편으로 보면 성령님의 감동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책이지만 다른 편에서 볼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읽도록 준 것이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지만 그 형식은 사람의 뜻과 사람의 마음에 맞게(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그것을 읽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진리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성경 안에는 금방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진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진리들이다. 우리는 성경의 명료성을 믿고 당장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더라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인내로 말씀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핵심적인 진리들은 반드시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것들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내용들이며 또한 반드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되는 생명의 진리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어떤 내용을 형제들이 반드시 이해하고 확신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미 말한 사실 곧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온전한 교회로 굳게 설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현재 있는 시험과 환난에 굴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주님에 대한 소망과 승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한 것이다.

성경을 확실하게 공부하여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이유 중 하나는 마귀의 시험 때문이다. 마귀는 교회에 두 가지 시험을 준다. 하나는 정욕과 탐심으로 인해 형제들을 육신적 삶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연약함과 실패로 인해 형제들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그로 인해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시험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길은 말씀을 부단히 가까이하고 묵상함으로써 진리 위에 항상 굳게 서 있는 것이며, 또한 범사에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일깨우시는 역사와 격려를 통하여 우리로 육신의 사욕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우리 안에서 항상 일깨우신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며 영광임을 알게 하시며 그 소망을 잃지 않도록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바깥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며 주의 영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에만 주목해야 한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이러한 확신이 있으므로 처음에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두 배의 은혜(기쁨)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서 유대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확신을 가졌다는 것인가? 바로 주님이 고린도교회에 역사하셨으며 따라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축되고 있으며 그것이 마침내 영광스러운 교회로,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굳게 서게 될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고린도에 가보고 싶었고 실제로 그리 갈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마게도니아로 갈 때 고린도에 들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름으로써 그들에게 두 번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바울이 그리로 가고자 한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첫째는 형제들이 보고 싶었고 그들을 만나서 가르치며 교제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에게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거두고, 복음 전도에 필요한 후원을 얻는 일이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기쁨을 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방문하면 한 번 은혜를 끼치는 것이고, 두 번 방문하면 두 번 은혜를 끼치고 두 배의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이 성령(생명) 안에서의 교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육신적인 만남은 만나면 잠시 좋지만 곧 피곤하고 마음이 혼잡스럽게 되며 생명이 축나게 된다. 그러나 영적인 만남은 육신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재미가 없지만 (거기에는 책망과 자아의 죽음과 죄를 자백함이 있으므로) 생명에 유익을 주며 영을 북돋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기대하면서 형제들과 자주 만나기를 힘써야 한다. 그냥 육신대로 만나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며 그 생명을 공급하시는 것을 바라며 주님께 마음을 열고 형제들을 (생명의 통로로 바라보고) 만나야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며 집회는 하나님이 일군 것이지 사람이 세우고 모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모여서 교제할 때 마음을 먼저 주님께로 향해 열고 다음에 형제들을 향해 마음을 엶으로써 은혜와 기쁨을 갈구하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1) (고후5:11-21) / 2001.8.12 이상봉 2010.05.02 4315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 (3) (고후5:1-10) / 2001.7.29 이상봉 2010.05.02 3792
17 우리의 돌아보는 것 (2) (고후4:16-5:10) / 2001.7.22 이상봉 2010.05.02 4021
16 우리의 돌아보는 것 (1) (고후4:10-18) / 2001.7.15 이상봉 2010.05.02 4728
15 질그릇에 보배를 담음 (2) (고린도후서 4:7-16) 이상봉 2010.05.02 4119
14 질그릇에 보배를 담음 (1) (고린도후서 4:1-16) 이상봉 2010.05.02 3548
13 수건을 벗고 거울처럼 주님을 반사함 (고린도후서 3:18-4:6) 이상봉 2010.05.02 3979
12 수건이 벗어진 자 (고린도후서 3:12-18) 이상봉 2010.05.02 5045
11 살리는 영의 직분 (고린도후서 3:4-11) 이상봉 2010.05.02 5133
10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2:15-3:3) 이상봉 2010.05.02 3805
9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4-3:3) 이상봉 2010.05.02 3809
8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 (고린도후서 2:12-17) 이상봉 2010.05.02 4028
7 사탄에게 속지 않음 (고린도후서 2:1-11) 이상봉 2010.05.02 4188
6 영 안에 있는 사람 (고린도후서 1:21) 이상봉 2010.05.02 3909
5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예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 (고후1:17-22) 이상봉 2010.05.02 6856
4 참된 도움 (고린도후서 1:15-24) 이상봉 2010.05.02 3944
»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게 행함 (고린도후서 1:12-16) 이상봉 2010.05.02 4024
2 십자가의 체험 (고린도후서 1:1-11) 이상봉 2010.05.02 3976
1 고린도후서 서론 이상봉 2010.05.02 3884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