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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

(고린도후서 2:12-17)

2:12에서 바울은 그가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려 했던 일정을 변경한 것이 결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여행 일정에 대해 말하던 1장 이야기에 이어 다시 그의 여행 일정에 대해 말한다. 그는 여기서 자기 일행이 복음 증거를 위해 드로아로 갔는데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 소식을 들으려고 했던 계획이 차질을 빚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빨리 디도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갔다는 사실을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헐뜯는 자들이 자신에 대해 무책임한 자라고 비난을 퍼붓는 그 순간에도 고린도교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소식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여 서게 된 고린도교회의 형제들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마귀의 모든 시험과 훼방을 이기고 견고한 주의 집으로 건축되어가는지 어떤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울이 인간적으로 정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교회가 바울이 일군 바울 개인의 작품이나 개인 영광이어서도 아니고 오직 그 교회가 하나님이 일구신 하나님의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울은 하나님께서 드로아에서 전도의 문을 여셨다는 것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디도의 고린도 방문 결과에 대해 듣기 전에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역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소식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였을까? 그것은 고린도교회의 위기가 어떤 한 교회의 특수 상황이 아니라 그가 복음을 전하고 세운 모든 교회에서 항상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의 사역은 전체적으로 헛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께서 모든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실 것을 확신하면서도 그의 눈과 귀로 직접 마귀가 패하고 그리스도가 승리하시는 모습을 보고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2:12,13에서 그의 여행 과정을 말하던 중 갑자기 그 이야기를 중단하고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서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 새로운 이야기는 7:5에 가서 바울 일행이 마게도냐에 가서 디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무려 넉 장에 걸쳐 계속된다. 성경학자들은 2:14부터 7:4까지 계속 되는 이 부분을 [이탈 본문] 또는 [삽입 본문]이라고 일컫는다.

왜 바울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갑자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말을 길게 했을까? 그것은 그가 고린도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그의 마음(영)이 편치 않았고 근심이 있었다는 말을 한 것과 관련된 것이다.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혹시 바울이 육신적인 근심과 좌절에 빠진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여 설명의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즉 바울은 자신의 근심이 영적인 근심이지 육신적인 근심이나 영적인 좌절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이 삽입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사실 바울이 겪고 있는 상태는 사람들이 오해할만한 이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괴로운데 속으로는 평안하고, 겉으로는 슬픈데 속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근심하는데 한편으로는 안심하며,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책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이러한 상태는 확실히 무언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삽입 본문에서 바울은 먼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능하신 역사를 펼쳐 나가시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는 결국 성령의 승리, 은혜의 승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상 죄인들의 절망적인 상태도, 인간의 연약함도, 사탄의 훼방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기지 못하며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그는 한 비유를 사용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가 그리고 있는 모습은 로마의 장엄한 개선 행진 모습이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면 신전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를 베풀었는데 이때 승리한 군대의 장군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그의 포로들을 이끌고 개선 행렬을 벌인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바로 여기 승리한 장군이며 하나님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승리를 그처럼 축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전에 하나님의 원수요 적의 군대에 속한 병졸이었던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정복되어 포로가 되었다. 이러한 우리는 로마 광장에서처럼 그리스도에게 이끌리며 세상에 그 모습을 보인다. 그것도 단 한 번만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그리고 도처에서 마귀와 세상이 보는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승리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구속받은 죄인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품이며 전리품이다. 그는 부르심을 받아 의롭게 되는 순간부터 실제로 영광에 이르게 되는 순간까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트로피로서 전시된다. 바울은 여기서 특별히 자신의 그러한 위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완전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바쳐졌다. 그리스도의 포로로서 승리의 개선 행렬에 따라다닌 그의 행진은 다메섹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순교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로마 군대의 포로들의 행진과 바울이나 우리의 행진의 차이점은, 그 포로들은 자기들이 끌려 다닌 행렬이 자신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패배와 수치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바울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이끌려 가는 행렬은 겉으로는 패배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사실은 죽음과 멸망의 나라에서 허덕이다가 살기 좋은 나라로 잡혀 옴으로써 구원과 영광을 얻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전에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대적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에게 사로잡혔다. 그날부터 그는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위대하고 놀라운 전도자로서 여러 곳을 다니며 굉장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 자신의 느낌은 자신이 포로로서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포로들을 이끌고 있는 개선 행렬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고 계시는데 바울은 자신이 그 가운데 있는 한 포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꼈다.

바울은 자신의 형언하기 어려운 여러 놀라운 체험의 근원이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확실히 사로잡힌 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가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일이 되다 보니 그런 것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가 그의 필요에 의해 바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바울 안에서 그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말하는 첫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포로됨에 대해 말했다. 바깥 마당이나 성소가 아니라 지성소 안에서 사는 삶, 애굽이나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에서 좋은 땅의 풍성함을 누리는 생활을 하려면 내가 그리스도를 사로잡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리스도가 나를 사로잡아야 하며 내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주인이며 자기가 그리스도를 사로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온종일 그리스도를 자신의 축하 행렬의 포로로 삼아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고 자기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고 곤고한 것이다. 이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사로잡혀서 가난한 나라로 오면 둘 다 죽도 못 먹게 될 것이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사로잡히면 둘 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풍요롭고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로잡아 우리 뜻대로 부린다면 우리는 가난한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여러분의 체험에서는 누가 포로이고 누가 행렬을 이끄는 개선 장군인가? 누가 패배했는가? 여러분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안타깝지만 많은 경우에 심지어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하고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굴복당하지 않는다. 실생활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이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사실상 한 번도 하나님의 생각에 꺾여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믿는 우리는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따르며 그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정복당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체험 가운데 느끼는 한 가지는 영적인 일을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 저항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열망을 따라 우리의 방법으로 영적인 일들, 선한 일들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주님을 추구하고 따르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정복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일에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는 패배할 필요가 없고 또 패배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서 패배할 때 우리는 부끄럽고 절망적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패배하는 것은 젖 먹는 아기가 (젖을 먹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젖 먹으라는) 요청에 패배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도리어 참으로 살고 참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날마다 때마다 패배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제게는 뜻이 있고 감정이 있고 제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긍휼을 베푸사 제 뜻대로 일이 되지 말고 제가 승리하지 못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저를 계속 패배하게 하시고 오직 당신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전쟁이 있다. 그러나 그 전쟁에는 우리와 세상 사이의 전쟁 또는 우리와 마귀 사이의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주님 사이의 전쟁도 있다. 우리와 죄 사이의 전쟁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주님 사이에 순종하느냐 마느냐 내 뜻을 세우느냐 주님의 뜻을 세우느냐 하는 전쟁이 있는 것이다. 세상과 죄와의 싸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보다 훨씬 더 나와 주님과의 싸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주님께 패배당하려고만 한다면 모든 세상과 모든 죄들은 우리의 발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왜 여러분은 세상에 패배하는가? 바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패배시키고 성령을 거스르며 여러분의 영이 여러분의 감정과 지식과 의지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자아가 눌러버리기 때문이다. 왜 여러분은 죄를 이기지 못하는가? 그것은 여러분이 항상 그리스도를 패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기려면 이기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 기꺼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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