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4-3:3)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2:14-17)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장사꾼이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 표준새번역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언제나 끼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우리로 하여금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나 멸망당할 사람에게나 다 같이 풍겨 나가지만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악취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향기의 구실을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 공동번역

지난 주에 우리가 생각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들어 있는 포로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자신의 승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승리를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포로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로잡힌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 우리에게는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곧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사로잡힌 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자기 영광을 나타내어서는 안되고 마땅히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어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 혹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사람에게는 본래 나타낼만한 독자적인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나타낼 영광이 있다면 나타내도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덮어놓으라고 억지로 우리를 누르시는 분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영광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아들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나타낼 자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고 그 결과 하나님의 생명은 빠지고 남은 것은 껍데기뿐이게 되었다. 지금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죽은 자에 불과하다. 목적에서 벗어나 있고, 선과 악이 뒤범벅된 모순된 자로 있고, 무능하고 연약한 질그릇(흙덩어리)으로 있으니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선한 부분이 있고 영광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죄와 범벅이 된 모순된 영광이요 불완전한 영광이어서 전체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보면 영광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처음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사람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영광도 사실은 사람 자신의 영광이 아니요 지으신 분의 영광을 반영한 영광,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인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영광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으로서 영광스럽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을 나타낼 때 영광이 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드려짐으로써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사람에게 영광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후2:14에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곧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은 사람 곧 참 영광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며, 또한 사람이 자신의 영광에 대해 말할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며 영광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좇아가기를 거부하고 사람의 영광 곧 세상 영광과 육신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수치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바로 자기 속에서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참 영광의 세계로 이끄시는 분을 거절하면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외에 사람이 영광스럽게 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그 길 외의 길은 다 사탄이 사람을 잠깐 기분 좋게 만들고 그 후에는 멸망으로 빠지게 만드는 함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 외에 소위 '자기 영광' 또는 '사람의 영광'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환상적 관념일 뿐이다.

사람의 영광 또는 자기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람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육신의 자랑거리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망한다." "나는 바보가 되고 수치를 당하는 길로 간다." "나는 사탄의 종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최소한 망상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나는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망상에 빠진 것이며 헛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썩어질 육신의 욕구를 따라 행동하고 그것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영광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육신의 욕구에 배치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에게 속은 자기 생각(망상)에 따라 모든 일을 마음대로 시행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이다. 그것은 사탄에게 자기 인생을 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육신대로 고집대로 하는 사람은 곧 "나는 내 생명을 부지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바보입니다. 나는 생명을 버리고 멸망으로 치달으면서도 그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보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드러낼 육신의 자랑거리(외모, 지식, 재물, 권세, 명예...)가 없거나 그것을 드러낼 기회가 없어서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못난 자라고 생각하며 영광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자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디 가든지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업적과 승리만을 선전하며 그의 나라만을 말하게 하시고 대신 자신은 죽은 자요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드러나게 만드신다면 그것을 크게 부끄럽고 괴로운 일로 여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사탄에게 크게 속아 있는 실상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요 그의 거룩한 생명과 사람을 살리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썩어질 육신의 자랑거리가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자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싫어버림과 멸시를 받는 자라면 그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잘 생기지 못했거나 많이 배우지 못했거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 못해서(육신의 자랑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땅히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생명의 능력 곧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과 인격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세상(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헛된 영광만 추구하고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사람을 끊임없이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사람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능력이다. 꼭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세상에는 부분적으로 이것을 소유하고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사람 안에 아직 하나님의 형상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때까지는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사람들 안에서 은혜를 베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생명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인격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면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딪히는 돌이 되어 걸려 자빠지게 만들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되어 그들을 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우리는 사랑과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얻는 영광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광이며 그것은 육신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광과 승리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영광이란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높임을 받는 것이며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부러움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갈구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본래 그렇게 사람에게서 서로 영광을 얻고 거기서 참 기쁨과 만족을 얻도록 지어졌다면 사람은 그 영광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지 않고 사람끼리 서로 영광을 취해도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지음 받지 않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함으로써만 영광스럽게 되도록 지음 받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섬길 자로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만 영광이 있고 생명이 있다.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생기 곧 목숨이 끊어지면 무엇이 남는가? 거기에는 시체만 남으며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그 생명을 취하며 그것으로 자기 영광을 삼는 것은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취하며 그것으로 자기 생명을 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광을 취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취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정신이 빠지고 사탄의 망상이 온통 자기를 사로잡고 있도록 내맡기고 있는 사람, 곧 그리스도가 타락한 자기 육신의 욕구를 이기고 그 뜻대로 제어하도록 자기를 십자가에 내맡기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욕구에 져서 모든 일을 육신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스스로 "나는 참 행복하다. 모든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니 나는 자유인이요 승리자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로 그는 영광과 승리를 버리고 수치와 멸망을 취하는 것이다. 내가 이기고 그리스도가 지면 그것은 영광과 승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도처에서 내가 나타나고 내 냄새, 내 육신의 자랑거리들이 기회를 타서 잘 드러나는 것은 시체가 도처에서 썩는 냄새를 유감없이 풍겨내는 것과 같은 것이지 결코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며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타냄에 있어서 보다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범사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분명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태도를 취할 때도 우리는 분명해야 한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14:8)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나타내기에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깥의 사람들을 일깨우고 살릴 때에도 그렇고 안의 형제들을 일깨우고 도울 때에도 그렇다. 우리의 위치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살리는 구원자의 위치이다. 등대가 그 빛을 분명하게 비춤으로써 사람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갈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분명하게 비춤으로써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20) 사람들이 왜 주님을 핍박했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했는가?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한 것은 그들이 주님의 말에 걸렸기 때문이다. 진리를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걸린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3:20,21)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반대하고 대적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인하여 살고 생명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 곧 이미 자기 안에 생명과 진리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그들이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가지고 있던 생명과 진리를 더 확고하고 풍성하게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생명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가난하고 겸손하게 하심으로써 주님을 달게 받아들여서 생명을 누렸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이 생명과 진리의 사람으로 확고히 서 있었고 분명하게 그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로 인해서 그 마음에 변화를 받아 생명을 얻도록 그리고 넘어질 사람은 걸려 넘어지도록 분명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생명과 진리를 받아들여서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우리의 전한 것을 대적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을 거절하는 자가 우리를 오해하여 환영하는 일이 있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인격을 분명하게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결코 헛갈리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말했는데도 그것이 사람들 안에서 그렇게 분명하고 생생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말거나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처럼 복음을 분명치 못하게 증거하는 사람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분명치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만 추구하는 사람이고 우리 속에 오직 그리스도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우리는 입만 열면 그리스도를 전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말할 때 단순하고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이나 세상에 속한 다른 무엇을 추구하며 소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도 순수하게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지 못하고 복음에다 자기 생각과 세상 영광, 육신의 좋아하는 것들을 가미하는 것이다. 전하는 자가 순전하게 말씀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증거되는 것도 역시 순전할 수 없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數多한(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바울의 때에 그랬다면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단지 많이 전하고 열심히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을 그 생명대로 진리대로 온전히 전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혀서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깊이 누리는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음 (1) (고후5:11-21) / 2001.8.12 이상봉 2010.05.02 4315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 (3) (고후5:1-10) / 2001.7.29 이상봉 2010.05.02 3792
17 우리의 돌아보는 것 (2) (고후4:16-5:10) / 2001.7.22 이상봉 2010.05.02 4021
16 우리의 돌아보는 것 (1) (고후4:10-18) / 2001.7.15 이상봉 2010.05.02 4728
15 질그릇에 보배를 담음 (2) (고린도후서 4:7-16) 이상봉 2010.05.02 4119
14 질그릇에 보배를 담음 (1) (고린도후서 4:1-16) 이상봉 2010.05.02 3548
13 수건을 벗고 거울처럼 주님을 반사함 (고린도후서 3:18-4:6) 이상봉 2010.05.02 3979
12 수건이 벗어진 자 (고린도후서 3:12-18) 이상봉 2010.05.02 5045
11 살리는 영의 직분 (고린도후서 3:4-11) 이상봉 2010.05.02 5133
10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2:15-3:3) 이상봉 2010.05.02 3805
»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4-3:3) 이상봉 2010.05.02 3809
8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 (고린도후서 2:12-17) 이상봉 2010.05.02 4028
7 사탄에게 속지 않음 (고린도후서 2:1-11) 이상봉 2010.05.02 4188
6 영 안에 있는 사람 (고린도후서 1:21) 이상봉 2010.05.02 3909
5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예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 (고후1:17-22) 이상봉 2010.05.02 6856
4 참된 도움 (고린도후서 1:15-24) 이상봉 2010.05.02 3944
3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게 행함 (고린도후서 1:12-16) 이상봉 2010.05.02 4024
2 십자가의 체험 (고린도후서 1:1-11) 이상봉 2010.05.02 3976
1 고린도후서 서론 이상봉 2010.05.02 3884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