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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2:15-3:3)

1.그리스도를 분명히 증거함

오늘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타냄에 있어서 보다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범사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분명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태도를 취할 때도 우리는 분명해야 한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14:8)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나타내기에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깥의 사람들을 일깨우고 살릴 때에도 그렇고 안의 형제들을 일깨우고 도울 때에도 그렇다. 우리의 위치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살리는 구원자의 위치이다. 등대가 그 빛을 분명하게 비춤으로써 사람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갈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분명하게 비춤으로써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20) 사람들이 왜 주님을 핍박했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했는가?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한 것은 그들이 주님의 말에 걸렸기 때문이다. 진리를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걸린 사람들이 주님을 핍박하고 죽인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3:20,21)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반대하고 대적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인하여 살고 생명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 곧 이미 자기 안에 생명과 진리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그들이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 가지고 있던 생명과 진리를 더 확고하고 풍성하게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생명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가난하고 겸손하게 하심으로써 주님을 달게 받아들여서 생명을 누렸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이 생명과 진리의 사람으로 확고히 서 있었고 분명하게 그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로 인해서 그 마음에 변화를 받아 생명을 얻도록 그리고 넘어질 사람은 걸려 넘어지도록 분명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생명과 진리를 받아들여서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우리의 전한 것을 대적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반대로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을 거절하는 자가 우리를 오해하여 환영하는 일이 있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인격을 분명하게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결코 헛갈리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말했는데도 그것이 사람들 안에서 그렇게 분명하고 생생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말거나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처럼 복음을 분명치 못하게 증거하는 사람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분명치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만 추구하는 사람이고 우리 속에 오직 그리스도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우리는 입만 열면 그리스도를 전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말할 때 단순하고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이나 세상에 속한 다른 무엇을 추구하며 소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도 순수하게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지 못하고 복음에다 자기 생각과 세상 영광, 육신의 좋아하는 것들을 가미하는 것이다. 전하는 자가 순전하게 말씀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증거되는 것도 역시 순전할 수 없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數多한(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바울의 때에 그랬다면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단지 많이 전하고 열심히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을 그 생명대로 진리대로 온전히 전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혀서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깊이 누리는 것이다.

2.그리스도의 편지

바울은 고린도교회 형제들 중 일부가 자기에게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3:1-3)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치켜올리는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에게서 받을 추천장이 필요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해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혹, 여러분들의)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으며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증거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고린도교회 형제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되어 바울 앞에 서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이다. OO 자매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머니인 증거는 그를 닮은 OO 자매의 아이 XX가 그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 일을 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자녀들을 낳고 길렀으며 그 증거가 바로 고린도교회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을 만났을 때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와 함께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적셔지고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알게 모르게 그리스도를 그들 안에 쓰고 새겨 넣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울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고 또한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는 아들을 낳는다. 이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편지요 아들은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이다. 아이를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 생명이 같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모양도 같고 성질도 같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편지였다. 그리고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였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바울의 편지였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리스도도 몰랐고 하나님도 몰랐으나 바울은 알았다. 그러나 바울을 알자 바울 안에서 역사하던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알고 그리스도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놀라운 일이 있으니 사람을 만났는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었으며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바울을 만났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따라 간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의 말과 글과 행동이지만 그 속에는 성령이 따라 나온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영을 전한 것이다. 그 영이 바울의 말을 따라 고린도교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바울은 단지 말과 소리로 사람들의 귓전을 울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람들의 마음 안에 돌판에 정으로 새긴 것보다 더 확실한 편지를 새긴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사람이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알지 않고 속에서부터(생명 안에서)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불어넣어지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생명으로(본성적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또한 그의 부활 승천 후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보내셨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8:10,11)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진 것은 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성령이 오심으로써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히 부어졌으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속에서부터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성령은 사람 속에서 하나님을 알도록 역사하신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성령이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새 언약(신약)이 성취된 복된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누리려면 먼저 실제로 성령에 사로잡혀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를 들을 때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려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이신 그리스도를 충분히 읽어서 그를 우리 안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새기도록 그에게 깊이 사로잡혀야 한다.

편지란 무엇인가 쓰여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편지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쓰여진 것이다. 쓰여지는 것은 사로잡혔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쓰여진다는 것은 사로잡힌다는 말과 같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포로가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그 인격 속에 그리스도가 새겨진다. 그리하여 그의 본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그 안에 새겨지게 된다.

반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는 그 인격 속에 탐욕과 악독과 온갖 죄가 새겨진다. 마귀는 우리로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히지 못하도록 다른 것들로 우리 마음을 채우려고 우리를 미혹한다. 돈과 명예와 권세와 여자와 술과 쾌락으로 미혹되는 사람은 그것이 그의 마음에 새겨진다.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 생명과 인격 안에 그것들이 새겨져 있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게 되고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는 것은 생각이나 감정, 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또 우리가 마귀의 종이나 세상의 종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또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운명의 문제요 인격의 문제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타내어야지 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포로로 사로잡혀서 결박되어 있고 범사에 그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우리가 서 있으면 우리는 저절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원해도 그렇게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딴 생각을 하고 다른 야망을 가져도 그것이 안되고 오직 주님을 나타내는 자로서밖에는 달리 어떻게 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의 욕구대로 하고 싶어서 헐떡이는 자라도 우리가 주의 영에 사로잡힌 자라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성령이 우리의 그런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우리를 그리스도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감정으로 이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위치이고 운명이고 인격이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의 위치에 있고 그의 영에 지배를 받는 운명이고 그의 생명으로 감화된 인격이라면 행동은 저절로 결정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 인격이 적어도 한 번 이상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사로잡히고 성령에 의해 감동된 적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편지가 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세상에도 선한 일을 하고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 존경하는 어떤 분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운명과 인격이 그런 행동밖에 할 수 없도록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생각 따로 인격(사람) 따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선한 소망은 생각으로 그치고 만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먼저 주님의 포로가 되지 않고는 주님의 향기나 주님의 편지가 될 수 없다.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에 의해 바울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일컬어졌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그렇게 말하는 바울을 적대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실정에 있는 그들을 바울은 어떻게 너희는 우리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 안에 자기도 모르는 인격적 변화가 이미 어느 정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는 것은 생각이나 감정,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요 영에 사로잡히는 문제요 인격과 운명의 문제라고 하는 것의 증거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살 자인 줄로 생각하거나, 자기들이 바울이나 그리스도를 대적하거나 혹은 기피하며 무시할 수 있는 자인 줄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였던 것이다. 이미 그들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포로로 잡힌 바 되었다. 그들의 인격 안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말씀(뜻, 인격)이 새겨져버린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바울에게 추천장을 요구하며 '당신이 누구이며 당신이 전한 복음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생명이냐' 라고 묻는 그 순간에도 그들 안에는 이미 바울이 뿌린 생명의 말씀이 싹이 터서 바울의 정신,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바울과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울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이미 그들 안에도 들어가서 그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생각과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제 고린도교회 형제들은 자기들이 바울에게 '당신이 누구냐' 하고 물을 자도 아니고 '꼭 우리가 당신이 말한 그 복음을 따라야 하느냐' 하고 물을 자도 아니고 '우리가 꼭 그리스도를 따라가야만 하느냐'고 물을 자가 아니라 '당신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는 당신이 말한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할 자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들은 다 우리 생명 안에 새겨진 길들이다. 그것은 고기에게 물에서 살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생명의 길과 당연한 필요들을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형제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권면하는 형제에게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사항이 아니고 고민할 사항도 아니고 우리 생명의 정상적이고 당연한 표현이며 우리 안에 이미 쓰여져 있고 새겨져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거부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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