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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보배를 담음

(고린도후서 4:1-16)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4:1-6)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를 마감하고 있다. 바울은 한마디로 사람이 임명한 사도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직접 세움 받은 사도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의 능력을 크게 부여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계시를 주셨다. 그리하여 그는 오랫동안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분명하게 계시하였다. 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의 생명과 능력이 되었으므로 그는 큰 권세를 지닐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인간적 제도나 조직이 뒷받침하는 사도가 아니었으므로 무슨 추천서나 자격증이나 임명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디든지 가서 일할 수 있었고 일했으며 또한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울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다 그랬다. 가까이는 세례 요한이 그랬고 베드로와 요한 등 주님의 모든 제자들과 궁극적으로 주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나지 않고 위로부터 난 권세 곧 생명의 권세와 생명의 능력으로 일했다. 그들은 누가 준 임명장이나 추천장 혹은 왕이나 제사장, 목사라고 하는 어떤 표나는 직책을 가지고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주님이나 세례 요한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냐?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주님 등의 외형적 권세 없음을 근거로 삼아 그들의 사역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님이나 세례 요한의 권세에 대해 따질 수는 있었지만 그 사람들에게 권세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역과 권세는 이미 그 생명의 능력으로 인해 백성들 가운데서 완전히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이런 권세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벼슬이나 자격증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중요하지 직책이나 벼슬, 임명장이나 추천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은 오직 생명의 어떠함, 인격의 어떠함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한 일을 사모하고 그것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일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것에 대한 갈망이 없고 하나님의 생명이 속에서 역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직책을 가지고 있고 그럴듯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처럼 되기를 원한다. 여기 있는 모든 형제들이 다 바울처럼 주님을 깊이 알고 그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깊이 감동되기를 바라며 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생명과 정신으로 충만하여 어디서든지 그리스도를 말하며 또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를 정확하고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속에서부터 솟아 나오는 생명의 능력과 권세가 있으면 우리는 다 사역자이며 또한 일을 할 때 즉 그리스도를 전할 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에서 기쁨과 확신으로 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울처럼 생명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우리는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불필요한 짐을 지워서 사람들을 구속하고 무겁게 하는 자가 되지 않고 사람들을 살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케 만들 것이다. 우리 안에 자유가 있으면 우리를 듣는 자들도 자유를 얻을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있으면 우리를 듣는 자들도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영의 인도를 받는 자요 영의 전달자라면 우리를 듣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친히 받는 자들이 되어서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무 자격증이나 벼슬이 없어도 진정으로 권세 있고 영광스러운 자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와 이 권세를 원한다. 사람이 임명하고 사람이 써준 추천장과 자격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부어 주심으로 인해 친히 권세 있게 되고 부요케 되고 능한 자가 되어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이러한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위로와 도우심 안에서 일했다. 그 때문에 그는 많은 환난과 풍파, 시험을 겪었지만 그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 역시 육신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에도 불구하고 숨은 부끄러움의 일들 즉 모든 당당치 못하고 합당치 못한 일들과 잔꾀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걸어갈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할 때 여러 인간적 지혜와 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전하게 증거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이 능력과 권세로 충만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고 참 영광으로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면 다른 데서 길을 찾으면 안되고 오직 바울의 서 있는 이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드리는 자리이다. 사람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지음 받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자가 되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해 일하거나 자기 영광을 따로 찾으면 우리는 가난하고 피곤한 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의 종으로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입혀주신 권세와 능력의 옷으로 인해 빛나고 영광스러운 자가 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만나고 그를 위해 드려졌을 때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영광은 영광이 없는 자가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려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영광스러운 분, 영광으로 충만한 분을 쳐다보고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가까이하여 붙을 때 생기는 것이다. 시원한 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한다면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고고하게 서 있을 것이 아니고 골짜기로 내려가서 몸을 낮추어 계곡에 누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광과 진리와 자유와 권세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으면 그것이 나오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요 그리스도의 종의 자리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4:6에서 말하기 전에 먼저 4:5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리고 나서 비로소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전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가 영광스러운 분이며 그가 주인이시고 자기를 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그 주인의 종일 뿐 아니라 또한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이 기뻐하여 택하신 자들을 섬기는 종이 되었다.

나는 바울의 인생을 볼 때 그가 참으로 권세 있고 영광스러운 자요 또한 참으로 부유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느낀다. 그의 말과 그의 사역, 그의 일생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참으로 보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본래 보배가 아니었고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의 죄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동안에 그는 보배와 같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는 자신의 실체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4:7-15)

그는 여기서 자신이 보배가 아니요 단지 보배를 담고 있는 질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바울은 질그릇이다. 질그릇은 투박하고 값싼 물건이다. 그것에는 영광이 없다. 그러나 여기 질그릇은 혼자 댕그라니 놓여 있는 질그릇이 아니요 보배를 담고 있는 보배합으로서의 질그릇이다. '내가 영광스러우니 나를 보시오' 하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놓여 있는 그런 그릇이 아니요 오직 보배를 담고 있는 통 곧 보배를 보호하고 빛내기 위해 그를 받치고 있는 받침대로서 존재하는 질그릇인 것이다. 질그릇 자체는 약하고 보잘것없지만 보배가 귀하고 영광스러운 까닭에 질그릇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보배를 담고 있는 한 그것은 보배와 함께 잘 보존되며 영광스럽게 다루어진다.

질그릇은 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하며 핍박을 당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증거한다. 바울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할 때 약해서 떨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승리하였다. 그것은 그가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보배와 함께 보존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영광과 승리는 오직 이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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