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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조의 원리 / 창1:6-9

2010.05.03 14:46

이상봉 조회 수:3026

창조의 원리

(창세기 1:6-19)

천지 창조의 과정이 설명되고 있는 창세기 1, 2장의 서술 내용을 보면 거기에는 어떤 원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창조가 진행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날 : 땅(지구)과 하늘(우주 공간, 혹은 별들까지 포함) - 여기에는 순수한 땅뿐 아니라 거기에 부속되는 공기와 물 등도 포함된다.

둘째날 :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물층을 하늘 위의 물층과 땅을 덮고 있는 물층으로 나눔. 그 사이에 하늘(대기권)을 두심.

셋째날 : ① 땅과 그것을 덮고 있는 물층이 땅의 융기 침하 작용을 통해 육지와 바다로 분리됨. ② 땅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생겨남.

넷째날 :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나타나서 비취게 하심.

다섯째날 : 바다 생물들(물고기들)과 공중의 새들이 생겨남.

이러한 창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목적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에서 하나를 나눔으로써 환경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조성해 가셨다.

첫째, 빛이 비취자 날은 낮(빛)과 밤(어둠)으로 나누어졌다.
둘째, 물이 하늘 위의 물과 땅의 물로 나누어졌다.
셋째, 땅을 덮고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바다가 됨으로 땅이 마른 땅(육지)와 바다로 나누어졌다.

이것은 모두 생명의 탄생을 위한 준비작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과 존재를 위해 근본적인 사실이다. 빛은 생명의 생장 활동에 필요하고 어둠은 생명체의 휴식을 위해 필요하다.
물이 그냥 땅 위에서 한 데 몰려 육지와 바다로 나누어지지 않고 우선 하늘의 물과 땅의 물로 나누어진 것도 생명을 위한 것이다. 하늘의 물은 지구를 포근하게 감싸주어 캐노피 효과를 내는 물층이다. 궁창 위의 물은 구름보다 두꺼운 물층인데 이것이 있음으로써 우주로부터 오는 모든 파괴적인 자외선이 차단되어 생명체가 크게 보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물층은 지구의 온도와 습도를 항상 일정하고 적당한 정도로 유지시켜 주어 생명체들이 마치 온실 속에 있는 것처럼 잘 자랄 수 있었다. 노아 홍수 때 이 물층이 한꺼번에 땅으로 쏟아져서 이것이 없어졌지만 이것이 있는 동안 생명체가 얼마나 좋은 조건 속에서 살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수명은 대개 900세 전후이다.

다음으로 땅을 덮고 있는 물이 한 데로 몰려 바다를 이루고 땅의 일정한 부분이 마른 곳으로 드러나 육지가 된 것은 육지 생물이 탄생할 수 있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이어서 식물이 만들어졌는데 이 식물들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를 가진 열매 맺는 나무"로 표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을 만드시기 전에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먼저 만드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태양을 비롯한 천체의 별들이 하늘에 분명히 보이도록 나타나게 하심으로써 인간과 기타 생물들의 삶이 그것으로 인해 일정한 변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삶의 틀(週期)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밤에는 빛이 비치지 않았으나 필요에 따라 밤에도 빛을 볼 수 있도록 밤 하늘에 달과 별을 등장시키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미술가가 추상적 조각 작품을 다듬는 것처럼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그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의 풍성과 하나님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누리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다 이와 같이 규모가 있고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 목적과 생각과 뜻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생명과 소원을 두시며 행할 바를 알게 하신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며, 이것은 곧 정상적인 사람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함 없는 생각을 따라 살지 말고 이 마음을 따라 규모 있게 살아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 삶에는 목표와 목적이 있어야 하고 방향이 있어야 한다. 무질서하고 무계획하고 생명의 유지와 성장과 상관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우릭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누신 것들은 다 하나님이 나누신 상태로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 데 뒤섞이면 안된다. 하나님이 나누신 것들이 뒤섞이는 상황이란 곧 저주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빛이 어둠과 도로 섞인 적이 있었다. 즉 낮이 밤처럼 흑암 천지가 되는 상황이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셨던 재앙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에는 빛이 있고 애굽 사람들이 거하는 곳에는 3일 동안 흑암 상태가 계속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자 그대로 재앙인 것이다. 이것이 계속 된다면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이 섞인다는 것은 빛에 속한 것들의 죽음을 의미한다.

또 하늘의 물층이 땅의 물층과 섞이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은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기록되고 있는 노아 홍수 때의 사건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 대로 캐노피 효과 즉 온실 효과의 소멸로 인해 생명체의 수명이 현격하게 단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누어 놓으신 것은 그대로 있어야지 섞이면 안된다. 그것이 섞이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체에게 저주하신 결과이다.

바다와 육지가 섞이는 것 즉 해일이 일어나거나 대 홍수가 일어나서 땅이 물로 다시 뒤덮이는 상황 역시 두말할 것도 없이 저주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노아 홍수 때 땅이 다시 물로 완전히 덮여버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결과였다.

우리는 바울이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라고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나누시고 발전시키신 상태로 있어야 한다. 섞는 것은 퇴보이다.

또 반대로 하나님께서 섞으신 것, 즉 하나되게 하신 것은 사람이 나누어서 안된다. "(골3:9) .....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 것은 다시 나누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 때만 만물을 질서있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그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의 산물이다.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의 방향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은 세상에 대해서는 분리요 형제들 안에서는 연합이다. 이것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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