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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 -

창세기 1,2장은 사람이 어떻게 지음 받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1.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창5:1)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9:6)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전11:7)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3:9)

이 말씀들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모습)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고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상고할 것이지만 일단 이 형상이라는 것이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성질)을 말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짓자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외형을 따라 지음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육신을 가진 분이 아니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외형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과 같은 성질을 지닌 자 곧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피조물 가운데는 사람과 비슷한 외형(육체적 모습, 지능...)을 가진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생명(의 특성)이 하나님의 생명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2.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임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4)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1:15)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3)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은 사람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이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형상(아들)으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먼저 하나님의 형상(아들)으로 계셨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같은 종류(아들)로 지음 받았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근본으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3.구원의 목표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0)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찬송과 기쁨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그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누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생명 안에서(본성적으로) 섬기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법이나 필요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본성)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즐거워하는 것, 바로 이것이 참된 찬송이다. 종교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찬송(섬김)은 그리스도의 찬송과 다른 것이다.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것이 될 수 없다. 오직 아들(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아들의 정신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참된 섬김이 된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를 당신 자신의 이런 자리 곧 하나님의 참 아들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함이다.  


4.마지막날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됨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15:49)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지금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지만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장차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또한 사람이 타락하여 그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를 보내사 그의 형상으로 재창조하시는 (구원) 사역을 계속 수행하시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어느 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참 형상(아들)으로 서게 될 것을 내다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복과 변화의 역사는 반드시 최후의 날 곧 우리가 죽은 후에나 세상 종말의 때에 가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에 있는 동안에도 상당 부분 이루어진다. 성령님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회 생활(말씀과 교제) 안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아들)으로 변화시켜 나가신다.



-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

이제 좀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에 포함된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이성(理性)} 즉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 사람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도덕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선악을 분별할 줄 알며, 선을 행할 때는 기쁘고 악을 행할 때는 괴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둘째, 그것은 사람이 {영}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느끼며 추구할 수 있는 의식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은 이러한 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기관이 있다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의 본래 뜻은 사람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 이성과 형식을 따라 - 오직 종교적인 모양으로만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아들의 생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사마리아여인에게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이제 때가 왔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요4:21,23)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혼(魂)적 섬김, 곧 종교적 섬김이다. 이것은 이성과 종교성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을 주셨고 그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사정까지도 다 알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이성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알고 보면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 안에서 형상화 해 놓고 자기 마음(생각, 관념)대로 섬기는 것이다. 그런 섬김은 아무리 잘 되어도 형식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잘못되면 바로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려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아야 하고(영이 회복되어야 하고) 그 영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래야 실제적이고 온전한 섬김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고 신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특별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은 처음 지음 받을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받았다. 그러다가 타락으로 인해 그것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대해 먹통이 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다시 회복됨으로서 사람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영으로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영은 하나님의 세계를 알되 땅의 모형으로써가 아니라 하늘의 실제를 알게 하며 그에 따라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섬길 수 있게 한다.

셋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자율성} 또는 {자유 의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자의식(自意識)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것 때문에 사람은 타락도 할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을 참으로 찬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연히 다음에 말하는 네 번째 특성이 나오게 된다.

넷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그 인격을 인정받는 독립된 개체라는 뜻이다. 사람은 하늘에 속한 자의 인격을 가진 존재이다. 동물은 이런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동물들도 약간의 정신 작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과 같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창조적이고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일을 하지는 못한다.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정신 활동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이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로봇이나 기계와 같은 무인격적 물체와 같이 대하시지는 것처럼 하지 않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종처럼 마구 대하시지도 않고 아들과 같이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물론 아들은 아버지와 전적으로 같지는 않다.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존중히 여김을 받는 존재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계3:20을 보면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심을 볼 수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만일 사람이 자율성이 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권고하시며 기다리실 필요가 어디 있는가?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가?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모든 간접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시며 어렵게 일하신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강제로 확 바꾸시지 않고. 그것은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강력히 역사하셔서 사람을 일시에 변화시키시는 경우도 있다. 아주 급한 때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님이 일하시는 일반적인 방법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다섯째, {도덕성}이 나온다. 도덕성에는 두 가지의 구체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자유와 책임이다. 물론 사람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길이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나마 사람에게는 분명히 자유가 있으며 여기에서 도덕적 책임도 나오게 된다.

타락 후 사람은 자유를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고 한 아담과 하와는 거짓된 자유를 좇다가 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할 도덕적 책임을 버림으로써 자유롭게 된 것 같았지만 실은 죄와 사탄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자리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는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생명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적 연약함과 세상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아담처럼 변명하며 강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쨌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받은 자로서 진실하고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0)

이 말씀들은 다 신자가 그 새로이 받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변화됨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덕적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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