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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생육하고 번성함 / 창1:28

2010.05.03 14:51

이상봉 조회 수:2871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축복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창조되기 전까지는 그의 풍성하심을 나누어 줄 대상이 없었다. 부자는 자기의 넘치는 재산을 혼자 다 쓸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이 있어서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하고 원한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을 함께 누릴 후사로 지음 받은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지음 받은 아들이기 때문에 단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함으로 도처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끔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하라고 축복하신 목적이 결코 그냥 먹고 살다가 죽는 동물로서의 사람이 많아지게 하려는데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여 땅에 충만케 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 하나님의 아들들로 땅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냥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광스러운 아들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라야 복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개인적인 영적 생활과 교회 생활을 통하여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많이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이 그의 대표자 아들들로 꽉 차게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축복하신다. 주의 생명을 지닌 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수를 늘리고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할 대표적인 새 피조물이다. 그러나 교회가 얼마나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인가는 그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고 대표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즉 오늘의 교회들이 하나님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대표한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교회로 하여금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실 것이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실제로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성장했으며 도처에 그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왔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의 몸의 분량은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세상 종교 조직과 비슷하게 변해 갔다. 그들은 다른 세상의 조직들이 그러하듯이 그 몸을 불리기에 온 힘을 쏟은 결과 큰 세력 있는 단체로 발전했고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한 때는 실제로 국가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로 땅을 다스리는 정복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거의 나타내지 못했다.

진정한 복음 전파는 외적인 증거만으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것은 교회가 그 속에 있는 생명의 능력을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려 내보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매는 억지로 맺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회가 커지고 번성하게 되려고 하지만 단지 교리를 전하거나 몇 가지 선한 일을 통해 사람을 이론적으로 설복시키고 감동시켜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번성과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교회가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능력과 권세로 사람들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 때만 번성하고 땅에 충만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 속에 있는 뿌리와 줄기와 잎의 생명이 충만해지면 그 생명은 밖으로 나와서 열매를 맺게 된다. 모든 열매는 나무 속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의 결과요 표현이다.

복음 전파는 생명의 열매, 곧 그리스도를 맺는 것이어야 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애쓴다고 그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커지고 성장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최우선적인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면 안되고 또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결실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혹시 사람들을 데리고 오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아들들이 아니라 있으나마나 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로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으며 그런 사람들이 모인 단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러분에게는 세상 죄인들을 이 생명의 세계로 이끌어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있는가? 또 만일 사람들을 데려 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자 하는가?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인가 아니면 아무 생각도 뜻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사람들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에도 달린 문제지만 바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 자신에게 더 많이 달린 문제이다. 여러분이 맺은 열매가 바로 여러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배라면 사과를 맺을 수 없고 여러분이 감이라면 귤을 맺을 수 없다. 여러분이 사과 열매를 맺고 싶으면 반드시 여러분 자신이 사과나무가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생명 없는 지식만으로는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을 바로 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실을 맺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고 있고 하나님의 권세로 사탄을 포함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과 권위를 알고 그것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권위가 생명의 권위라면 이론적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더라도 말없이 세상의 권위 없는 자들에게 흘러가서 그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참으로 권위를 가지게 된다면 아내에게 자기 권위를 인정해 달라고 윽박지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27살 먹은 동갑내기 부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또 아내는 남편을 표면적으로 주인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우리 남편은 좋기는 하지만 아직 철부지 청년이야 그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존경하고 그를 의지할 수 없지'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어 매일 변화를 거듭하여 일 년이 지났다면 아내의 생각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남편은 나이는 아직 28살 청년에 지나지 않지만 무언가 무게가 있고 권위가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남편은 성경에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되어 있으니 당신은 나에게 순종해야 돼 하고 권위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아내는 남편을 볼 때마다 그의 말에 신뢰가 가고 무게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범사에 그에게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11:7-10)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11:11)

남편이 아내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 다가가기만 한다면 아내는 남편 앞에서 저절로 자기 머리를 숨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나 장로들이 사람들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사람들을 실제로 다스릴 수 있는 생명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이름 값을 하지 못하게 된다. 영적 권위 즉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권위는 생명의 권위이다. 그것은 법과 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으로 유지되는 권위이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권위 있는 분이니까 모두 존경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하시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겼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과 능력이 너무나 뛰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순종하게 된 것이다. 그는 로마 황제로 온 분도 아니고 황제의 사자도 아니었다. 외적으로는 아무 권세도 없었지만 그의 생명의 능력이 생수같이 흘러 나가서 사람들을 적셨던 것이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워낙 확실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확실히 대표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증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도 나타낼 수 있었다.

주님뿐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실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살 때 그의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그를 온전히 나타낼 수 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성장과 확장은 하나님의 형상과 다스리는 권능을 우리 안에 소유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교회가 성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절대로 생명의 역사 아닌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삭 대신 이스마엘을 낳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 대신 모압과 암몬을 낳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전에 구약 인물들을 공부하면서 익힌 이 두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로부터 아들을 기다리다가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종을 취하여 아들을 낳았다.(창16:1,2) 그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그는 이삭보다 13년 먼저 났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자가 되었다. 이름은 둘 다 '이스'로 시작하므로 겉으로 볼 때 비슷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확장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자 할 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또 하나의 예는 롯의 두 딸이다.(창19:30-38) 그들은 소돔에서 나온 후 이렇게 모의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창9:31,32)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창19:37,38) 훗날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이들이 얼마나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손들은 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식으로 자식을 낳고 있다. 교회들의 확장은 대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축복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생육과 번성을 원치 않으신다. 사람들은 계속 그들의 숫자를 늘려 갈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돕지 않으신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의 외적 성장도 거의 멈추게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케 하시는 축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형상을 한 사람들이 이 땅에 충만케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지루하고 답답하더라도 이스마엘이나 모압이나 암몬을 낳지 말고 약속을 따라 참 생명 곧 이삭을 낳도록 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헛된 꿈을 꾸고 있다. 그것은 오순절 시대에 하루에 삼천 명이 구원을 받았고 또 다른 날에는 오천 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자기들도 그렇게 교회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천 명이나 오천 명이 한꺼번에 구원을 받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번성은 그렇게 빨리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낳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 이상이 필요하다. 3년이나 5년 만에 아들을 낳을 수는 없다. 10살이나 15살 짜리도 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생명을 그처럼 속히 양산하려는 생각은 인간의 조급한 생각일 뿐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다.

조화(造花)는 만들기 쉽다. 기술만 있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하루나 이틀만에 이 집을 꽃과 과일 열매로 다 채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인공적인 것이요 향기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참 과일이나 꽃을 기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만일 우리가 나무를 심었다면 그것은 하루 이틀만에 부쩍 부쩍 자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것은 거의 그대로일 것이다. 열매 맺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 내지 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자란 후에는 즉 일단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그 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열매를 자연스럽게 많이 맺게 된다.

교회 생활은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교회가 확장되고 땅에 충만케 되도록 번성해야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생명을 오래 먹고 마신 후 서서히 자라는 것이다. 교회는 결코 비 온 후 하룻밤 사이에 번식하는 버섯과 같이 확장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참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분명한 목표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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