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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과 주님의 큰 기도 (2)

이상봉 2010.05.05 14:16 조회 수 : 2728

제65과 주님의 큰 기도 (2)

 

요한복음 17장
 

118.하나님의 영원한 뜻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이 땅에 아들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만들기 원하신다. 그는 세상이 온통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로 채워지기를 원하신다. 세상에서 마귀와 그 졸개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왕이 되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 아들들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그곳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곳이 ‘하나님(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으로만 채워진 나라 곧 하나님밖에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1,5-7) 새 하늘과 새 땅의 가장 큰 특징은 그곳에 하나님과 그 아들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만물(세상)이 새롭게 된 것이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계22:1-5)  

 

요한이 계시 중에 본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세계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아들(독생자,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는 많은 아들들(어린 양에게 속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나라였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왕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세상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나라, 아들의 나라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 필요하다. 독생자(예수 그리스도) 혼자만으로는 ‘나라’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아들들이 필요하며 많은 그리스도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사람이 많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사는 세계이므로 그 구성원은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 

 

빛과 어두움, 불과 얼음은 함께 있지 못한다. 사람(죄인)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으려면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과 한 종류가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타락하여 사람과 같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후자는 불가능하므로 결국 사람이 변해야 한다. 구속은 바로 이러한 필요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이는 ...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0) 구속(救贖, 죄 사함, 거룩케 됨)이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목적이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거룩한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서는데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거룩한 자로,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한 종류로,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자들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아들의 나라가 설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신 것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3,4)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경건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의의 나라(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가득 찬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3,14)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모든 역사가 다 이 일(그리스도의 나라 건설)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심지어 자기가 부활 후 승천하여 만물의 왕이 되신 것조차 이 일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에게 붙여진 자들 곧 아들(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부르심 받은 자들은 반드시 아들의 생명 곧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생명이 바로 영생(永生)이다.  


119.영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영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 곧 아들의 생명 자체가 영생이다.  


“가산(家産, 재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富)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6,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和睦)하는 것이 육선(肉饍)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 이것이 바로 영생이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 하나님의 보냄 받은 자(아들)의 삶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영생이란 하나님을 앎으로써 그의 삶이 하나님처럼 권세 있고 하나님처럼 자유로우며 하나님처럼 풍요로운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인가? 하나님을 알면 삶(영생)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아는 것이다. 그를 알수록 인생은 더 풍요롭게 된다. 기쁨과 안식, 자유와 만족이 어디서 오는가?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세상 재물, 세상 영광) 안에서 그것을 찾지만 영생(행복한 삶)은 그런 것들 속에서 얻을 수 없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 19-21)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 15) 사람이 많은 소유물로 인해 참된 기쁨과 안식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이 그런 것들로 인해 행복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서로 사랑하는 삶 속에서 풍요와 만족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에 대해 부유하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는 가난한 것이며 그 생명, 그 인생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생과 반대편에 서 있는 인생(삶)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거기에 있는 자들이 다 하나님을 깊이 안다는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히8:10,11) 


주님 당시에도 하나님의 나라라고 이름을 붙인 한 나라(이스라엘)가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유대인들의 나라였을 뿐 참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율법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은 그들이 아버지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극히 가난하나 속으로는 지극히 풍성한) 삶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인해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삶, 영생)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세상 영광, 썩어질 육체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6:26,27)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3-35)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궁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풍요의 삶을 누린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생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 그리스도를 알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요롭고 완전한 삶이 다 우리 것이 된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앎(지식)은 사물이나 사람의 겉 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아는 것을 가리킨다. 인격을 알고 마음을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단순한 관념적 지식이 아니라 ‘생명(체험)으로 아는 지식’ 즉 겪어보고 아는 지식이다. 여자가 남자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은 그가 처녀가 아니라 남자와 육체 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단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해 분명하게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생을 누린다는 것은 죽은 후에 다른 세계(천당)에 가서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든 나중이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은 오직 아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는 것은 사실 아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참으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과 운명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가 그의 인생을 전적으로 ‘아버지의 아들’로 산 것을 보아야 한다. 그에게는 자기 뜻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아버지의 목적만 있었다. 아버지의 뜻을 자기 뜻으로 삼아 실행하고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육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리스도의 인생(길)을 받아들여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표자로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그가 인류의 근본이시고 우리의 대표자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생을 우리의 길과 운명으로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그의 삶이 모든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주님은 모든 인간의 유일한 길이요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다 그 안에서 지음 받았으며 그리 돌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거기서 벗어나면 그 사람은 잘못된 것이며 결국 폐기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인간은 싫든 좋든 하나님의 이 영원하신 아들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골1:15-18) 그의(하나님의 아들의) 운명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의 길로 걸어가며 그의 자리에서 산다면 그는 영생을 실제로 누릴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여전히 사탄의 거짓말에 속은 채로 그리스도를 거부한다면 그것(인간에게 주어진 영광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버림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지식(앎)은 사람이 스스로 연구해서 알거나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이 그 아들의 소원대로 아들이 기뻐하는 자들에게만 주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2)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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