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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이상봉 2010.05.04 14:14 조회 수 : 3021

제2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2. 태초에 말씀이 있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의 증거는 언제나 태초(太初)로부터 시작한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요한1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이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태초로 인도한다. 그가 태초를 말하는 것은 인류의 회복이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크게 잘못되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요한이 요한복음 1:1에서 말하는 태초는 창세기 1:1에 나오는 태초 곧 천지창조의 태초가 아니고 그보다 먼저 있었던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에 있었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어떤 말씀, 어떤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의) 말씀(뜻)들이 있기 전에 그 모든 것들을 월등히 앞서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한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태초에 그러한 말씀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은 내가 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고 내가 그 뒤에 즉 그 말씀 안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내 뜻이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먼저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 그의 뜻은 우리의 모든 뜻을 (시간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나) 앞선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그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기 전에, 우리가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기고 절대적으로 여기는 그 어떤 뜻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고 완전한 뜻이 먼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인생을 살 수 없고 남이 말하는 대로 남이 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 없고 오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요한은 ‘태초부터 있던 말씀’이 곧 하나님(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님은 바로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증거한다. 요한은 왜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나님이 자기를 오직 말씀으로만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 외의 어떤 종교적 신비적 방법으로도 자기를 나타내시지 않았고 오직 그의 종들을 통해 전달된 말씀 안에서 자기를 나타내셨다. 물론 말씀(어떤 뜻, 개념)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이며 그의 말씀보다 크신 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은 오직 말씀 안에 나타난 하나님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곧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면 말씀이 아닌 형태로 나타난 하나님, 말씀과 다르게 나타난 하나님은 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예컨대 파티마의 기적(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3명의 아이들에게 예언을 했고 그 증거로 몇 달 후에 7만 명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에서 태양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는 일)이라든지 꿈이나 환상, 신비적 체험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것은 대개 참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이신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곧 말씀이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요한은 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나타났다고 증거한다. 그가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일을 집행한 분이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하나님의 독생자, 聖子)가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만물을 지으신 분임을 나타낸다. 천지를 창조한 ‘말씀’이 바로 예수로 세상에 오신 그 하나님의 독생자(聖子)인 것이다.   


3. 말씀이신 그리스도


하나님만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곧 예수 그리스도도 말씀이다. 요한이 말한 태초부터 계신 말씀에는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아들 하나님(聖子)도 포함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그리스도가 말씀인 것은 그가 항상 ‘하나님을 나타내는’ 분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요한이 말하는 말씀(logos)이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reveal) 수단으로서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고 경험되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드러내신(경험하게 하는) 분이다. 아들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1:15) 이것은 다 말씀이요 아들이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지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2에 의하면 하나님은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오신 분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자신을 완전하게 세상에 나타내신 것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요한의 증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구약 시대에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역시 하나님의 아들(독생자, 말씀이신 그리스도)을 나타낸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구약에 나타난 다양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다양한 표현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집행하는 분(말씀, 아들)으로서 있어온 분이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만드신 그 말씀이고 만물을 새롭게 하는 그 말씀이고 만물을 다스리는 그 말씀이다. 예컨대 천지창조가 빛이 있으라, OO가 있으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가 빛을 만들고 사람을 빚으셨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늘에서 음성을 통해, 그리고 멜기세덱과 천사들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심지어 당나귀의 입을 통해서까지 말씀하신 구약의 하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요한의 증거를 통해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인지되거나 경험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하나님, 체험될 수 있고 들려지고 느껴질 수 있는 모든 하나님은 다 아들 하나님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가를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며 모호하신 분이 아니라 분명한 뜻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리이다. 만물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하나님만큼 진리(사실)인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하나님이라는 진리(사실)를 사람이 보고 느끼고 체험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아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해오셨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 중의 은혜요 진리 중의 진리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4,17) 


요한복음 1:1의 말씀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말씀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시는 분으로서 자기의 뜻을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돌부처나 세상 종교의 우상들과 같이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멋대로 섬기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항상 말씀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시며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알게 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필요도 없고 연구와 탐구를 통해 하나님을 억지로 알아낼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알아낸 하나님(하나님의 뜻)은 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나님을 그 말씀대로 알지 않고 사람의 뜻대로 알아내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마귀로부터 온 것이다.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일과 행위는 다 속이는 자로부터 온 가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알기를 힘써야 하며 그 중에서도 최종적으로 오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힘써 알아야 한다.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진리(말씀)의 영이신 성령을 힘써 순종하며 좇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선지자도 예수도 우리 곁에 없고 오직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말씀이신 하나님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예수라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곧 말씀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전에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자기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이제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율법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고 계시도 꿈도 아니다. 변화산에서 예수와 함께 서 있던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진 것은 그러한 사실을 계시한 것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17:5,8)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왜냐하면 그가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른 데 가서 말씀을 찾아서는 안 된다. 


요한은 왜 나사렛 청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했는가? 그는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 편에서의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말고 사람 편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모든 뜻과 성품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주님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뜻)을 나타내는 삶이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은 오직 아버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자기를 나타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사사로이 분노하거나 기뻐하지 않았으며 자기 뜻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었다.  


요한은 주님을 오랫동안 곁에서 따라 다닌 제자이다. 요한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을 보고 체험하는 가운데서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그는 그 전에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율법과 율법 선생들을 통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님을 보니 지금까지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몰랐으며 오직 주님 안에서 드러나는 빛으로 인해 진짜 하나님(말씀)을 깨닫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표현한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9,14,17 말씀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을 본 줄 알아야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곧 하나님을 만난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따로 그리스도 따로 말씀은 말씀대로 또 따로 안다면 그것은 잘못 안 것이다. 이런 원리에 의하면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주 예수님)을 순종치 않는 자(유대인들)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나타나신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듣고 보고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숨어 있는 하나님, 말씀하시지 않고 조용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알겠는가? 들려오는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곧 말씀하신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것이다. 


말씀과 나타나신 말씀, 그리고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은 하나이다. 이것은 다 하나님이다. 그러나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은 오직 나타나신 말씀과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그리스도, 선지자, 교회, 형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을 지닌 사람들을 사랑하고 피차 서로 복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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