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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족보 (2) : 아브라함

지난 주에 우리는 주님의 족보에 어떤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는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 주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의 아들(자손) 이삭과 다윗의 아들(자손) 솔로몬이 어떤 면에서 예수님을 예표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마태복음 1장의 이 주님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 중 처음 몇 인물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누가복음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누가복음이 하나님의 구원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려면 주 예수님은 사람의 죄와 운명을 진 사람의 대표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가복음이 주님을 종으로 묘사하고, 요한복음은 주님을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마태복음은 주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 비해 누가복음은 주님을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자손인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담의 계통을 따라 오신 분임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아담은 죄와 사망을 몰고 온 인류의 '첫 사람'인데 비해 주 예수님은 그 아담을 십자가에서 끝내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둘째 사람'이시다. 이와 같이 누가는 주님을 사람을 구원하실 사람의 대표자로 묘사하기 위해 주님의 족보를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은 왜 아담과 그의 후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가? 그것은 마태복음이 구원에 대해 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왕국'(천국)을 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사람 편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을 말한 것이지만 천국(왕국)은 하나님 편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다만 사람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의 구원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격적인 건축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기록은 인류가 어떻게 타락하여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극도로 대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바벨탑 쌓는 일과 성(城)을 건축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간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타락하고 거역적인 마음을 결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인류와 세상을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은혜)을 받은 새로운 사람들로 새 나라(천국)를 건설하시기로 하셨다. 이 일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은 세상 한 복판 곧 거역과 우상 숭배가 충만하고 모든 사람이 사탄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그곳, 바로 바벨(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아담 족속을 포기하셨고 그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모든 관심을 오직 아브라함을 머리로 하는 이 새로운 족속에게만 두시게 되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새 사람, 새 인류는 세상과 무관한 것이다. 이는 마치 노아의 방주가 세상 사람을 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한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 안에 타지 않았던 것과 같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라 불리는 이 새로운 세계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한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 곧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사는 사람,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대로 사는 사람,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 육신의 영광보다 아버지의 영광을 더 추구하는 사람들만 거하게 되는, 전혀 세상과는 별개의 세계이다.

물론 천국도 결국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아담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며 세상을 위한 것이다. 요한의 증거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자체, 자연인으로서 인간 자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새로운 나라 곧 주 예수님을 왕으로 하는 이 새로운 왕국(천국)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결코 섞일 수 없다. 세상이 이리로 올 수는 있어도 천국이 세상으로 가지는 않는다. 아브라함은 온 세상에 복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된 것처럼 실제로 이 하나님의 새 사람, 새 나라 곧 그리스도와 교회는 세상을 구원함으로써 세상에 복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그 안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배는 바다 위에 떠 있으며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지만 그렇다고 바다가 배 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오직 바다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세계(바다)를 버리고 배로 올라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지 않으신다. 지금 이미 세상은 끝났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때가 이르면 옛 하늘과 옛 땅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가 예비해 놓으신 새 세계 곧 천국으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태복음은 이 나라(천국)에 대해 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나라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기초가 놓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본격적으로 건축되고 있다.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스도가 바로 이 새로운 나라(천국, 하나님의 나라)의 미리 약속된 머릿돌이요 건축자요 완성자요 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속한 자인가? 우리는 이제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다. 이것은 새 인류요 새 사람이다. 우리는 유대인은 아니지만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고 있는 저 유대 민족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는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세상에 그대로 있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는 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지 않은 것이다. 바다에 그대로 있는 사람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님의 족보에 첫 이름을 올린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특징은 무엇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믿음이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삶을 누린 사람이다. 이것은 곧 그가 자기의 자격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의지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믿음에 속한 그들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14)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모든 복은 오직 믿는 이를 위한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며 그의 영이신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복종의 생애이며 이끌림의 생애이다. 그는 아무 것도 스스로 잘한 것이 없다. 그의 출발점도 그랬고 과정도 그랬고 모든 승리와 축복은 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시작되고 이루어졌다. 그 자신이 의도하고 시작하고 추진함으로 되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창세기 20장의 남방 이주 사건은 그의 생애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처음에는 롯을 의지했으며 거기에 소망을 두었었고 나중에는 그의 종 엘리에셀에게 신뢰를 두었다.(창15:2-4) 그리고 그는 나중에 이스마엘에게 소망을 두었다. 그런 그에게 이삭을 주시며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는 참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0,21) 라는 말씀을 보여주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타락한 인생은 하나님이 그 안에 없으므로 항상 공허하다. 그러므로 항상 무언가를 하기를 좋아하고 일하고 힘쓰고 정신이 빼앗길만한 어떤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찾는다. 가만히 있으면 허전하고 안식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거기서 나오너라 너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채로 너 스스로, 네 자신 안에서 무언가 삶을 찾으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세계에서 나오너라"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전 세계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사람들의 머리이시며 이런 사람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과거를 생각하거나 육신으로 사는 세계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예비하신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 점을 아브라함에게 확실하게 하셨다.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마엘을 떼어 내버리게 하셨으며 심지어는 약속의 자녀인 이삭마저 번제로 드리도록 하셨다. 이것은 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는 다른 어떤 소망도 없는 사람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삭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배웠다. 우리도 이것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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